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 목사
국민이 생각하는 정치의 눈높이는, 정치가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높다.
높다가 아니라 차원이 다르다. 좌, 우로 나누어진 이념논리, 노선과 계파논리 등 어느 것 하나 국민을 편하게 하는 것이 없다. 정치인들이 짜놓은 프레임 안에 국민을 가두고 길들이기를 수십년 변하지 않고 그대로 해 왔다.
국민을 편 갈라 놓은 것도 정치하는 사람들이고, 지역감정도 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국민의 수준을 무시하고 자기네 권력과 세불리기에만 급급하며 서로를 미워하게 하고 적대심을 불러 일으키게 한 것도 정치인들이다. 국민들은 계파, 출신, 선동, 조작, 음해, 거짓, 속임수, 은폐, 내로남불, 매수, 돈 봉투, 모르쇠...등 그런 단어를 모른다. 다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나왔고 그 단어들은 국민의 삶의 질을 가두어 놓았다. 그런 불쾌한 단어들을 매일 같이 들으면서 살아왔다.
그렇게 국민들을 바보로 알고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선진국으로의 발전은 현재의 운동권 정치인들이 이룩한 것이 하나도 없다. 국민들은 이젠 그런 정치의 단어들로부터 자유로워 지고 싶고 생활 속에 좋은 말들이 오가는 행복한 정치풍토를 갖기를 원한다.
그동안 새로운 신인 초선 의원은 다르겠지 했지만 그들도 그물에 들어가면 역시 같은 성품과 자질을 갖추어야 살아 남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정치인의 구태에 물들어 가야 하고, 길들어져야 하고, 몸에 베어야 하고, 답습하고, 자신도 똑같이 물려 주고, 가르치는 정치인이 되어버리는 것이 현실 한국 정치 사회의 풍토이다.
한번 국회의원 뱃지의 맛을 보면 아편처럼 끊기가 쉽지가 않다. 권력의 마력이라고 할까? 한국사회는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고대로부터 내려온 벼슬에 대한 권위, 권세, 위세를 과시해 왔다. 국민들은 이들에게 존경심과 흠모 내지는 맹종에 익숙해 있다. 이런 맥락에서 국회의원이 되면 국민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군림하고 국민 알기를 우습게 안다. 이들의 수법은 깡패조직처럼 추종자를 만들어 사조직 카르텔로 세를 키워 나간다. 이 세력을 점차 키우면 계파의 우두머리가 되고 지역사회는 물론 국가까지 손에 거머 쥘 수 있고 무서운 세력집단으로 불법자금을 동원해서라도 조직을 늘여 나아간다.
작금의 ‘개딸’들이라는 단체, 그리고 많은 시민단체나 노동단체가 다 이러한 카르텔 조직에 연결되었거나 그 연결고리 아래서 국민의 세금에 빨대를 꽂고 활동하는 조직원들이다. 이권을 가져오고, 지원금을 받고, 끼리 끼리 서로를 보호하고 돕는 의리의 이권 단체로 변하게 된다. 이들의 지원이나 후원은 다 국가 세금으로부터 나간다. 이들에게는 국가의 앞날에 대한 비전이나 애국심을 말하면 지나가는 개가 웃듯이 무슨 개 소리냐고 짖어댄다.
개인의 정권 야심을 국민의 세금으로 선심쓰듯 자신의 조직을 위하여 사용 관리한다. 자기의 정치 권력으로 국민을 농락하고 대국민 사기도 버젓이 해 내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조국’ 비리를 보더라도, 정의라는 말이 이들 속에는 아예 없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은 이들 때문에 대두한 말이다. 국민을 속인 것이다. 그 지지자들은 무엇이 잘못이냐고 대든다.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들은 위법을 정당한 것처럼 알량한 지식으로 달리 해석한다. 있는 법 가지고 안되면 다른 법을 만들어 방어하려 든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뻔뻔하기가 이를데 없고, 부끄러워 하는 양심이 없다. 할 말을 잃어 버리게 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아예 상대할 가치가 없는 유식한 탈을 쓴 이리떼와 같다.
한국에 나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한심하기 짝이 없고, 실망한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좋던 친구 관계에서, 친척이나 형제관계에서 이러한 이념적 갈라치기 적대적 관계가 형성되어 버렸다.
선진국이라고 뽐내고, OECD 국가중 하나라고 자랑을 하지만 정치적인 면에서는 후진국이다. 머리들이 좋아 경제를 발전했다고 자랑은 하는데 왜 정치는 이 모양이냐고 한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대선 때에 좌파 정권이 또 다시 나라의 권력을 잡았더라면 나라는 어떻게 되었 까? 아찔한 순간이었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더라면 나라는 천길만길 낭 떨어지로 떨어졌을 것이다.
