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Login    /   Logout
818.624.2190
미주교계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1/24/23
고 은준관 박사님을 추모하며
-감리교신학대학 ‘기독교 교육연구소’의 추억
고 은준관 박사

  

1971년 봄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그해 나는 감리교신학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서대문 로타리 버스정거장에서 내려 동명여고 뒷골목을 따라 냉천동 감신대 교정에 이르면 오래된 학교 주변의 낡은 기와집 굴뚝에선 연탄가스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곤 했습니다.

 

정문을 지나면 오른쪽으론 빨간색 벽돌로 된 이층 집이 보이고 그 뒤쪽에 웰치기념강당이 있었습니다. 눈 내린 캠퍼스를 조금 더 오르다 보면 왼쪽에 또 하나의 이층 벽돌집이 보이고 그리고 계단을 오르면 대학 본관 3층 건물이 서 있었습니다.

 

모든 게 낯선 새 학기 어느 날 본관 정문에 들어서자 왼쪽 게시판에 작은 메모하나가 붙어 있었습니다. “조명환 학생은 기독교교육연구소로 오세요.”

 

그때 본관 아래 빨간 벽돌집이 바로 기독교교육연구소란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메모를 붙인 분을 찾아간 것입니다. 나무계단이 유난히 삐걱거리는 계단을 밟고 오른 2층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은준관 박사님이 거기 계셨습니다. 이미 은 박사님은 1학년 신학영어시간에 ‘미쎄스 벅홀더’란 여자 선교사님과 함께 영어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미 교실에서 인사는 했지만 1:1로 만난 것은 그때였습니다. 속으로 놀란 것은 가까이서 보니 “남궁원 저리가라 할 정도의 미모”였다는 것입니다. 그때 은 박사님과의 첫 만남 이후 기독교교육연구소에서 나를 부르는 메모쪽지는 계속 학교정문 게시판에 끊이지 않고 붙여졌습니다.

홍현설 학장님과 함께 모든 교수님들이 학장실에 앉아 신입생 지원자들을 인터뷰할 때 은 박사님은 내가 미술에 관심이 많다는 말을 기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찾은 이유는 연구소에서 처음 출간하는 책 표지를 그려달라는 부탁이셨습니다.


 

1960년 기독교 교육연구소에 눈이 온 모습(왼쪽).
지금은 없어진 이 건물을 인터넷 어디에서 찾아내고 보니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시카고 제일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를 마치시고 귀국하여 기독교교육학을 감신대에서 가르치시기 시작하신 박사님은 수많은 서울시내 개체교회를 돌며 주일학교 교사들을 위한 강습회를 개최하셨을 때 였습니다. 박사님은 기독교 교육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계셨습니다. 이를 위해 훈련교재가 필요하여 발간된  책이 바로 “무엇을?” 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버나드 앤더슨이 쓴 이 책을 은 박사님이 번역하여 책으로 낸 것입니다. 이 책은 번역서이긴 했지만 은 박사님의 첫 출판물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 책의 표지를 그렸습니다. 인쇄되어 책으로 나온 나의 첫 번째 그림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책 가격은 300원. 출판사는 성광문화사.

이 책의 발간을 계기로 난 기독교교육연구소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출판물의 삽화를 맡아서 그렸습니다. 그 바람에 서대문 금메달 다방 옆에 있었던 성광문화사란 곳을 드나들어야 했고 그때 사장이신 이승하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그 이 장로님과 사무실을 함께 쓰던 ‘월간 목회’ 박종구 목사님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승하 장로님과의 연락은 미국 와서 끊어졌지만 박종구 목사님과의 그 때 인연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내가 클레어몬트 신학교에 다닐 때 나의 첫 번째 편저인 ‘미국의 8대 한인교회’를 박종구 목사님(신앙애 출판사 사장)이 출간해 주신 것도 그때 인연의 연장이었습니다. 미국에서지만 50여년 동안 선배 목사님으로 모시며 가끔 인생의 조언을 얻는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은준관 박사가 펴낸 첫 번째 책 ‘무엇을’의 표지.
50년 전 성광문화사에서 출판되었고 필자가 표지 그림을 그렸다.

 



기독교교육연구소에 드나들면서 은 박사님 외에도 연구소 아래층을 교수실로 쓰고 계셨던 차풍로 목사님과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습니다. 그 빨간 벽돌집에서 만난 은 박사님과 차 목사님, 두 교수님은 가슴속에 오래오래 살아계신 존경하고 사랑하는 스승님이십니다.


