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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7/24/19
좋은 성도는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가?
홍삼열(산타클라라연합감리교회 목사)

성경에 보면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에 대해 두 가지 경우를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좋은 종류의 참견으로서 성도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나쁜 종류의 참견으로서 성도는 하면 안 되는 일이다. 어떤 경우에 참견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 참견하지 말아야 할까?

우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절은 어떤 경우에 남의 일에 참견해야 할지를 가르친다.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기독교인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죄가 있다. 하나는 작위적인 죄(sins of commission)이고 다른 하나는 부작위적인 죄 혹은 생략의 죄(sins of omission)이다.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을 때, 예를 들어 거짓말해서는 안 되는데 거짓말을 했다거나 물건을 훔치지 말아야 하는데 훔치면 우리는 작위적인 죄를 짓는 것이 된다. 이 세상에서는 이런 작위적인 죄를 짓지만 않으면 결백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작위적인 죄 말고 다른 종류의 죄 즉 생략의 죄도 범하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인의 양심상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무슨 이유로든 그것을 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생략의 죄를 범한 것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죄의 길에 빠지려 하는데 그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으면 생략의 죄를 짓는 것이 된다. 우리는 남의 일에 괜히 간섭해서 불편한 일을 당하기 싫다는 이유로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죄로 간주하신다는 것이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야고보서 4:17).

이런 시각으로 볼 때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절은 생략죄에 해당하는 말씀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첫 번째가 “게으른 사람을 경고하라”는 말씀이다. 데살로니가교회에는 말만 하고 실제로는 일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그런 사람을 그냥 놔두지 말고 그들이 열심히 일 하도록 경고하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한 교회를 이루어 신앙생활 하는 이유가 함께 신앙의 길을 가도록 격려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교회생활 하다 보면 사람에 대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말만 잘 하고 실제로 헌금하거나 몸으로 봉사하는 일에는 꼭 빠지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볼 때 얄미운 생각이 든다. 그럴 때 우리에게서 두 가지 반응이 나올 수 있다. 내성적인 사람의 경우는 괜히 입바른 말을 했다가 교회에서 소란을 일으키느니 그냥 내가 입 닫고 조용히 있자 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남 신경 쓰지 말고 내 일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성격상 그런 꼴을 못 보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권고의 차원을 넘어서 빈정거리거나 직접 인신공격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교회에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방법을 다 경계해야 한다. 우선 우리는 한 교회를 이루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형제나 자매가 게으름을 피울 때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가면 안 된다. 우리가 한 교회가 된 이유가 바로 그럴 때 서로 격려하고 경고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그런 경우 우리는 당연히 그 사람의 일에 간섭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할 때 지혜롭게 해야 한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으로 훈계한다거나 “너는 구제불능이고 교회에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는 식의 인신공격을 하면 안 된다. 그 사람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지나친 말을 하면 안 된다. 우리가 권면하고 경고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 사람을 살리고 교회에 덕이 되게 하기 위함인데 지혜롭지 못한 방법을 사용하면 정반대의 효과가 나게 된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할까? 반드시 사랑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이 살고 교회에 덕이 된다.

그다음 둘째로 성도가 남의 일에 간섭할 필요가 있는 경우는 소심한 사람들을 격려해야 할 때이다. 당시 사회는 기독교를 불법종교로 규정하여 박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신자들 중에는 당연히 두려운 마음을 가진 소심한 사람들이 있었다. 반기독교적 정서가 팽배한 오늘날에도 여러 방면에서 소심한 분들이 있다. 어려움이 올 때 쉽게 낙심하여 포기하는 분들이 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을 볼 때 모른 척하고 지나가면 안 된다. 그들의 삶에 참견하여 적극적으로 그들을 격려해야 한다.

셋째로 성도가 해야 할 일은 연약한 자를 돕는 것이다. 신앙생활 하다 보면 매일 희망에 넘치고 힘이 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때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탈진상태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주변에서 나를 이해해주고 붙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 우리는 교회에서 서로 그런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15장 1절에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고 갈라디아서 6:2절에서도 “너희가 짐을 서로 짐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성취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에 힘들고 지쳐서 탈진해 있는 사람들이 있을 때 그들을 모른 척하지 말고 그들에게 다가가서 위로해주기를 바란다. 무거운 짐을 함께 져주기를 바란다. 그럴 때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게 된다.

넷째로 오래 참고 서로 원수를 갚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의 핵심은 내가 혼자서 꾹 참고 원수를 안 갚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오래 참을 줄 알고 못된 짓 하는 사람이 있어도 최대한 원수 갚는 일을 하지 않는 아름다운 풍토가 자리 잡도록 하라는 것이다. 가만히 보면 교인들 사이에 싸움을 붙이는 사람이 있다. 그게 아니라고 한 마디만 거들면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데 그 말을 하지 않아서 싸움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고, 쓸데없는 말을 해서 싸움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고, 없는 말을 만들어서 싸움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이 많으면 교회는 싸우는 분위기가 된다. 서로 원수 갚는 분위기가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원수갚지 않으면 좀 모자란 사람이 된다. 반면에, 싸움을 막는 소방수들이 있다. 잘못된 이야기가 돌면 그게 아니라고 정정해주고, 싸움이 일어날 것을 예상할 때 미리 개입해서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싸움이 일어났을 때 일부러 개입해서 싸움을 진정시키는 사람, 이런 사람이 많은 교회는 행복하다. 이런 교회는 부흥한다.

한편, 남의 일에 섣불리 참견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데살로니가교회에는 일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면서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말을 전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경우는 성도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περιεργαζομένους, busybodies)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데살로니가후서 3:11-12). 이들이 정확히 무슨 이유로 일하지 않고 한담하며 돌아다녔는지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있을 것으로 예언된 마지막 환난이 이미 자신들에게서 일어났다고 믿고서 예수님이 이미 어딘가에 재림하셨을 것으로 생각하든지 아니면 내일 모레 재림하실 것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한 바울의 처방은 아주 강경하다. 아직 예수님이 재림하신 것이 아니니 그들에게 자기 손으로 일해서 양식을 먹으라고 권하고(3:11~12), 이것을 거부하거든 그를 멀리하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를 부끄럽게 하라(3:6,14)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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