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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9/30/21
[지상설교] 전신 갑주를 입으라(에베소서 6:10-17)
박헌성(나성열린문교회 담임목사, IRUS 총장)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라는 영화의 실제 모델은 유진 앨런이라는 사람인데 1952년부터 1986년까지 34년간 8명의 대통령의 수발을 든 버틀러 이야기입니다. 2008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Washington Post 지와 인터뷰하면서 94세 유진 앨런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흑인 노예로 끌려와서 핍박과 탄압을 받고 수많은 차별을 받아온 흑인들의 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입니다.

 

미국은 흑인들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 남북전쟁을 치렀습니다. 그 전쟁으로 엄청난 상처, 피해, 손실이 있었지만 그 결과로 인간의 자유와 존엄, 숭고하고 의로운 역사가 새롭게 이루어졌습니다. 이 남북전쟁의 특징은 칼의 승리요 붓의 승리라고 부릅니다. 총칼로 싸워 이긴 사람이 링컨 대통령이라면, 붓으로 싸워 이긴 사람은 스토우 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토우 부인은 ‘엉클 톰스 케빈’ 우리 말로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라는 유명한 소설입니다. 그것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용기를 주어 노예해방을 이루는데 불씨가 됐던 사람입니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 이 두 사람이 마주 앉게 되었을 때 링컨 대통령은 스토우 부인을 보는 순간 ‘어떻게 이런 나약한 여자가 그처럼 큰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의아해 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링컨 앞에 앉은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가냘프고 나약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링컨의 생각은 우락부락한 여장부를 상상하던 터라 연약한 여자를 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나는 엉클 톰스 케빈을 쓴 부인이 이렇게 가냘픈 여성인지 몰랐습니다.” 그 말을 듣고 스토우 부인은 “그 글은 제가 쓴 것이 아닙니다. 노예해방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저는 다만 잠시 그분의 대필자가 되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통하여 흑인 노예해방이라는 이 엄청난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저는 평소에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경건하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훈련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잘것없는 저를 사용했습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있기에 이 땅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오늘도 우리는 거룩한 주일 영적 훈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경건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믿음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 열심히 영적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성도, 믿음 있는 성도가 그냥 되는 것 아닙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 영적 능력이 있는 성도가 하루아침에 쉽게 만들어지는 것 아닙니다. 오랫동안 피눈물 나는 경건의 훈련을 통해서 믿음이 충만해지고, 성령이 충만해지고 은혜가 충만해지고 영육이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역사의 훌륭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 십자가의 군병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훈련소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좋은 군인이 되겠다고 하면 먼저 훈련소에 가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제식 훈련, 유격 훈련, 총 쏘는 훈련 등 군인으로서 기본적인 여러 가지 훈련을 받아야 강하고 좋은 군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믿는 우리를 십자가의 군병이라고 합니다. 십자가 군병들은 교회라는 훈련소에서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신 갑주를 입고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십자가 군병의 기본 훈련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우리가 전신 갑주를 입을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예배 훈련을 비롯해서 말씀 훈련, 기도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첫째가 예배 훈련을 잘 받아야 전신 갑주를 입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교회를 회당이라고 합니다. 회당이 그들의 삶의 센터입니다. 회당에서 매주 안식일 토요일 예배를 드리는데 4시간 이상 드립니다. 매일 매일 나와서 성경을 공부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우리보다 훨씬 더 까다롭습니다. 오늘날도 구약에서 먹지 말라는 것은 먹지 않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루에 세 번 기도하고 집에서 나가고 들어갈 때 쉐마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면서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름에도 검정 양복을 입고 다니는데 하나님 경외의 표시입니다. 검정 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하나님의 지배, 하나님의 보호,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행위는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납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나의 나 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천지창조 이후에 인간은 항상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아 왔습니다. 특별히 성경은 인간에게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응모하는 존재임을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믿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특권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께 대한 섬김, 예배인 것입니다. 기쁨과 감사로 교회에 올라 예배할 때에 우리의 영이 소생함을 받고 참 자유를 누리며 풍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적으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온전한 마음과 영적으로 예배할 때에 예배는 하늘에 상달 되고, 우리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교회에서 예배를 통하여 해결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병든 자를 치료합니다. 건강을 회복시킵니다. 기쁨을 회복시킵니다. 영력을 얻게 하고 성령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는 목마른 자의 생수가 있습니다. 죄인을 위하여 보혈의 피가 흐릅니다. 가난한 자의 양식이 있고 옷 없는 자의 옷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교회를 찾고 영적으로 예배에 동참하면 전신 갑주를 입혀 줍니다. 잔이 넘치게 하고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는 것입니다.

