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규(주님세운교회 목사)
하버드 대학의 생물학자인 윌슨이 쓴 “개미언덕”이라는 책을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개미 집안에는 한 개미가 죽어도 다른 개미들은 옆으로 지나다니면서 그것을 모른다고 합니다. 며칠이 지나 죽은 개미가 부패하면서 썩은 냄새가 나면 시체를 물어다가 쓰레기더미에 버린다고 합니다. 개미들은 시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후각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윌슨은 개미의 썩은 냄새가 화학물질인 올레산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개미에게 올레산을 묻혀놓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다른 개미들이 올레산이 묻어있는 개미를 합동작전으로 잡아서 강제로 끌어내려 쓰레기 더미에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개미는 살아있으되 몸에서 올레산 냄새가 나면 동료들 사이에서는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입니다. 숨만 쉰다고 살아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밥 먹고 활동한다고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삶에서 올레산 냄새를 풍기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여서 내다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걸어 다니는 편지요 향기”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어떤 신자에게는 사망의 냄새가 나고 어떤 신자에게는 생명의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딤전5:6에 보면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신자라 해도 일락을 좇는 자는 죽은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3년이나 예수님 따라다니며 말씀 듣고 기적을 체험하고 훈련받았지만 예수님께서 잡혀가시는 순간 모두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순절의 성령을 받는 순간 모두 능력을 입고 하나같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의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약한 성도가 그리스도의 강한 군사가 되는 것은 성령받을 때 일어납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 받는 삶이 어떤 삶인지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받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성령충만한 삶은 세월을 아끼는 삶입니다.
엡 5:15-16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있는 자 같이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세월을 아끼라”는 원어로 “세월을 속량하라”는 뜻입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마귀에게 빼앗긴 세월을 다시 빼앗아서 나의 모든 환경에서 기회를 잡아 다시 하나님께 바쳐 드리라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나의 죄값을 속량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 그리스도의 신부된 성도들은 내 몸도 나의 삶도 이젠 내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주님을 위해 나의 남은 세월을 바쳐드리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충만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롬12:1-2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하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홍수 심판 직전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온 가족을 구원하는 의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요, 깨어있는 삶이요, 세월을 아끼는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마24장에 보면 예수님의 재림 전에 세상에 일어날 여러 징조들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처처에 미혹하는 적그리스도와 이단이 일어날 것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날 것을 예언했습니다.
눅 21:11에는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이 있을 것과 코로나 펜데믹같은 온역이 일어날 것도 예언했습니다.
계8:7에 보면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고 했는데, 지금 캐나다에 산불이 일어나 430군데에서 산불이 나서 남한 면적의 40%가 불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절반 이상은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져있습니다.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다고 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과 캐나다가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면서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면서 매해 자연재해가 4배나 급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결 할 길은 역대하 7:14의 말씀처럼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가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24:12에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했는데, 이 “불법”이 헬라어로 “부도덕과 방종”입니다. 동성결혼같은 죄악을 합법화시키는 일이 세계적으로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는것입니다.
7월 1일(토) 한국 서울에서 24회 “서울퀴어 축제”가 5만 명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한 낮의 기온이 섭씨 34도가 웃도는 더위인데도 이 죄악의 문화를 몸으로 막기 위해 15만명의 성도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와서 “포괄적차별금지법 반대, 평등법반대”를 쓴 피켓과 “거룩한 방파제”란 글을 쓴 피켓을 들고 “마귀들과 싸울찌라 죄악벗은 형제여” 찬송을 부르며 “이 거룩한 땅을 지켜 우리의 후손들에게 거룩한 가정을 물려주는 거룩한 방파제”가 되게 해달라는 목사님들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면서 저도 함께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정말 이 시대는 영에 속한 자들과 육에 속한 자들이 나뉘어 싸우는 시대라는 것을 절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
성도 여러분! 이 모든 일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깨어야 되겠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너무나 가까웠다는 것을 느끼며 그날을 준비하며 자신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고 끝까지 충성하는 삶, 마귀에게 넘어간 세월을 빼앗아 나의 기쁨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기쁨을 위해 헌신하는 거룩한 파수꾼의 삶과 거룩한 방파제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충만한 삶, 세월을 아끼는 삶 인 것입니다!.
둘째, 성령 충만한 삶은 주님의 뜻을 아는 삶입니다.
본문 17절에 보면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해하라”는 헬라어 “쉬니에테”로 “어떤 것에 마음을 쏟아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 성도들이 이 악한시대를 살아가면서 주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것은 주님의 뜻에 내 마음을 맞추는 삶이 성령충만한 삶,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에녹은 홍수 심판전의 패역한 시대에 살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에 죽음을 보지 않고 들림받는 영광을 가졌던 것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자녀들은 부모님의 뜻을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듯이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맞춰서 살아가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조선 명종 때에 실화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더욱 심해진 고부갈등으로 고민에 빠져있던 윤명선 진사가 하루는 그의 아내를 불렀습니다. “가정불화는 가정파탄의 원인이 되오. 어머니가 얼른 세상을 떠나야 가정이 편할텐데 아직 기운이 좋으시오. 그렇다고 병이 나기를 바랄 수도 없잖소. 이런 생각이 불효는 되지만 칠십노인이 그만큼 사셨으면 원통할 것도 없으니 차라리 밥에 약이라도 타드려서 얼른 세상을 떠나게 하시고 싶소. 그런데 고민이오. 병환이 없이 갑자기 돌아가시면 외삼촌이 벼락같이 와서 원님에게 검시를 해보자고 할 것이오. 만약에 독살로 증명되면 매일같이 불화로 싸우던 며느리의 소행으로 인증할터이니 차마 그렇게는 못할것 같소. 그러나 방법이 한가지 있소. 부인이 한달 동안만 거짓으로 효부의 행동을 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그집 며느리 참 효성스럽다’는 소문만 나게 해주시오. 그럼, 그때가서 약을 타 돌아가시게 해도 동네 여론이 ‘그렇게 효성스러운 며느리를 죽일년, 죽일년 하더니 이제 동네가 다 아니까 무안해서 자살했다’라고 할 것이오. 그렇게 해보겠오?”
