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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3/02/22
[지상설교] 차별 없는 세상(마태 5: 43-45)
이창순(월셔연합감리교회 원로목사)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마태 5: 43-45)

 

차별 없는 세상을 우리는 꿈꿉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런 세상을 바라죠. 그런데 차별 없는 세상은 차이를 인정받는 세상을 말합니다. 차이를 인정받을 뿐 아니라 존중받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전제로, 차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남을 차별 할 때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쉽고, 혹은 차별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를 의식 못할 수 있는 경우도 있으나, 내가 차별을 받을 때에는 불공평하다고 판단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차별(Discrimination)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면 우리는 차이(Difference)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합니다. 차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것이 차별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차별과 차이를 분명하게 의식하지 못하면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다고 하면서도 우리 스스로가 차별을 만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선민사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뜻이고 여기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민사상이 차별로 항상 나타났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들을 차별했다는 사실이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 간에는 서로 형제자매로 돕고 사랑해야 하지만 이방인들은 그들의 형제자매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만을 사랑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그런 사상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대로, 하나님은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왜 악인과 선인을,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구분하셨을까요? 그리고 왜 악인과 선인을 다 돌봐주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문제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동족들만 제일이라는 편견을 가지고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이 아닌, 즉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여호와는 유대인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유대인은 서로 이웃이기 때문에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이방인은 원수로 생각해서 미워해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은 너희가 악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 불의한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똑 같이 축복하시고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로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해도 그들은 심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타민족에 대해서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요즘 언어로 표현하면 인종편견 내지 인종차별이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는 경우가 많고 그것이 차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회의 모든 구조 안에서 그런 편견과 차별이 인간사회를 어지럽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찍이 예수님은 인간 평등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꾸어 오고 이를 위해 투쟁한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차별의 역사는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 난 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역사의 비극인 살인이 바로 그 때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계속 발전해 가면서 억압받고 차별받는 사람들의 항거와 또 인간의 자아의식의 발전으로 차별에 반대하는 항거세력들이 생기면서 변화를 가져오고 있고 지금까지도 그런 변화의 물결이, 때로는 태풍과 같은 파도를 타고, 때로는 평온하지만 힘차게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개인 뿐 아니라 집단으로도 차별을 자행해 왔습니다. 그것이 인종이 되기도 했고 사회의 어떤 특정한 집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차별에 대해 항거하는 정신이 바로 기독교 정신에서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꼭 같이 비와 햇빛을 주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기독교의 핵심 교리이고 여기에서 탄압받는 모든 사람들이 점차로 일어나서 평등을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대세가 특히 중세기 암흑시대를 지나면서 인간들이 무지의 어둠을 물리치고 빛을 찾아 꿈을 실현해 나가기 시작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옛날과 같은 노예제도가 거의 없어졌습니다만, 흑인들이 일어나서 인간평등을 부르짖었고, 그 다음은 여성들이, 그 다음은 노동자들이, 그 다음은 사회의 약자들이 들고 일어나서 공평과 평등을 부르짖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역사의 대세가 오늘까지 이어지면서 차별 없는 세상을 구현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윌셔교회는 이런 역사 가운데 아주 뚜렷한 좋은 예가 되고 있습니다. 윌셔교회는 본래 상류층 백인들이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흑인 교인이 이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백인교인들은 두 의견으로 갈리었습니다. 저들을 환영해야 한다는 의견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결국 반대하는 백인들은 교회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소수인종 부목사가 최초로 파송을 받아 부임했습니다. 역시 교인들 가운데는 찬반으로 갈라졌습니다. 결국 반대하는 그룹들은 교회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우리 한인들이 들어와서 한인목회를 시작했을 때에도 같은 찬반이 있었습니다. 결국은 우리를 환영하는 목사님과 교인들 때문에 우리는 이 교회로 들어올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교회를 떠난 백인교인들도 있었습니다.

