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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7/09/21
미국 독립기념일과 노예제도, 그리고 조선의 노비
장학순(목사, UMC 한인목회강화협의회 사무총장)

 

미국의 독립은 1776년에 이루어졌고 이후 약 90년간 노예제도를 더 유지했다(1863, Emancipation Proclamation). 오늘날 미국의 심각한 인종차별은 바로 이 불행한 역사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독립기념일인 오늘, 축하의 불꽃놀이와 더불어 이 나라의 어두운 과거에 대한 비판과 뉘우침의 목소리가 도처에 높다. 최근, 인종차별의 문제가 더욱 첨예해진 이 시점에서 흑인 노예해방론자인 Frederick Douglas의 ‘노예에게 독립기념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What to the Slave is the Fourth of July?)’라는 연설문을 다시 읽으니 미국 역사에 대해 더욱 비판적 시각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정확히 동일한 시기에 더 오랫동안 그것도 동족 전체인구의 30-40%를 노비(예)로 부렸던 나라인 한국(조선)에 대해서는 왜 이렇다 할 역사적 도덕적 반성이 없는지 궁금해 진다.

 

혹자는 노비제도와 노예제도는 다르다고 항변할 지 모른다. 하지만, 두 제도 모두 사람을 말이나 소처럼 사고 파는 재산으로 거래했고, 이웃인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규모의 잔인한 노예증식제도인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 즉 부모 중 한 사람이 노비이면 자식은 자동적으로 노비가 되는 일천즉천(一賤則賤)제도였다.

 

요컨대 둘은 동일한 시간대에 존재했던 유사한 노동력 착취와 인간학대의 제도였던 것이다.

 

최근에는 선대의 왕과 다르게 이 제도를 전면 실시하기 시작한 세종대왕과 관련하여 성군으로서의 지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역사학계의 움직임도 있다.

 

더욱 놀랄만한 사실은 이조 유학자로서 가장 큰 칭송을 받으며 선비의 ‘청빈한 삶’을 이상으로 주창했던 이황(천원권 지폐 초상)은 약 300명의 노비를 소유하고 세습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아울러, 유교의 개혁사상이라 할 수 있는 실학을 주도했던 실학자 가운데서도 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은 한국의 사회사상사를 더욱 어둡게 한다.

 

심지어, 18세기 가장 진보적인 실학자로서 애민사상을 설파했던 정약용은 노비제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노비의 숫자를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흑인노예제도와 백인의 죄악상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자신의 역사에는 지극히 관대한 경향이 있다. 혹시, 남의 눈의 티끌은 쉽게 지적하면서 내 눈 속 들보는 모르는 체하며 자기의에 취해 있는 민족은 아닌지 모르겠다.

 

Douglas의 자서전에 보면 본인은 노예종모법(일천즉천)에 의해 백인이었던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필요가 없이 흑인노예인 어머니에게 노예로 태어났다고 적고 있다. 백인주인의 재산으로.

 

이런 그에게 당시 독립기념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어 보는 것이 과연 타당했을까. 인간의 자유는 민족이나 국가보다 더 숭고한 가치이다. 연수를 세어보니 모두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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