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혁인(산타클라라연합감리교회 목사)
한때 한국교회의 영성을 통성기도로 축약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말 못할 삶의 설움을 일거에 토해내듯 하나님께 열정적인 간구와 호소를 통해 신비한 감동을 체험하던 때입니다. 한많은 세월의 무게를 마음의 짐처럼 지고 살던 시절이라 그래서인지, 효험이 더 배가되는 느낌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언로가 자유로워진 요즘은, 말이 가진 긍정적 힘보다 부정적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결과 침묵을 “지혜의 울타리”라고 부르던, 현자들의 가르침에 오히려 더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말수가 는건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가 주요한 사역 중의 하나라 해도, 온라인 방송이나 다양한 교회 프로그램 운영으로 인해 말의 횟수가 점점 더 늘어 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물론 말의 질을 양이나 빈도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요. 좋은 말을 더 많이 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바람직한 일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 보면, 좋은 말을 자주 할 만큼 세상이 변하지 않았다는 건 말의 질이나 영향력도 그만큼 떨어진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구약의 성전 제사장들을 보면, 그들의 업무는 늘 침묵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물을 바치는 동안 레위인들처럼 노래를 하거나,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은둔하며 영적 수련에 매진하던 수도자들도 묵언으로 금식하며 명상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침묵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소리에 경청하는 것을 최고의 신앙훈련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을 이해하고, 깨달으며 자기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귀 기울여 듣는 일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19편은 침묵에 관한 고백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소음과 불필요한 함성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자기 마음 안에 적막한 광야를 만들어야 할 이유입니다. 고요한 적막 속에서 우리 가운데 지금도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려면 말이지요. 신앙생활의 핵심은 귀를 기울이고, 들은 것을 삶으로 응답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