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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6/15/22
내의 타인종 목회 경험(12) 내가 연회 공식 석상에 서게 되다니!
이승은(UMC 은퇴목사)

 

나는 동부에서 신학교를 졸업했고 타 주 목회 중 본 연회 남가주 지역의 먼 지역에 파송 되었기에 아는 한인 목사들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나의 어려운 상황을 나누기가 용의치 않았고 모두 이민목회 활동에 바쁜 그들이 아닌가.

 

또한 감리사와의 미팅에 나와 함께 동행 해 준 목회자가 감독님으로부터 본인을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졌다며 더 이상의 동행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나는 전혀 몰랐던 지도층의 그러한 현상을 배우며, 이해하며 받아들여야만 했다.

 

우리는 소수민족으로서 주류 인종인 상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이방인임을 재차 실감하며 한인 목회자들이나 한인 지도자들에게 어떠한 폐가 안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오로지 주님과의 교통으로 힘을 얻었다. 사실 그 방법이 최상이 아닌가.

 

나는 서둘러 다른 목회자에게 의뢰하게 되었는데 남성 목회자 자리도 부족한데 여성목사 안수자 비환영이라는 유감스런 견해를 듣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시점 또 다른 목회자를 찾기가 쉽지 않아 신임하고 더욱더 기도에 힘쓰며 나아갔다.

 

어느 날 나는 사막 더위 속 육체적 피곤함과 심리적 압박 때문이었는지 계속되는 컴퓨터 대화 가 오고간 후 일어나 나오다가 그만 쓰러지게 되었는데 그후 여러 합병증세로 인해 신체 약한 부분을 수술 받게 되었다.

 

퇴원 후 안정을 취하는 가운데 자정이 가까운 늦은 시간에 전화 벨이 요란히 울렸다. 연회를 바로 앞두고 관련 부서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는데 빨리 컴퓨터 열고 곧 싸인을 해서 보내라는 것이었다. “Go, Go~~!” 하나의 강압적인 종용이었다.

 

나는 수술 후 제대로 거동이 힘들었던지라 엉금엉금 기어가서 이메일을 열게 되었다. 아마도 급한 어떤 행정적 처리인가 여러 의혹 가운데 이메일 내용을 여니 잘 이해가 안되는 내용이었다.

 

과거 사망의 골짜기에서 새 생명의 감사와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오로지 복음 사역에만 열중해왔던 나로서는 마치 작은 밭을 열심히 일구며 앞으로 나아가는 시골 아낙네와 같아 거대한 체제 속에서의 어떤 행정, 정치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부끄럽게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오밤 중 나의 수술 후 한마디 안부도 없이 급한 싸인 요구, 기간 안에 오차 없이 짜맞추려는 체제 앞에, 때론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규범 앞에 중시되어야 할 인간관계는 경시되고 마치 기계처럼 진행되는 차가운 현실을 보는 것 같았다.

 

또 전 감리사는 전교회의 교인에게 불편했던 목회 사항을 보내라는 억지 요청과 전 지역의 이웃 목사에게 나의 목회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보고하라 요청했다. 그 백인 목사의 보고는 사실이 결여된 보고였는데 과연 그분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을 역력히 읽을수 있었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독실한 어머님의 신앙 안에서 참는 자의 복, 또한 어떤 고난에도 기도밖에 없다는 것과 ‘여자는 잠잠하라’는 한국의 전통적 신앙 훈련으로 인해 ‘침묵’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연회 중 감독님, 케비넷 멤버들, 전 목회자들 앞에 과감히 서게되는 결심에 이르게 되었다. 보통 그런 자리는 예를 들어 목회자의 어떤 재정적 과오나 교인들과의 관계에서 분명하게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행해지는 일종의 징계의 자리라고 할 수 있는데 나의 경우엔 전혀 해당이 안되는 자리였다.

 

그리고 어떤 부당한 경우 해당 목회자에게 발언권이 주어지는데 이미 지도부에서는 거의 결정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어서 제도적인 위력 앞에 이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볼수있다.

 

또한 해당 감리사의 부정적 평가와 감리사들의 모임인 캐비넷에서 동조하면 영락없이 약자가 되어 아무리 사실 주장을 해도 다수 투표권은 윗지도층 쪽으로 기울어지게 됨을 알수 있다.

 

평소 조용히 침묵을 지켜온 소수민족 여성목회자가 연회의 공적인 자리에서 공정을 외친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심한 내적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가운데 내 일생 일대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는데 하나님 말씀이 세차게 내 마음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힘과 용기가 되었다.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전도서 3:7).

 

우리는 때때로 이방인 취급을 당하며 혹시 뭐가 잘못되는게 아닐까 걱정하며 소리를 죽이고 여러 크고 작은 상처를 습관화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상처를 피하고 덮어만 가기엔 갈길이 멀지 않은가.

 
나는 주님께 지혜의 말문을 열어 주십사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작은 한국여성 목사가 연회의 공식석상에 서게 되었다. 그것은 반드시 내 개인적 이유만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보다 효과적 복음 확장을 위한 재각성과 복음전파에 대한 감사의 특권이었다.

 

나는 소수민족 목회자 한사람으로서 겪었던 부당한 평가와 인종차별, 또한 한인목회자들의 복음전파에 대한 큰열정, 그리고 동양인 목회자와 백인 목회자에 대한 관심도와 성장을 위한 배려의 불균형등에 관해 과감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는 과연 주안에서 하나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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