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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교계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1/31/25
금년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 . . 삼위일체교리, 부활주일 결론 합의
니케아 공의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출처=위키피디아)

 

삼위일체(Trinity) 교리와 부활주일을 어느 날로 지킬지 결정한 니케아 공의회

예수의 신성 부인했던 아리우스파 이단으로 파문, 아다나시우스 삼위일체 정통으로 인정

1700주년 맞아 교황 튀르키에 니케아 방문 예정, 세계교회협의회도 기념행사 개최

 

 

기독교가 로마제국에서 공인된 후 최초로 서기 325년에 소집된 공의회(Council)를 니케아 공의회라고 한다. 금년은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을 맞는 해가 되었다.

니케아 공의회가 중요한 이유는 이 공의회에서 기독교 교리의 핵심인 삼위일체(Trinity)교리가 확정되었고 부활주일을 언제로 지키는지가 확정되었다. 즉 춘분 이후 첫 번째 보름달이 뜨고 난 직후 주일을 부활주일로 정했다. 또한 부활주일 전 40일 동안 참회와 금욕생활을 하기로 했는데 이게 오늘날의 ‘사순절’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자들 사이에서 사도전승으로 이어 받았을 뿐 성부와 성자에 대한 논란이 있어 왔는데 예수의 신적 본질과 성부 사이의 관계를 삼위일체론으로 정리하여 교리로 선포한 것이 니케아 공의회였으니 이는 기독교 역사상 이정표적인 결정이 된 것이다. 니케아 공의회 당시 삼위일체론 개념은 이론적으로 매우 투박한 부분이 많았고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거듭된 이론화 작업을 거쳐야 했다.

 

비록 공의회에서 아타나시우스파의 삼위일체론이 정통으로 인정되고 아리우스파가 이단으로 규정되었으나, 아리우스파 주교들은 회의가 끝나고 교구로 돌아가서 다시 아리우스의 가르침을 전파했다.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사도들의 회의를 최초의 공의회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니케아 공의회가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보편 공의회라는 데는 별로 이견이 없다.

 

 

1. 니케아 공의회의 배경

 

삼위일체 교리 내용이 교회 전체의 화두가 된 것은 325년 5월 20일,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였다. 니케아 공의회의 주최자는 교회 내 지도자들이 아닌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였다. 당시 콘스탄티누스 1세는 다신교를 숭상하는 로마라는 나라를 하나로 연합하는데 기독교를 선택했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313년 이미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에 대한 관용을 선포하여 기독교 박해를 끝내고 사실상 기독교를 공인한 황제로 기독교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다. 제국의 원활한 통치를 위해 기독교를 공인하기는 했으나 이 기독교 안에서도 교리 문제로 갈등이 팽배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분열된 기독교를 가지고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어렵다고 보고 로마의 안정을 위해 먼저 기독교를 안정시키기로 한 것이다.

 

 

2. 니케아에 모든 주교들이 참석

 

니케아 공의회는 325년 6월 19일에 소집되어 2달 동안 열렸다. 콘스탄티누스는 니케아 종교회의를 개최하여 모든 주교를 참석시키도록 했다. 주교들이 공의회에 안전하게 참석할 수 있도록 황제의 교통 체계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권한까지 주었다. 그 덕에 주교들은 자비를 들이지 않고도 로마 군대의 보호를 받으며 이동할 수 있었다.

원래 종교회의는 튀르키에의 앙카라에서 소집되었지만, 콘스탄티누스는 종교회의의 소집 장소를 좀 더 서쪽으로 떨어진 니케아로 바꿔버렸다.

니케아는 오늘 날 튀르키에의 이즈닉(Iznik, 튀르키에 남부의 해안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결정 덕분에 이탈리아와 유럽에서 오는 주교들은 더욱 수월하게 참석할 수 있었다.

다양한 보고서에 따르면 250명에서 320명의 주교들이 참석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7월 초에 도착하여 화합의 중요성에 관해 연설했다. 공의회에서 작성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는 문서로는 니케아 신경, 카논(그리스도교적 신앙 및 행위의 규범), 그리고 이집트 교회에 쓴 서한이 있다.

