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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1/08/26
[신년초대석] 이민여정 함께 걸어온 영원한 남매 . . 누님 박(홍)성숙 사모(96세), 동생 홍성유 장로(94세)
실비치 ‘레저월드’ 한 동네서 의지하며 살고 있는 90대 남매 가족
누님 박성숙 사모(맨 오른쪽)와 동생 홍성유 장로, 홍인숙 권사 부부가 지난해 12월 송년오찬을 위해 평소 자주 들리는 장수 스시 식당에서 만났다

 

 

고 박대희 목사의 부인 박성숙 사모는 금년 96세다. 건강이 옛날 같지는 않지만 인지기능이나 일상생활을 위한 건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걷는 게 불편하여 워커(보행기)에 의존하고는 있지만 집안에서 부지런히 걷기 운동을 하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밖에 나가 바람을 쏘이며 걷는다. 식사를 챙겨주는 권사 한 분이 일주일에 몇 번 도움을 주고 있다.  기억력으로 말하면 놀라울 정도다. 남편 박대희 목사가 언제 미국에 오고 언제 어느 대학을 나오고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느 교회를 시무했는지 그 숫자들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함께 시무했던 목회자들의 이름은 물론이고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의 이름도 또렷하다.


박사모에겐 매달 한번 즐거운 나들이가 있다. 남가주감리교 원로목사회(원목회)가 모이는 날이다. 같은 레저월드에 거주하는 김광진 원로목사가 꼭 라이드를 준다. 거기에 가면 그 옛날 이민교회를 함께 섬기던 감리교 후배목사들과 사모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박사모에겐 소중한 소셜 모임이다.


박사모에겐 마음의 고향이 있다. 미국에 와서 처음 목회했던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미국 최초의 한인교회’란 명성에 걸맞게 이 교회를 부흥시킨 이가 박대희 목사였다. 그후 LA에 있는 로벗슨 감리교회로 부임해서는 교회당을 공항근처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교회 이름을 LA연합감리교회로 바꾼 것도 박대희 목사다.




고 박대희 목사가 60세 환갑을 맞아 박성숙 사모와 지금은 없어진 로벗슨감리교회 친교실에서 찍은 추억의 사진이다.

그러나 이 두 교회 못지않게 늘 마음에 두고 사는 마음의 고향은 바로 한국 신도제일교회. 신도제일교회는 박대희 목사가 감신 대학을 졸업하고 전도사 시절 개척한 교회다. 흙벽돌로 교회당을 짓고 박 목사 부부가 이 교회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래서 더욱 각별하게 느껴지는 교회. 그런데 그 흙 벽돌 교회당이 6.25 전쟁 중에 무너진 후 미군 공병대의 도움을 받아 돌로 지은 예쁜 예배당으로 변했다. 흔히 ‘돌 예배당’으로 부른다.   이 신도제일감리교회가 지난해 2025년10월 창립 81주년을 기념하여 대성전을 건축하고 봉헌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박 목사 부부가 흙벽돌로 시작하여 돌교회로 새로 건축된 71년 된 예배당은 헐지 않았다. 그대로 두고 옆에 새 예배당을 건축한 것이다. 그 예배당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존해야 마땅하다고 교회가 결정한 것이다.  그 돌 예배당을 지키고 있는 그 교회 교인들의  믿음의 결단에 박성숙 사모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금년 창립 84주년을 맞은 경기도 신도감리교회는 박대희 목사 부부가 개척한 교회다. 전도사 시절 흙벽돌로 지은 예배당이 뒤에 보인다(왼쪽). 박 목사부부가 결혼식을 올린 예배당이다. [사진출처=신도감리교회 홈페이지]


박 사모에겐 레저월드에 사는 게 크게 외롭지 않다. 무엇보다도 동생 홍성유 장로(94세)가 같은 곳으로 이사 와서 이웃하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에 실비치로 이주해 온 박 사모를 따라 하와이에 살던 홍 장로 부부는 2018년에 이곳으로 이사 왔다.