 

둘째는 말씀의 훈련을 잘 받아야 전신 갑주를 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충만히 거하게 될 때 우리의 생활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에 우리의 가정도 사업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일찍이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말씀 위에 굳게 서 있는 그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일찍이 주님께서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예배와 하나님의 말씀이 뒤로 밀려나고 소홀하게 다루어지면 언제나 영적으로 타락했습니다. 개인도 그랬습니다. 민족도 그랬고 한 국가도 그랬습니다. 예배와 말씀이 지배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행했습니다. 자기 좋은 대로, 자기 편한 대로 행했습니다. 사사 시대도 그랬습니다. 중세 R.C.시대도 그랬습니다. 예배드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니 자연 부패하게 되고 종교적으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가 빛나고 부귀영화를 누릴 때가 언제였습니까? 그때는 신령한 예배가 드려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했을 때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이 읽히고 연구되고, 선포되고, 그 말씀대로 행동하며 그 말씀의 지배를 받을 때에 무엇이든지 잘 되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풍성했습니다. 심령과 가정이 민족과 국가가 부요하고 부강했습니다.

 

 

셋째는 기도의 훈련을 잘 받아야 전신 갑주를 입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녀가 간구할 때 부르짖을 때 기뻐하시며 들어 주십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가 기도하면 그 다음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허무하지만 내가 기도해서 얻은 일은 영원히 나의 일이요, 영원히 하나님께 영광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중요합니다. 기도의 사람들은 문제가 있을 때에도 기도했지만,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위해서는 철저하게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붙드시고 내 생애를 책임져 주십니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후회 없는 축복된 삶을 살게 해 주실 것을 나는 굳게 믿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내 생애 속에 차곡차곡 하나하나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우리처럼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고 자연을 움직일만큼 영력 있었던 것은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밖에도 찬송 훈련, 헌금 훈련, 전도 훈련, 봉사 훈련, 친교 훈련, 교회에서 하는 신앙생활의 모든 행위가 다 전신 갑주를 입기 위한 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여러 가지 십자가 군병의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전신 갑주를 입고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교회에서 잘한다고 하는 일이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누구나 부딪치면 섭섭해지고 괴롭습니다. 농담도 지나치면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시험에 빠지지 말고 모든 것이 전신 갑주를 입는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잘 견뎌야 합니다. 서로서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왜요?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해변가에 가면 아름다운 조약돌이 있습니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조약돌이 서로 부딪칩니다. 부딪치고 부딪치면서 모든 못난 부분들이 깎여서 누구나 갖고 싶은 아름다운 조약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라고 하지만 더러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딪칠 때 도망치면 아름다운 조약돌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밑에 엎드려 함께 손잡고 “나도 죄인, 너도 죄인, 우리가 이렇게 못났으니 주님이 우리를 위해 피 흘리지 않았느냐? 우리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고 더욱 사랑하자.” 그럴 때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의 심령에 뚝뚝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전신 갑주로 무장된 십자가의 좋은 군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군인에게는 승리만이 있습니다. 군인이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한다면 무슨 이유와 변명이 있겠습니까? 군인은 오직 승리만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십자가의 군병이라고 했습니다. 공중권세 잡은 악령들과 원수 마귀 사탄과 싸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무장해야 합니다. 열심히 훈련받아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해야 합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으로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얼마 전 자기를 따르던 제자들에게 한 말씀 하시기를 ‘내가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검 없는 자는 겉옷 팔아 살지어다’ 무슨 말씀입니까?