 

한 때 알란 죤스라는 백인목사님이 윌셔교회 담임목사로 파송 받아 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영국에서 유학을 왔었고 나와 함께 Claremont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몇 년 후 우리는 윌셔교회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는 수석목사이고 나는 여전히 부목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이가 좋았고 협력을 잘 했습니다.

 

어느 날 동성애 교인 문제로 나와 논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동성애 신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고, 나는 동성애자들을 차별해서는 안 되겠지만 동성애 자체는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때 그 목사님이 위의 윌셔교회의 역사를 지적하면서, 그런 차별들을 극복하면서 흑인교인이 들어왔고 소수인종 목사가 들어왔고 한인들도 들어왔는데, 이제 이 교회의 주인이 된 한인들이 동성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차별이라고 역설을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결론을 지었습니다. 당신이 주장하는 차별을 우리가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는 아직 동성애자들을 받아드릴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문화 정체성인지 모르겠다고 설명을 부가했습니다.

 

그 말은 들은 그 목사님은, 우리들의 문화의 차이를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더 이상 논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저는 그 목사님으로부터 배운 점이 많았습니다. 그 분은 차이를 인정할 줄 아는 분이고, 그 차이 때문에 차별은 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인식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한 때는 동성애는 행위 자체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잘못된 행위이고 그래서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의 인식과 압력 때문에 많은 동성애자들이 그늘에 묻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동성애는 행위일 수도 있지만, 타고 난 본성일 수도 있다는 의학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고 이제는 그 연구 보고를 다수가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동성애를 내가 받아드리느냐 아니냐는 나 개인의 문제이고, 그렇게 태어났다면 그들은 그들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도록 돕지는 못할망정 억압이나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지론이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법적으로 동성애를 인정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적어도 인간의 평등을 국가의 기본 가치로 여기는 미국에서는 동성애자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내가 동성애를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차별하는 것은 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다 나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장애자들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것과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도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가 싫은 것을 나쁜 것으로 간과 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더 나아가서는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차이는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차이를 옳고 그름으로 구분해 버리면 흑백논리라는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잘못이라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문화의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이들의 예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 때는, 백인의 문화는 옳고 우수하고, 흑인이나 동양의 문화는 미개하거나 열등하다는 차별의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백인문화가 세계문화의 기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는 그런 차별이 거의 인정되고 있지 않습니다. 각 문화는 차이가 있을 뿐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잘 아는 분의 딸이 동성애자입니다. 처음 그 사실을 안 부모님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경악했습니다. 딸을 붙들고 달래고 야단치고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해서 설득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부녀지간의 인연까지 끊어버리는 데까지 갔습니다. 딸은 부모에게 불복하는 것도 아니고 항의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딸은 눈물을 머금고 부모 곁을 떠났지만 너무 성실한 사람으로 현재는 대학의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그 분들에게도 적용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착하고 성실한 딸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딸을 다시 품에 품었습니다. 그리고 그 딸의 삶을 더 이상 간섭하지 않고 단지 딸로 사랑할 뿐입니다.

 

제가 아는 그런 가정이 그 하나 뿐이 아닙니다. 동성애에 대해 앞장서서 반대하시던 어느 목사님은 당신의 틴에이지 딸이 동성애라는 것을 발견하고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예도 있습니다. 사정은 다 같았습니다. 동성애 그 자체를 하나의 차이로 인정하고 다른 자녀들과 꼭 같이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들은 그들의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십니다. 왜 우리를 사랑하시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차이를 인정해 주십니다. 차이 때문에 모든 것이 공평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 평등합니다. 우리는 그 평등 때문에 여러 차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꼭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중요하게 일러 주셨습니다.

 

우리 연합감리교(United Methodist Church)의 표어가 있습니다. Open Hearts. Open Minds. Open Doors. 열린 마음, 열린 생각, 열린 문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표어가 바로 차이를 서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주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십시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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