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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2/07/23
평범한 인생에서 탈출하라(행1장 4-11절)
심상은(갈보리선교교회 목사, 현 오렌지카운티 교협회장)

 

예수님 당시 세계는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권력은 정말 대단한 것이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시키는 일까지도 죄수 한명 죽이는 것처럼 쉽게 하였습니다. 아직도 예수라는 이름만 말해도 잡혀갈 수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로마병정의 시퍼런 칼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예수님 제자들이 땅끝까지 가서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이고 목숨 걸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사명이었습니다.


갈릴리 지방에서 평범하게 태어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러한 사명에 대해서 말씀하셔도 그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말씀하시는지 전혀 느낌도 없는 그런 인생들이었습니다.


평생 고기 잡아 먹고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세상을 변화시키고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제시하시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무언가 위대한 일을 보여주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6절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을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나셨으니까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라면 이제는 정말 자기 나라가 로마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하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그들이 무슨 자기 민족 해방에 독립투사들입니까? 나라의 해방을 위해 운동을 펴는 비밀 조직원입니까? 그들은 그져 하루하루 고기잡고 먹고 사는 평범한 동네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토록 민족 해방을 원하는가 하면 로마의 속박에서 벗어나면 고기 팔아서 벌어들인 소득가운데서 로마에게 세금도 덜 낼수 있고 좀 더 많은 이익를 가져갈 수 있고 빵을 사도 한 개 더 살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예수님에게 자기 나라를 해방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떠십니까? 예수님을 찾아오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 한테서 무얼 구하기 위해서 입니까? 아니면 좀 더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입니까? 예수님을 그토록 찾으시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의 영적 상태가 평범한 인생 그대로인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한 평범한 인생으로는 아무런 역사를 이룰 수가 없다는 것도 예수님은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평범한 인생에서 탈출시켜서 역사의 위대한 인생으로 사용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행하시는 중요한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영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영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육신의 영에서 이제는 성령의 사람으로 바꾸기를 원하셨습니다.


5절을 같이 보십시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평범한 인생에서의 탈출! 그것은 그들의 삶에 성령 세례를 받는 일에서 시작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평범한 인생이라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다면 로마는 물론이고 세계 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으로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을 펼쳐 든 우리들은 이일이 오늘도 일어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 시절에 일어났던 일만 소개하고 28장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고 지금 이시대에도 여전히 성령님께서 오늘날 교회를 통해 29장을 이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평범한 인생에서 탈출하기 위해 예수님이 성령세례를 받아라고 하십니다.


성령세례란 무엇입니까? 성령세례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바로 세례요한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말하면서 성령세례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마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여기서 요한은 성령세례와 불세례 두가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과 불세례를 한가지로 성령세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5절에서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행 2장 3, 4절에서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였더니 저희가 다 성령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성령충만이라는 말은 성령세례와 같은 것입니다.


행10:44-46절에서는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 집에 초대되어 예수님에 대해 증거를 하고 있을 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랐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을 경험한 베드로가 행11:15-17에서 고넬료 집을 방문했을 때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이처럼 예수님이 평범한 인생들이 받기를 원하셨던 성령세례라는 것은 성령이 임하면(행1:8), 성령이 임하셨다(행19:6), 성령의 선물(행2:38), 성령을 받다(행19:2),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우다(눅24:49), 내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눅24:49)라고 표현되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세례 받을 때 물속으로 푹 들어갔다 나옵니다. 물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나도 십자가 위에서 죽었고, 물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은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다시 사실 때 나도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죄 회개하고 세례받을 때 그때 하나님은 우리 육신의 영을 성령으로 바꾸어 버리십니다.

우리 영이 성령님 안에 푹 잠기운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영이 바뀌어버립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육신의 영으로 살았습니다. 온갖 죄의 영으로 살았습니다. 그때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 영이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죄의 길로 가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미움과 저주의 영, 절망과 낙심의 영, 영이 죽은 상태에서 그져 하루 하루 살아가던 것이 바로 우리의 영의 생활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그 시간부터 우리 속에 새로운 영이 들어왔는데 그 영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삶에 들어오면서부터 이제는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부터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평범한 인생에서 탈출은 바로 여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행 19장에 보면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아볼로라 하는 학문이 많은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성경에도 능한 자여서 예수님은 그리스도라고 많은 유대인들 앞에서 증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아볼로의 가르침을 들어보니까 뭔가가 하나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고 그 사람에게는 성령님이 빠져 있었습니다.

