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Login    /   Logout
818.624.2190
설교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9/04/21
[지상설교] 하늘로 옮기운 자
박성규(주님세운 교회 목사)

 

미국의 대각성운동의 주역이었던 무디 목사님께서 임종하실 때, 그의 주위에 가족과 친구들이 둘러서 있었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숨을 멈춘 것 같다가 갑자기 눈을 뜨며, “여기가 어디지? 난 분명 주님 앞에서 엄청난 대관식을 거행하고 있었는데..” 하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가 한참 후에 눈을 뜨면서 “이 땅은 점점 멀어지고 천국이 가까이 다가오는구나. 내가 죽거든 무디가 죽었다고 신문에 내지 말고 전도자 무디가 하늘나라로 옮겨졌다고 신문에 내어주시오” 하고는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무디는 이 땅에서의 사명을 끝낸 뒤 주님께서 기다리시는 천국 본향으로 옮겨졌지 죽은 것이 아니므로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디 목사님은 육신은 죽어도 그 영혼이 천국에 옮겨졌지만, 에녹은 육신과 함께 산채로 천국으로 옮겨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히11:5엔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에녹의 신앙을 세 가지로 살펴보며 은혜받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 첫째, 에녹의 신앙은 하나님과 끝까지 동행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창5:24에 보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에녹의 신앙의 특징은 노아홍수심판 직전의 사악한 시대, 죄악이 관영한 시대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동행’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할라크’입니다. “함께 걷다, 함께 산책하다”입니다. 신앙생활은 한마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동행에도 불편한 동행이 있고 즐거운 동행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과 즐거운 동행을 하려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굴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즐거운 동행을 하려면 나의 기쁨은 포기하고 주님의 기쁨을 선택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이제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그리스도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시말하면 날마다 나의 뜻은 십자가에 못박고 주님의 뜻,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성도의 삶이 절제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교회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자신의 모든 뜻과 자신의 기쁨, 자신의 명예, 자신의 영광을 날마다 버리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의 신부의 삶 인 것입니다.

동행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 의사소통입니다. 부부생활가운데 뜻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사소통은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부부간에 대화가 끊어진 가정이 46%란 말을 어느 설문조사에서 읽어 본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은 바로 한 지붕아래 살면서 일종의 별거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표현해 놓았습니다.

 

일상적인 대화는 하지만 친밀한 교제, 깊은 사랑의 대화가 끊어진 가정은 이미 별거나 다름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주님과의 동행에서 친밀한 기도, 감격과 사랑의 깊은 기도생활이 사라지고, 그냥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매너리즘에 빠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미 주님과 별거생활에 들어간 것입니다. 처음사랑의 깊은 대화가 회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마티스 트랜티란 성도가 어느날 기도하러 방에 들어가면서 아내에게 “여보! 30분이 지나면 문을 두드려줘요”하고 들어가서 기도하는데 30분이 지나 아내가 문을 두드리려는데, 남편이 얼마나 열심히 기도를 하는지 도저히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30분을 더 있다가 가보니 기도소리가 더 뜨거워 진 것입니다. 할수 없이 30분을 더 기다리고, 또 30분을 더 기다리다가 3시간이 지나서 할 수 없이 문을 두드렸더니 마티스가 나오면서 “벌써 30분이 지났어요?” 하더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렇게 주님과 뜨거운 기도의 생활을 할 수있기를 바랍니다.

 

형식적인 기도, 건성으로하는 기도가 아니라, 주님과 깊은 기도, 감격과 사랑이 넘치는 친밀한 기도생활을 통해 아름다운 동행, 행복한 동행을 이루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에녹은 사악한 시대에 자녀를 키우는데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창5:21-23에 보면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365세를 향수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에녹은 노아홍수직전의 악하고 패역한 시대에 자신을 세속에서 지켜 하나님과 동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사악한 시대에 자녀들을 모두 믿음으로 키운 것을 하나님께 인정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에녹을 너무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에녹은 사악한 시대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라고 창5:22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의 열매는 사악한 시대에 자녀들을 책임지는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에녹의 삶에는 어떤 병든 자를 고치거나 엘리야처럼 기적을 행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악한 시대에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믿음으로 세우는 일은 기적중의 기적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성령충만한 삶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악한 시대에 우리들이 자녀들을 믿음으로 바로 키우려면 하나님의 말씀위에 바로 서도록 철저한 교육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뜨거운 사랑으로 품는 것을 병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도시에 외아들을 둔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아버지와의 약속을 자주 어겼습니다. 엄격한 아버지는 “네가 다시 한번 약속을 어길 때는 이 한겨울에 추운 다락방에서 지내야 할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또다시 약속을 어겼고, 결국 아들은 추운 다락방에서 난로도 없이 지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은 유난히 눈보라가 몰아치는 추운 밤이었습니다. 부부는 아들 걱정에 잠도 못자고 밤새 뒤척였습니다. 얼마 후, 아내가 슬거머니 일어났습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당신 마음 아픈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 애를 지금 데려오면 앞으로는 더욱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거야.” 아내는 다시 자리에 누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잠시 후에 남편이 슬그머니 일어나며 “화장실에 좀 다녀오리다”하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화장실을 가지 않고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아들이 있는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