하와이에서 목회할 때 박 목사는 “내 가족들만 이민 왔는데 당신 가족들도 미국에 와야 한다”고 말하면서 박사모의 동생 홍장로의 이민을 적극 추진했다. 그래서 1973년 1남 2녀와 함께 5식구가 각각 100불씩, 500불을 손에 쥐고 하와이로 이민 왔다. 홍 장로는 매형이 시무하는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를 섬기면서 교회부흥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6.25 참전용사출신인 홍 장로는 매우 긍정적이고 “한다면 하는” 성격이었다. 이민자들의 공항 픽업은 물론이고 부인 홍은숙 권사는 김치를 담그고 떡을 만드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였다.  그 열정과 재주를 모두 교회 부흥에 쏟아 부었다.







6.25 전쟁중 파괴된 교회당이 미국 공병대의 도움으로 돌로 지은 교회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신축 예배당을 지으면서 이 돌교회당을 부수지 않고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지금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박성숙 사모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사진출처=신도감리교회 홈페이지]

 

더구나 일본어에 능통했던 홍장로는 하와이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여행업을 해서 큰 돈을 벌기도 했다. 홍은숙 권사는 여러 번의 여선교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김치 바자를 통해 선교비를 모아 필리핀에 선교교회를 개척한 적도 있다.


그런 홍 장로 부부가 한국에서 하와이로, 그리고 지금은 누님 곁 레저월드로 이사 와서 박 사모 곁에 살고 있는 중이다.


“난 100살까지 운전면허증을 얻었어요. 지금도 하루에 3~4시간은 운전하고 다니면서 홈디포나 코스코에 가서 샤핑하고 마켓에 가서 배추도 사서 홍 권사 김치 담는 거 돕고 삽니다.”


1973년 1남 2녀 손잡고 이민길에 올랐던 홍 장로의 두 딸은 모두 연감리교회 목회자 부인이 되었다. 큰 딸 홍영기는 신영각 목사(전 윌셔연합감리교회 목사, 현 몽골감리교신학대학교 학장)와 결혼했고 둘째 딸 홍형기는 정대선 목사와 결혼했다. 그러나 정 목사는 안타깝게도 지난 해 5월 향년 63세로 별세했다.



고 박대희 목사는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을 위해 장학기금을 모금하여 한인 목회자들을 길러내는데 크게 공헌했다. 남편 별세후에도 박성숙 사모는 클레어몬트 신학교에 정기적으로 후원해 오고 있다. 지난 2021년 출석하고 있는 LA연합감리교회에서 당시 클레어몬트 신학교 이종오 부총장에게 장학금 1만달러를 전달하고 찍은 기념 사진. 왼쪽부터 이종오 부총장, 박성숙 사모, 이창민 담임목사. 



금년 91세의 홍장로는 레저월드에 있는 실비치 사랑교회(이정현 목사)에 출석하고 있다. 교회에서 대표기도 잘하기로 소문나 있다. 군인 출신다운 목소리가 아직도 쩌렁쩌렁하다. 정성스레 김치를 담아 이웃과 나누는 금년 91세의 부인 홍권사의 ‘김치 미니스트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홍 장로 부부는 누님 박사모와 함께 가끔 가든 그로브에 있는 ‘모란각’에 나가 냉면을 사서 먹거나 사이프러스에 있는 ‘장수 스시’에 나가 함께  식사를 하곤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90이 넘기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는 두 남매 가족의 행복한 순간들이다. 그리고 이민교회를 두루 섬기며 교회를 위해 헌신하며 살아 왔던 때를 이것저것 추억하면서 그 교회들에 남아있는 자신들의  땀과  기도가 여전히 교회 성장의 밑거름 어디엔가 스며 있기를 기원하며 새해를 맞고 있다.  


홍성유 장로는 지난 세월을 회고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거저가 없다. 반드시 갚아 주신다”고 말하면서  뜨뜻미지근하게가 아니라 화끈하게 믿음생활 할 것을 권면했다.                                                                                                                     
 
[조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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