이때 아내 이 씨는 그 말이 반가왔던지 “그럼 효성을 어떻게 하란 말이오?”되물으니까 “내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될 것이오. 지금은 추수기니까 날마다 일꾼을 부려서 타작하는 집에가서 어머니께서 요즘 입맛을 잃어서 진지를 못드신답니다. 그래서 ‘이 집에 맛있는 반찬 좀 얻어갑시다’하고 밥까지 얻어오시오. 날마다 그렇게 하면 집집마다 당신을 효부라고 칭찬하게 될것이오. 또, 내가 생밤 한말을 사다줄 것이니 그 밤을 매일 10개씩만 밥에 쪄서 두었다가 아이들 몰래 어머니 주무실 때, 잡숫고 주무시라고 하시오. 또, 식전에 일찌기 밥 숭늉을 끓여서
미리 드시게 하세요. 그러면 나는 날마다 만나는 친구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당신을 자랑할 것이오.그러면 당신을 모두 효녀라고 칭찬할 터이니 그 뒤에 어머니가 아무렇게 돌아가셔도 당신에게 절대 의심하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오.” 아내 이씨가 가만히 듣더니 “그럼, 생밤이나 사와요”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남편이 지시한대로 철저히 실행하여 갔습니다. 시어머니 김씨는 며느리가 달라져 가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여간 잘못이 있어도 눈 감아주고 무슨 일이든지 자신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잔치집에 가서 국수 한그릇만 받아와도 며느리 생각이나서 집으로 들고 와서 며느리를 불러서 “네 생각이 나서 혼자 못 먹겠더라”하고 같이 먹었습니다.
어느날은 대감집에서 보낸 음식에 맛있는 약과가 있는 것을 보고 시어머니는 손에 감추었다가 얼른 며느리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며느리는 “제일 귀한 것인데 아들과 손자에게도 안주시고 내 입에 넣어주셨다”는 생각에 감격했습니다. 날씨가 조금 추워도 며느리가 아침 밥하기에 춥겠다 싶어 꼭두새벽에 나가 물을 끓여놓기도 하였습니다. 날씨가 춥다고 며느리 감기든다고 자기 옷의 솜을 빼다가 밤새 며느리옷에 넣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되었는데 남편이 조용히 아내를 불러 “이제는 이 근방에서 전부 당신을 효부라고 하게 되었으니 오늘 저녁 진지에 약을 타서 돌아가시게 합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며느리가 “약을 주시면 내가 먹고 죽겠어요. 내가 죽일 년입니다. 이 집안의 가정불화는 모두가 내 탓입니다”라며 목놓아 울더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남편이 말하기를 “천하에 부모는 악한 부모가 없는 법입니다. 부모를 죽일 마음을 먹고 잠시 동안 거짓으로 효성을 해보니 부모가 얼마나 착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않았습니까? 이게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당신이 계속 효성을 극진히 해서 자식들에게 모범을 보이면 훗날 자식들의 효성을 우리가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후로 그 가정이 이름난 효부가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며느리가 거짓으로 효를 해도 부모의 깊은 뜻을 알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알고 감격하는 순간 정말 중심에서 우러나는 효부로 바뀌어 지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이 주님의 참 뜻을 알고 이해하고 감격하는 순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우리는 사명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죽기까지 충성하는 성도가 될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주님의 뜻을 이해하여 사랑을 안고 충성하므로 주님앞에 존귀한 성도로 세움 받을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째, 성령충만한 삶은 감사하는 삶입니다 .
본문 엡5:18-21에 보면 “술 취하지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의 성령으로 충만한 삶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께 찬송하는 삶입니다. 그 찬송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구속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환경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감사라는 “유카리스테스”란 헬라어에는 “카리스”란 헬라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은혜”라는 단어입니다. 감사는 모두 은혜의식에서 우러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언제나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만드십니다. 그러면 감사는 저절로 우러나오게 되는 법입니다.
요셉이 아무리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도 아무리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혔어도 그는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지 않고 감사의 꽃나무를 가슴에 키웠더니 그 꽃나무가 마침내 꽃을 피우는 날 요셉은 애굽의 존귀한 국무총리가 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바울과 실라처럼 빌립보의 감옥 같은 곳에서도 찬송해 보십시요 그곳에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벗겨지는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가 무엇보다 감사하며 찬양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믿는 순간 우리는 모든 죄가 사함받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죽어도 영생인 것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모든 환경에서 감사가 넘쳐야 할 것입니다. 슬픔이 가득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줄 수있는 능력이 바로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랑에서 진정한 감사가 꽃이 피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교회에 강도가 권총을 들고 나타나 강단에서 설교하시는 목사님에게로 다가갔습니다. 모두가 놀라는 그 순간 목사님은 그 강도에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형제여,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GOD LOVES YOU, MAY I HELP YOU?” 이 두 문장이 강도의 마음을 녹여버리고 권총을 내려놓고 울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충만은 감사 충만, 사랑 충만입니다. 감사와 사랑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특권입니다. 감사와 사랑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감사할 때 행복해지고 사랑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우리들의 남은 생애가 날마다 세월을 아끼는 삶으로, 주의 뜻을 이해하는 삶으로, 감사하고 사랑하는 삶으로 더욱 성령 충만하여 이 어둔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