아들은 춥고 딱딱한 다락방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 옆에 누워 팔베개를 해주고 추위에 떨고 있는 아들을 끌어안아 주었습니다. 얼마 후 아들이 눈을 떠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을 안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에 눈물자국을 보았습니다. 그제서야 아들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자신이 지은 죄를 깊이 뉘우치고 훌륭한 아들로 자라났다고 합니다. 자식에게 가장 감동적인 가르침은 바로 사랑입니다.

 

부모의 가슴을 발로 차고 나간 패륜아 어거스틴을 위해 13년을 눈물로 기도한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로 어거스틴은 변화되어 중세 기독교의 거성이 되었습니다. 9명의 자녀를 모두 믿음으로 키운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는 때때로 잠시 흔들의자에 누워 앞치마를 덮고 있었습니다. 그 때가 바로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9자녀를 키우느라 잠잘시간도 제대로 없는 수산나가 유일하게 기도하는 그 시간에 그녀는 자녀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앞치마를 덮고 있었다고 요한 웨슬레는 회고했습니다. 이런 사랑의 가슴을 품은 기도의 부모에게서 위대한 신앙의 자녀들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직전의 이 패역한 시대에 우리들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녀들을 주의 말씀과 교훈과 함께 뜨거운 사랑의 기도로 키워 에녹처럼 주님앞에 인정받는 신앙의 승리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세째, 에녹은 생애 끝날까지 깨어있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창5:21-22에 “에녹이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에녹은 65세 이전에는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다고 볼수도 있는 것입니다. 65세 이전에는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뜻을 더 중히 여기고, 세상과 타협하며 세상 기쁨을 좇아 살았고, 하나님과 기도생활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65세에 무슨 계기가 일어나 Turning Point가 생긴 것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므두셀라의 탄생이라는 것입니다.

 

한번은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에녹아! 세상이 너무 악해졌지? 내가 너에게 아들을 하나 줄텐데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어라. 그 뜻은 ‘이 므두셀라가 죽는 날 심판이 임한다’는 뜻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에녹은 65세에 아들을 낳자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었습니다. 므두셀라는 ‘창 던지는 자’란 뜻입니다. 므두셀라는 마을을 지키는 보초병의 이름입니다. 이 마을에서 다른 마을을 공격하려면 므두셀라를 죽여야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므두셀라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므두셀라가 죽는 날이 심판이 임하는 날이니까, 언제 므두셀라가 죽을 지 알지 못하므로 날마다 깨어서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창7:11에 보면 노아 600세 되던 해, 홍수심판이 임했는데, 그 때가 바로 므두셀라 969세 때 였습 니다. 므두셀라가 죽는 해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홍수심판이 정확히 임한 것입니다. 한 해의 오차도 없이 예언대로 심판이 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24장에 이 시대의 므두셀라 곧, 재림 전의 7가지 징조를 2000년 전에 예언하셨고 지금 그 징조가 다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처처에 지진과 기근과 천재지변 그리고 국지전, 국제전이 일어나고 불법이 성하며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며 눅21:11에는 온 세상에 창궐하는 전염병을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눅21:34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 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심판의식, 종말의식을 분명히 할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동행이 시작됩니다.

 

제가 타코마에서 목회할 때, 어느날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여집사님이 수영장에서 수영하다가 갑자기 천장이 깨어지는 소리가 나며 수영장 전체가 흔들리는데 이제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며칠 전 교회에서 어느 집사님과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하고 헤어졌는데, 그것이 생각나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어서 주님 앞에 가면 그 집사님과 화해도 하지 않았는데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바로 그 자리에서 회개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진이 끝난 후 만사 제쳐 놓고 차를 몰고 자기와 다툰 집사님을 찾아가서 눈물로 사과하고 화해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건강한 종말신앙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자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이라도 주님 앞에 선다면 우리가 주님 앞에 심판받을 것이 바로 사랑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종말의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는 일에 성공한 산 제사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하라(롬12:1-2)”고 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날마다의 삶이 주님과 동행하며 거룩한 삶을 살고, 이 패역한 이 시대에 자녀들의 영혼을 책임지고 경건하게 살아간 에녹처럼 살다가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어두운 시대에 므두셀라를 분별하는 영안이 열려, 주님의 재림의 징조를 보고 깨어 기도하며, 십자가 사랑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며 살다가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영광중에 만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List   

크리스천 위클리
후원교회/기관
The Christian Weekly
621 S. VIRGIL AVE. #260
LOS ANGELES, CA 90005
TEL. 818.624.2190
Email. cweeklyusa@gmail.com
COPYRIGHT © 2015-2020 THE CHRISTIAN WEEKL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