당시 기독교교육연구소는 매주 금요일 오후 다른 노는 길로 내 빼는 고등학생들을 모아 스튜던트 채플(Student Chapel)이란 걸 운영해 왔습니다. 고등학생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반으로 나누어 그룹 성경공부를 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주로 서울시내 미션스쿨인 배재, 배화, 이화, 대광고 학생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고등학생들과 신학교를 연결시켜 혹시 신학교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찾기 위한 일종의 신학생 모집 프로그램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나는 차 목사님의 추천으로 그 채플의 교사로 일을 했습니다. 한 달에 네 번 모이지만 고등학생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그때 함께 채플 교사를 맡았던 여러분 가운데 지금 연합감리교 감독이신 박정찬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나에겐 3년 선배였던 박 감독님은 당시 감신에 재학하면서 CBS 방송에서 영어 노래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부르는 DJ로 활동하는 등 음악과 영어 등 모든 면에 재주가 뛰어난 팔방미인으로 알려진 실력파였습니다.


채플에는 가끔 유명 가수들이 초청되어 예배 중에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가수 조영남 씨가 군복을 입고 와서 노래를 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조영남을 처음 만나본 게 바로 그 스튜던트 채플에서였습니다.


은 박사님의 출판물 간행을 돕고 스튜던트 채플에서 봉사하는 바람에 제게는 쏠쏠하게 ‘장학금’이 생겼습니다. 은 박사님과 차 교수님이 챙겨 주셨습니다. 입주가정교사로 생활하면서 가난뱅이 신학생이었던 나에게 그 돈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신학교 1~2년을 보내던 나는 갑자기 신학교가 싫어졌습니다. 그냥 건성으로 클래스에 들어가 출석만 부르고 사라지기가 일쑤였습니다. 은 박사님은 기독교교육연구소에 할 일이 많고 박사님을 도와 교육분야 전공을 살려보라는 말씀도 주셨습니다. 할 일이 엄청 많으니 함께 가는 길을 여쭤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신학교에 회의를 느낀 나에게 그런 말씀은 내 가슴에 닿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는 학교를 휴학하고 세상을 방황하다가 다시 재등록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갑작스레 군대에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 은 박사님은 정동교회 담임목사, 연세대학교 교목, 연세대학 신과대학장으로 계속 승승장구하셨습니다. 마지막엔 실천신학대학대학원을 설립하시기도 했습니다.



감신대의 아이콘이었던 웰치기념교회당.
1959년에 세워진 이 건물은 새 건물을 짓는라
없애버렸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는 결국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고 CBS 보도국 기자로 공개 채용되어 언론의 길로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미국에 와서 살아가는 동안 다시 목사가 되자는 결심 아래 클레어몬트 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은 박사님이 특강을 하시러 학교에 오신 것입니다.


그 능숙하신 영어로 특강을 끝내고 강당을 빠져나가실 때 나는 아주 오랜만에 박사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아마 기독교교육연구소에서 보내던 시절 이후 몇 십년 만의 해후였습니다. “목사 안 한다더니 다시 신학교에 들어왔구나?” 그 말씀이 마지막이셨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대화였고 마지막 만남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미국 와서 40여 년 넘게 살면서 이사 다닐 적마다 은 박사님의 첫 번째 처녀작 ‘무엇을?’이란 책을 버리지 않고 끌고 다녔습니다. 아마도 박사님의 추억을 잊지 않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교육연구소의 추억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감신대하면 내 가슴속에 남아있는 두 개의 건물, 스튜던트 채플을 하면서 고등학생들을 만났던 웰치기념강당, 은준관, 차풍로 목사님의 얼굴과도 같았던 빨간 벽돌 2층집 기독교교육연구소,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면 늘 넌닝구 바람으로 강의가 없으신 날에는 본관 운동실에서 탁구를 치시며 땀 흘리시던 윤성범 박사님. . . 이 모두가 50년 전 내 가슴에 찍어 놓은 감신사진들입니다.


그 기독교 교육연구소의 두 주인공, 차 목사님은 이미 오래전 세상을 떠나셨고 향년 90세로 은 박사님이 지난 주 세상을 떠나가셨습니다.


기독교교육에 큰 발자취를 우리 한국교회에 남기시고 우리 곁은 떠나가신 은 박사님, 박사님 별세 소식을 듣고 책꽂이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무엇을?’ 이란 책을 다시 꺼내 들고 박사님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50년 전 그 빨간벽돌 2층 집, 그리고 제자들의 앞날이라면 열심히 크게 열어주시기 위해 애 쓰시던 박사님이 한없이 그리워집니다.

은준관 박사님, 주님 품 안에서 이제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조명환(목사, 크리스천 위클리 발행인)

 

 
List   
크리스천 위클리
후원교회/기관
The Christian Weekly
9925 Bothwell Rd.
Northridge, CA 91324
TEL. 818.624.2190
Email. cweeklyusa@gmail.com
COPYRIGHT © 2015-2020 THE CHRISTIAN WEEKL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