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렬(감리교 원로목사)
고 차현회 목사님은 저에게 큰 은혜와 사랑을 주신 어른이십니다. 저의 고향교회 원주제일교회의 담임이셨고 서울 수표감리교회 시무 중 6.25 전쟁을 만나 인민군에 납치되어 순교하신 차경창 목사님과 이옥남 사모님 사이에서 차 목사님은 출생하셨습니다.
차 목사님은 종교교회와 총리원등에서 사역하시면서 이미 전국적인 교회 지도자 반열에 서셔서 국제 종교회의 참석, 아리조나 대학 교목실 교환 목회 등을 통해 개체교회 목회는 물론 행정, 조직, 회의 운영, 교회연합사업등에 많은 경험을 축적하셨습니다. 향학열에 불타 시카고신학대학교와 개렛신학교, 에모리대학교에서도 수학하셨습니다.
차 목사님이 담임하셨던 시카고제일연합감리교회는 1923년 독립운동가인 김창준 목사님(기미독립운동 33인 중 한 분)에 의해 처음 시작된 역사적인 교회였고 미 중부지역의 ‘어머니교회’나 다름없었습니다.

지난해 12월 안양에 거주하는 차현회 목사님(왼쪽 4번째)을 방문했을 때의 사진. 왼쪽부터 필자, 박시원, 이경희, 차현회 목사 부부, 그리고 정지한 목사
특히 목사님께서는 이민교회가 조국역사와 조국애를 잊지 않고 후세에 알려야 한다면서 3.1절과 8.15 광복절에는 애국가, 삼일절과 광복절 노래를 부르게 하셨습니다. 원주청년관 관장으로 일하던 제가 미 ITI에 2년 연수기회에 잠시 목사님을 섬기고 귀국했는데, 1977년에 저를 부목사로 초청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3년간 교회와 목사님을 섬기게 되었고 34년 이민목회의 길을 열어 주셨고 2011년 46년간의 목회를 마무리할 수 있는 초석을 다져 주셨습니다.
자상하셨던 목사님은 미국생활을 배울 때 아침식사로 그레이푸룻과 토스트 먹는 법도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목사님께서는 항상 미래지향적이시어서 10년을 내다 보셨습니다. 그 열매 가운데 하나가 36년을 이어오고 있는 ‘세계한인선교대회’입니다. 이 대회는 시카고교회에 ‘선교탑’을 세우기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1988년 7월 시카고 휘튼대학에서 제1회 대회(공동대회장 차현회 목사, 조천일 목사)가 열렸고 내년엔 남가주사랑의교회에서 열릴 예정으로 지금까지 36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명예공동의장이신 목사님께서 이 대회를 8개월 앞두고 서둘러 하나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대회 참석차 미국에 오면 제가 사는 산골에 머물겠다고 약속해 주셨는데 그 약속을 못지키시고 우리 곁은 떠나셨습니다.
한국에 머물던 중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듣고 바로 세브란스 장례식장을 찾아갔지만 빈소가 마련되는게 지연되어 정인숙 사모님과 통화만 하고 귀국 일정을 바꿀수 없어 인천공항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목사님의 가족들과 후배들을 남겨놓고 목사님을 가셨지만 목사님을 알고 사랑하던 모든 이들의 기억과 추억 속에 오래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노벨상 수상자 마더 테레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성공하라고 부르심이 아니라 충성하라고 부르신다”라는 말과 같이 평생을 하나님께 충성하신 차 목사님이 바로 그런 목사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 이제 천국에서 편히 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