 

 

3. 니케아 공의회의 쟁점: 성부와 성자의 관계

 

니케아 공의회 주요 쟁점은 성부와 성자의 관계였다. 이때까지는 삼위일체 교리는 정립되지 않았을 때 였다. 크게 두 가지의 해석이 존재했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사역하던 사제 ‘아리우스’는 성자가 성부의 피조물이며 성부와 성자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쉽게 정리하자면 “기독교는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종교인데, 예수님도 하나님이면 다신교와 무엇이 다른가?”라는 말이다. 이러한 주장을 ‘아리우스주의’라고 부른다. 아리우스주의는 무척이나 논리적이고 이해하기 쉬웠기에 급속히 로마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니케아 공의회는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파문하고 아다나시우스의 삼위일체론을 받아들였다.
교부 아다나시우스의 모습(사진출처=위키피디아)





그러나 아리우스의 주장대로라면, 성자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것이 잘못된 행위라는 이야기가 되므로 성자의 신성을 훼손시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용인할 수 없었던 사제 중 한 사람이 목소리를 높였으니, 그가 아타나시우스였다. 아타나시우스는 성부와 성자 모두 하나님이시지만, 한 하나님께 두 개의 위격(persona)이 있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즉 “하나님은 한 분이시므로 유일신 신앙에 어긋나지도 않고, 한 분께 두 인격이 있는 것이므로 성부 성자 모두 하나님이라 해도 모순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사람의 인격은 하나뿐이기에 좀처럼 납득이 안 가는 주장이지만 이러한 논리가 나온 데도 이유가 있다. 당시 논쟁의 근거로 사용되던 자료들은 사복음서 및 사도들의 서신서 즉 신약성경인데, 신약성경 안에서는 예수님을 그저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한 부분도 있지만 하나님 자체인 것처럼 묘사한 부분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를 설복시키면서 동시에 성서적 모순에 빠지지 않을 묘수가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등장한 개념이 ‘위격(persona)’이었다. 즉 한 분이신 하나님께 성부·성자·성령 세 위격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4. 니케아 공의회의 결과: 삼위일체 교리 확정

 

회의를 소집한 것 콘스탄티누스 황제였고 그는 교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도 없었거니와 애당초 그런 데는 관심도 없었다. 한 달간 이어진 공의회 끝에 황제는 아타나시우스에게 판정승을 내렸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니케아 신경’를 제정하여 공의회를 마쳤다. 아리우스파에서 제출한 신경은 파기되었다. 참석한 거의 모든 이들이 니케아 신경에 서명했으며 끝까지 서명을 거부한 아리우스 등 3인은 파문을 당했다.

니케아 종교회의는 결국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기독교 신앙 중 가장 중요한 교리 중 하나, 즉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니케아 공의회가 열린 곳은 현재의 튀르키에 있다. 사진은 니케아 성벽의 콘스탄니노폴리스의 성문




5. 니케아 신경(나이신 크리드, Nicene Creed)이란?

 

니케아 공의회의 결과를 담은 신앙 고백문으로, 아타나시우스파에서 작성 및 제출했다. 성부와 성자에 대한 믿음을 드러냄과 동시에, 성자의 신성을 부정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를 담았다. 다만 이탤릭체로 작성된 ‘파문에 대한 경고’ 부분은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는다.

그분은 전능하신 아버지이시며,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분은 하나님의 외아들이시며, 아버지에게서 나셨으며, 곧 아버지의 본질에서 나셨다. 하나님에게서 나신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와 본질에서 같으시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 생겨났다.


그분은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내려오시어 육신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셨으며, 고난을 받으시고, 사흘 날에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으며,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을 믿는다.

 

“그분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가 있었다”, “나시기 전에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는 비존재에서 생겨났다거나, 다른 히포스타시스(hypostasis) 또는 우시아(ousia)에서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는 하나님의 아들은 창조되었으며, 변할 수 있으며,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에서 파문한다.

 

 

6. 각각 달랐던 부활절 금년 2025년 4월 20일 7년 만에 같아져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이 되는 2025년은 그리스정교회와 로마가톨릭·개신교의 부활절이 같아지는 뜻깊은 해가 될 전망이다. 사용하는 역법의 차이로 정교회와 가톨릭·개신교의 부활절이 해마다 달라지는데 금년 부활절은 4월 20일로 같다. 전 세계 교회가 한 날,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함께 기념하게 된 셈이다.

 

마침 니케아공의회 170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부활절 날짜가 같아지면서 차제에 부활절을 하나로 통합하자는 논의도 세계교회 차원에서도 진행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개신교회들도 니케아공의회 1700주년 기념행사를 마련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금년 10월 24일부터 닷새 동안 이집트 와디 엘 나트론 파팔 로고스 센터에서 ‘가시적 일치의 현주소는’을 주제로 ‘세계 신앙과 직제 위원회’를 열 계획이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금년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을 맞아 튀르키에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위 기사는 위키피디아와 CBS뉴스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조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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