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국빈방문으로 지난주 미국을 다녀갔다. 영어로 상하 양원 의회 연설도 하고 만찬장에선 ‘아메리칸 파이’란 노래를 즉흥으로 불러 일약 세계적 스타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 뉴스를 들어보면 윤석열이란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앵커가 많지 않았다. 윤서결, 윤스결, 그런식으로 정확하지 않았다. 나 역시 대통령 이름을 윤서결? 아니면 윤성녈? 아라 까리하다. 나도 이러하거늘 미국의 앵커나 리포터들은 더할 것이다. 대부분은 그냥 ‘사우스 코리아 프레지던트’라고 말하면서 이름은 생략하고 지나갔다.
미국사람들이 우리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해서 불러주면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그냥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넘어가는게 이 땅에서 쫄며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다. 내 이름도 ‘명환’이라고 정확하게 불러주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대개 ‘멍’. . 혹은 ‘뭉’ . . 라스트 네임은 그런대로 또렷하다. 아마 ‘조’는 발음하기가 훨씬 쉽기 때문일 것이다.
내 운전면허증에는 Myung Hwan Cho이지만 여권에는 Myunghwan Cho로 되어 있다. 한국이름에 미국처럼 미들네임이 없기 때문에 명환이 퍼스트 네임이다. 그러나 후사를 염려하지 않고 이민초기 되는대로 이름을 둘로 짤라 여기저기 적어냈더니 어떤 때는 명, 어떤 때는 명환이 된다. 그런데 소셜 연금을 타려고 갔더니 문제가 생겼다. “네 이름이 명 조냐? 아니면 명환 조냐?” 다짜고짜 시비를 걸고 나오는 것이다. 설명을 한다고 했는데 어디는 명, 어느 문서에는 명환, 이래서 곤란하다고 겁을 주는 바람에 진땀을 흘린 적이 있다. 겨우 알아먹게 설명을 해서 극적 위기모면. 좌우지간 소셜연금은 그때부터 내 체킹 구좌로 꼬박꼬박 들어오고 있으니 감사 또 감사다.
그때 속으로 한 말이 있다. “아니 우리가 미국 살면서 너희들 이름 때문에 고생한 걸 말해 줄까?” 가주 주지사를 지낸 영화배우 출신 아놀드 슈와츠네거, 그 이름이 입에서 쉽게 굴러나올 때 까지 우리는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너희들이 알기나 해? 현 연방 교통부 장관 피터 부티지지란 이름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정치인들 뿐인가? 프로농구(NBA) 밀워키 벅스의 스타 플레이어 야니스 아데토쿤보, 이 이름을 입으로 뱉아 낼 재간이 있는가? LPGA에 혜성처럼 나타난 ‘태국군단’중에 패티 타바타나킷, 아탸야 티티쿤같은 이름은 돈 주고 불러보래도 망설일 것 같다. 부르기가 어려워서다.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 이름부르기가 이렇게 힘든 것처럼 이 나라 사람들이 한국 이름 정확하게 불러주는 것도 여간 어려운 고행(?)이 아닐 것이다.
발음이 어렵던 말던 이름은 중요하다. 내가 만약 천국에 갈 경우 ‘생명책’에는 그냥 ‘조명환’일까? 아니면 미국으로 귀화했으니 Myung Hwan Cho? 소셜 사무실에서 명환이냐? 명이냐로 시비를 걸듯 천국에서도 띄어쓰기로 시비를 걸면 어쩐다? 나는 오래전 비즈니스를 해서 돈을 왕창 벌어보겠다고 이름을 ‘마이클’로 바꾼 적이 있다. 내 이름이 명환으로 시작되니 M으로 시작되는 마이클이 좋겠다 싶어서였다.
그런데 꼭 양복에 넥타이 매고 짚신을 신은 기분이었다. 한 일년 마이클로 살다가 어머님이 지어주신 전설적인 밝을 명, 불꽃 환으로 되돌린 적이 있다. 혹시 생명책에 마이클과 명환이 헷갈리는 바람에 당연히 천국 생명책에 기록되어야 할 내 이름이 혹시 지옥에가서 붙어 있으면 사후 내 미래인생이 완전 뒤바뀌는 비극의 시나리오가 아닌가? 마치 병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들의 실수로 아이들이 뒤바뀌듯 말이다. 그런 이치라면 이름을 함부로 바꾸는 것도 조심해야 된다?
사실 영어 이름 중에 세계적인 대세는 베드로(Peter)와 바울(Paul)이다. 천국 생명책에 아마 이 두 이름이 반은 덮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라스트 네임이 틀린다 해도 동명이인이 넘치고 넘칠 판에 이걸 어떻게 이름대조를 해서 실제 인물의 행적 조사를 할수 있단 말인가? 이건 하나님의 소관이시고 천국행정실의 업무소관이니 내가 걱정하다가는 괜히 불경죄 혹은 의심죄로 내 이름위에 빨간 줄이 그어질지 모르니 조심해야 할 일이긴 하다.
국빈방문으로 미국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하기 위해 노력하신 미국의 언론인들에게 심심한 경의를 표하면서 그러나 발음이 어렵고 쉽고를 떠나 이름은 내 인생의 대명사인 것은 틀림없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그 이름을 남기려고 온갖 추하게 살다보면 호랑이 가죽만도 못한 인생이 되고 만다.
우리의 목적은 죽으나 사나 생명책에 내 이름 석자를 올리는 것이다. 이민와서 고생고생해도 생명책에서 제외되면 그 인생은 꽝이다.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마이클로 혼동하실 리는 없다. 그냥 내 가진 이름 이대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살다 보면 다 해결될 일을 가지고 쓸데없는 걱정이 앞선 것이다. ‘네 염려를 주께 맡기라’고 베드로 사도가 그렇게 타 일렀건만 나는 불신자처럼 이상하게 의심이 찾아올 때가 많다. 회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