 

 

큰일 날 일 아닙니까? 지금까지 예수님은 모든 일에 사랑과 평화를 강조하며 가르쳤습니다. ‘오른 뺨치면 왼뺨도 돌려대라,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가주라, 겉옷 달라고 하면 속옷도 주라, 원수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언제나 사랑으로 섬기라고 은혜스러운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겉옷이라는 것은 이불 겸용입니다.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겉옷은 긴 천 옷감 한 폭입니다. 단추 같은 것은 없고 몸에 휘감으면 됩니다. 하나 걸치면 원피스가 되고 두 개 걸치면 투피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누워서 덮으면 이불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이스라엘 사람들의 겉옷입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 검 무기를 사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문자 그대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그것을 보고 주님이 족하다 됐다 했습니다. 지금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칼이, 검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칼, 검이 중요하다는 것은 싸울 준비를 하라는 것 아닙니까? 전투 싸움을 위해 비상한 마음의 각오를 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싸울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전제되는 말씀이 “주 안에서” “In Christ”입니다. 바울은 성경에서 이 말을 수차례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싸움은 주 안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In Christ’라는 말이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신비스러움이 있습니다. 신묘막측한 일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생명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건강이 있고 부요함이 있습니다. 나 혼자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전신 갑주를 입고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 힘의 능력으로” 십자가의 능력, 부활의 능력으로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준비된 만큼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준비되었다는 것은 항상 배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배워야 합니다. 경건의 훈련을 통해서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믿음으로 보혈의 능력 십자가의 능력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우리들은 이 세상을 살 때 전신 갑주를 입고 그 능력으로 싸우며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이성적인 판단, 합리적인 판단이 신앙적인 판단과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신앙적 태도를 가지고 싸우며 살아야 합니다.

 

열 명의 정탐꾼이 보지 못한 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하나님이 전쟁에 개입하시면” 이길 수 있다는 신앙적 태도를 그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잊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이기지 못합니다. 가나안 점령하는 것 쉬운 일 아닙니다.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그 싸움은 별 것 아닙니다. 그것이 전신 갑주를 입은 십자가 군병의 신앙적 태도입니다. 그런데 열명의 정탐꾼은 하나님을 계산에 넣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의 가장 귀한 축복, 가장 큰 무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계산에 넣고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Plus입니다. 언제 어디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해도 항상 하나님을 계산에 넣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전신 갑주를 입고 세상을 향하면 우리는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기도하며 찬송하며 전신 갑주를 입고 싸웠더니 지진이 일어나고 옥터가 움직였습니다. 쇠고랑이 끊어지고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안에서 전신 갑주를 입으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러므로 전신 갑주를 입으면 하나님을 향해서 세상을 향해서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영적인 싸움입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그렇습니다. 언제나 전신 갑주로 자기를 무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악령과의 싸움입니다. 이 세상일 육신 일 때문에 염려하며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사소한 일에 신경 쓰며 인생을 낭비해선 안 됩니다. 자신을 살피며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보며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그렇습니다. 성도는 전신 갑주를 입고 무장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하고 의로워야 합니다. 진리와 믿음 위해 굳게 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기도와 찬송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헌신과 충성으로 무장돼 있어야 합니다. 전신 갑주를 입고 천국 가는 그날까지 힘차게 싸워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전신 갑주를 입고 우리가 열심히 싸우면 우리의 대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승리를 보장해 주실 것입니다. 힘든 일 있어도 낙심하지 마세요. 좌절하지 마세요. 용기를 가지세요. 믿음을 가지세요. 승리의 확신을 가지세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의 승리는 우리들의 승리입니다. 이 세상과의 싸움, 영적 싸움에서 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능력 있는 성도, 능력 있는 교회 되어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꼭 이겨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신 갑주를 입으시고 예수님과 더불어 인생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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