 

아볼로의 가르침을 받은 에베소 교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령에 대해서 들어보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그저 머리로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어떠한 영적인 생명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가 예수님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어봅니다. ‘너희가 성령을 믿느냐?’라고 물어보지 않고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로 물어보았습니다. 성령은 받는 것이지 지식으로 믿는 차원이 아니란 것입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지금까지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냥 성경공부 가운데 성령의 부분이 나오니까 성령이라는 것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넘어갔지 성령은 받아야 하는지는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고 신앙생활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성령이 뭔지도 들어본 적이 없는 현대판 사도행전 19장의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우리교단에서 목회자가 되실 분의 면접을 볼 때가 있었습니다. 그 후보자는 타 교단 교회에서 나름대로 제자훈련 공부를 다 마치고 자기 교회 소그룹의 리더의 자리에서 열심히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세례 받았는냐고 물어보니까 그 사람은 성령세례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금시초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목회자가 될 사람이 성령세례에 대해서 금시초문이라고 하니 참으로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뿐이겠습니까? 수많은 제자훈련, 수많은 성경공부, 마치 성경공부 홍수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기독교 책방에 가보면 수 천, 수 만권의 책들을 만들어 그리스도인들의 머리속에 지식을 전달하느라 바쁩니다.

기독교의 지식이 선포됨으로써 죽음의 침묵이 흐르던 뼈들이 살아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지식적으로 풍성하다 할지라도 영이 여전히 어둠의 영가운데 있다면 마른 뼈와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 속에 성령님이 임하시면 내 육신의 영이 성령의 영으로 바뀌게 되고 지식에 까지 새로워지게 됩니다. 내 영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게 되는 순간부터 그동안 단순히 되풀이 되는 죄의 회개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새 생명 얻은 몸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완성입니다.


회개의 세례만 알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복음의 절반만 아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도로 살아가는 신앙생활은 단순한 기독교라는 종교적 자리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심으로 내 삶에 어떤 변화의 증거가 생겨났느냐, 내 안에 성령님을 모심으로 영적인 새 생명을 누리고 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 말씀하신 대로 마가 다락방에 모여있던 정말 평범한 동네 주민들이 오순절 날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 과연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의 삶에 영적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아무것도 못하고 그져 평범하게 살아가는 마른 뼈와 같은 인생 같았는데 성령 세례를 받으니 세상에.... 그들이 알고보니 큰 군대였습니다. 큰 용사들이었습니다.

 
그져 무기력하게 희망도 없이 그냥 사는 사람들 같았는데 성령이 그들의 삶에 들어가니 잘 하는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전도도 잘하고, 봉사도 잘하고, 나누기도 잘하고, 이웃도 잘 섬기고, 삶에 기쁨이 회복이 되고, 절망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삶의 가치관이 성경적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났습니다. 전에는 주의 일에 관망하던 사람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뛰어듭니다.


형식적으로 교회만 왔다 갔다 하던 사람들이 예배가운데 하나님을 만납니다. 삶을 비관하며 절망가운데 살던 사람이 이제는 내일을 향해 뛰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이전의 연약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담대하게 온 동네를 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성령님 속에 푹 빠진 것입니다. 그들의 가슴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기 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 생명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사람으로 쭉 살다가 하나님 앞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다시 마가다락방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요즘 신앙생활 어떠십니까? 아침에 일어나도 전혀 영적인 느낌이 없고, 기도를 하지만 그져 몇분 정도 일상생활의 안녕만 비는 형식적인 기도로 끝나고, 예배를 드려도 전혀 감동이 없이 평범하게 매 주일을 지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 평범한 인생에서 탈출해서 위대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면 부디 성령이 여러분의 가슴에 임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성령이 임하면 여러분의 그 평범한 일상에 혁명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으로 위대하게 쓰임 받으시는 남은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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