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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5/30/23
[지상설교]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라(고린도전서 13:5)
정상용(샌디에고 연합감리교회 목사)


싸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싸움은 끊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싸우지 않을 수 있을까요?

 

싸우지 않는 법을 쉽게 말하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면 싸움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사랑하는 것인가요? 성경은 사랑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고전 13:5).

 

마귀가 가장 원하는 것은 우리가 싸우는 것입니다. 싸우다가 다 죽는 것을 마귀는 보기 원합니다. 마귀가 우리를 싸우게 하기 위해서 가장 즐겨 쓰는 말은 이것입니다. “손해 보지 말아라. 너의 권리를 주장하라.”

 

가정에서도 마귀는 그렇게 말합니다. “손해 보지 말아라. 남편의 권리를 주장해라. 아내의 권리를 주장해라.” 그래서 마귀의 말대로 손해 보지 않고, 나의 권리를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요? 공평한 가정이 될까요? 공평한 교회가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반드시 싸움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서로 사랑할 때 싸움을 피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랑은 내 권리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이 말처럼 나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먼저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권리를 철저히 포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그 막강한 권리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의 몸으로 짐승의 우리에서 출생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기 권리를 포기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중 하나인 고린도 교회는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문제를 놓고 심각한 분쟁을 겪었습니다. 옛날 한국 교회도 이 문제 때문에 종종 분쟁이 있었습니다. 옛날 한국 사회는 제사 문화였기 때문에 제사 음식을 먹어야 하는 기회가 종종 있었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역시 그랬습니다.

 

그 당시는 온통 우상숭배 문화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전마다 고기를 제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가 끝나면 제물로 사용되었던 수많은 고기를 시장으로 보내 유통을 시켰습니다. 이 고기를 놓고 절대 먹으면 안 된다는 사람들과, 먹어도 상관없다는 사람으로 나뉘어 심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두 쪽이 날 정도로 위험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옛날 어떤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교회가 건축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카펫을 새로 깔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떤 색의 카펫을 깔까 의논하다가 일부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상징하는 빨간 색으로 하자 그랬고, 일부는 시편 23편에 나오는 푸른 초장을 상징하는 푸른 색으로 하자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주장이 오고 가다가, 나중에는 목숨 걸고 자기 주장만 고집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교회는 카펫 색깔 때문에, 푸른 초장파와 붉은 보혈파로 갈라지고 말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실화입니다.

 

지금도 이와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발생하고 가정에서 발생하고 나라에서도 발생합니다. 몇 년 전에 한국은 미국 소고기를 놓고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를 놓고 치열하게 분쟁을 했습니다. 이런 문제가 생길 때 세상의 방식은 데모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끝까지 자기 고집을 꺾지 않고 싸우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사실과 상관없이 무조건 네가 싫다고 싸우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8장에서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고기를 먹는 일에 대하여 바울은 자기 나름대로 분명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8: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바울이 보기에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먹으면 문제 될 게 없다는 게 바울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울은 자기 입장을 고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기 먹는 문제를 놓고 형제들과 다투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형제와 싸울 바에야 차라리 나도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고전 8:13).

 

여기서 우리는 분쟁의 해결 방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방법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형제의 생각을 존중하고 그 형제처럼 행동해 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집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진리를 위해, 복음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을 지조 없는 사람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순교까지 할 수 있는 고집 센 바울이 교회 안에서는 전혀 자기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불화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불화의 원인들을 찾아보면 참으로 하찮은 것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치약을 어떻게 짜느냐를 놓고 싸웁니다. 남편은 중간부터 짜고, 아내는 밑에서부터 짜고 (남자들은 대개 중간부터 치약을 짜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대개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짭니다(제 집사람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차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싸우다가 이혼한 부부도 있는 것입니다. 또 양말을 벗을 때 뒤집어서 벗지 말고 똑바로 벗어 놓으라고 잔소리하다가 이혼한 부부도 있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제 집사람은 제가 뒤집어서 벗어 놓은 양말은 아무 말 없이 그 모양 그대로 빨아서 줍니다. 제가 신을 때 뒤집어서 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 치약이나 양말이나 사소한 것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우리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치약의 문제, 양말의 문제, 음식의 문제, 카페트 색깔의 문제와 같이 사소한 것들은 내가 양보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기 땜에 싸움이 생기자 얼른 자기가 양보를 해 버렸습니다. 자기는 본래 고기를 먹는 사람이지만 양보를 해서 안 먹는 사람이 되어 준 것입니다. 그러자 분쟁은 즉시 해결이 되었습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우리는 나하고 다른 사람을 만납니다. 남남이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남남이 만나서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다르다고 하는 것은 좀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사실은 축복입니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생각해 보십시오. 서로 다른 악기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다 피아노, 다 바이올린이라면 얼마나 지루할까요? 교회 안에 다 “나” 같은 성격이면 얼마나 지루할까요? 온갖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나하고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기도를 할 때도 어떤 사람은 소리를 내고, 어떤 사람은 방언으로 하고, 어떤 사람은 조용히 하고, 여러 가지 모습이 있는 게 좋은 교회입니다.

 

나의 스타일만 옳다고 고집하지 마십시오. 성숙한 사람은 남의 스타일도 인정해 주는 사람입니다.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나하고 다른 사람을 용납해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진리의 문제는 양보할 수 없지만,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양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화목한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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