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용(예수동행교회 장로)
인생을 살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생의 진로가 달라지기에 만남은 참 중요한 것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는 신앙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 처음으로 만난 담임 목사님이 바로 고 차현회 목사님이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차 목사님을 만나 내 인생길이 180도 전환점을 가지게 되었기에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모릅니다. 차 목사님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 안에 이루어진 필연임을 고백합니다.
제가 반평생을 섬기고 사랑한 예수동행교회(구 밸리 한인 연합감리교회)에 등록한 것은 초대 담임 목사님인 고 조찬선 목사님 때였는데, 그 당시 나는 교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들락날락하는 보잘 것 없는 교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성실하지 못한 신앙 생활을 이어가던 중 차 목사님께서 2대 담임 목사님으로 부임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날은 제가 새 집을 사서 이사하는 날이었는데, 뜻밖에 차 목사님이 문 앞에 와서 계셨습니다. 너무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아니, 초대도 안 드렸는데, 이 바쁜 중에 무슨 심방을 오셨습니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시 사모님과 안지매 권사님과 함께 심방을 오신 차 목사님께서는 예배를 드린 후에, “미스터 리, 이리 와서 앉으세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여기 증인들이 있으니 나와 약속을 합시다” 하시더니, 앞으로는 골프는 웬만큼 치고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열심히 성경을 읽고 공부도 하며, 모든 교회 행사에 열심히 참석하라는 권면의 말씀이셨습니다.
차 목사님은 처음 만날 때부터 제게 존대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제게는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교분을 나누는 관계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원래 담임 목사님과 평신도와의 관계는 담이 있는듯이 어렵고 서로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는 관계인데, 차 목사님과는 부담없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차 목사님은 사역을 함에 늘 조심스럽게 하셨는데, 모든 사역은 먼저 말씀하신 것을 실천하고 진행하셨습니다. 교회 개혁을 위해 새벽 기도회를 시작하셨고, 예배도 1부와 2부로 나누어 드렸는데, 처음 1부 예배를 드릴 때 16명 가령이던 성도들이 70-80명으로 부흥하였고, 2부 예배도 200명 이상으로 늘어나는 부흥의 역사를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또 선교 사역에도 열심을 다하셨습니다. 러시아와 중국 등 국외 선교를 위해 열심히 다니셨고, 멕시코와 미국 내 선교도 열심히 하셨습니다.
차 목사님이 저에게 그렇게 당부하셨던, 골프치는 것을 자제하라 하신 것을 잊고 골프를 치다가 심장마비가 와서 병원에 실려 갔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적인 일도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를 위해 기도하실 때는,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될 자도 있으니, 열심히 성경 읽고 기도하며 교회의 모든 행사에 일일이 참석하여 헌신 봉사하는 신실한 종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목회자들이 헌신 봉사를 강조할 때마다, 바쁘게 살아가는 저에게는 그것이 압박으로 느껴졌었는데, 중직을 맡다보니 그런 생각도 없어지고, 특히 생사의 갈림길에서 다시 살아난 후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고 오직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교인간의 만남에서 만남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 이웃 사촌들인 교우들과 더 가까이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 글을 쓰다보니 고 차미령 사모님 생각이 납니다. 그 사모님께서 항상 하셨던 말씀이, “우리 교인들은 피와 살은 섞이지 않았으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입니다”였습니다.
우리 교우들은 끈끈한 사랑과 정으로 함께 천국가는 그 날까지 손에 손을 잡고 찬송가를 부르며 앞으로 정진해가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만남을 통해, 광야와 같은 이민생활중에도 가나안의 축복을 누릴 것을 믿으며, 차 목사님의 기도와 헌신으로 오늘에 이른 예수동행교회 믿음의 귀한 공동체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기를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