문재인이 대통령으로써 한 일들을 보면 창피해서 한국인이라고 얼굴을 들지 못한다. 중국에 가서 혼밥을 하고, 미국에 가서 기자회견 때 본인이 말할 차례에 트럼프가 마이크를 잡고 대신 혼자서 다 말하게 하고,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혼자 서 있고, 원전 폐쇄, 최전방 초소 해체, 남한으로 귀순한 사람을 북으로 넘기고, 북이 ‘삶은 소대가리’라는 모욕적인 말에도 끽소리 한번 못하는 모습을 볼 때,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자질이 이 정도 밖에 않되나 하는 수치스럽고 부끄럽기만 했다.
박근혜를 탄핵시키고, 대통령 취임식을 벼락치기로 거행하는 것을 보고, 도둑질해서 도망가는 놈처럼 서둘러 대통령의 자리에 앉고 보자는 날치기 취임식부터 불쾌했다. 탄핵도 날치기로 했고 취임식도 날치기로 했다. 나라를 점령한 자축이라도 하듯 손에 커피잔을 들고 운동권 참모진들과 승리의 웃음을 웃으면서 청와대 뜰을 거닐던 모습을, 나는 그때의 사진을 파일에 저장하며 이렇게 제목을 달아 놓았다. “바보들의 행진”이라고.
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되던 날 ‘탄핵정국을 맞으며’라는 제목으로 쓴 시의 말미에 “적들은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매장 될 것이고, 음모와 간계와 계략을 세웠던 무리들은 이를 갈며, 슬픔과 고통 속에, 뼈저린 후회를 하리라” 그때의 심정을 표현하였다. 천년만년 해 먹을 것처럼 온갖 짓을 다 해오던 그들이 5년 만에 국민의 몽둥이에 “깨갱” 얻어 맞고 권좌에서 물러났다. 양산에 내려가 조용히 살겠다더니 ‘책방’을 열고, 그 동안 국물만 빨아먹던 똘만이들이 인사차 찿아오면 무슨 궁리를 하는지 수군수군 댄다고 한다. 무엇을 또 조작하고 음모하려는 것은 아닌지... 옛날 권력의 단맛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지난 정권의 이야기는 하면 할수록 분노가 치밀고, 국민이 당했다는 속상함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치욕과 수모와 수치를 딛고 일어날 ‘희망’이 있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의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의 ‘희망찬 미래 비전’을 위한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펼치는 외교정책과 경제발전을 위하여 영업사원처럼 부지런히 뛰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다행스럽고 자랑스럽다. 안보면에서도 한미일 3국 공동안보체제를 강화시킴으로 철저히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합의를 이끌어 내었고 확고한 안보동맹을 맺었다. 경제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 보장, 각 부처의 규제 완화 정책, 수출 확대, 과학기술 분야 정부 지원 등은 높게 평가한다. 박정희 대통령 산업화 발전 이후 첨단 제3세대 IT 산업의 발전육성안은 3차 산업의 도약이라는 획기적이고 괄목할만한 정책을 추진 중에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희망’을 되찾았다. 암울하고 답답한 구세대 구닥다리 정치 행태에서 새로운 희망의 새 기운을 들어 마시고 있다. 차츰 세대교체와 구정치 행태에서 탈바꿈 하며 참신한 신 정치 언어와 정직하고 애국적인 참신한 정치로 물갈이가 시작 될 것이다. 옛날식 정치 수법을 가지고 정치 몆 단이니 내세우던 시대는 지나갔다. 참신한 애국자의 성품과 인격을 갖춘 지도자로 바뀔 것이다. 신인이면 어떠랴?
논리적이고 이론과 법의 원칙에 해박하고 명석한 지성을 갖춘 애국자 지도자가 필요하다. 깡패처럼 목소리 큰 자가 이기던 시대는 지났다. 과거 친일주의자로 낙인을 찍고 인민 재판하듯 여론몰이로 인권을 유린하거나, 반일사상을 부추기며 죽창가를 부르던 현재의 정치가들은 물러가야 한다. 종군위안부를 이용하여 돈을 뜯어가던 야바위꾼들의 시대도 아니다. 북한을 찬양하고 북의 통일노선을 따르는 자들도 제거해야 한다. 북한이 그리도 좋으면 거기 가서
살지, 왜 남한에서 불평불만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2천6백만 북한 동포가 굶주리고 자유 없는 노예로 인권이 유린 되는 삶을 사는 것에는 한마디도 안하는 반국가적 정치인들도 없어 져야 한다. 이번 4.10 총선은 대한민국의 국운이 달려 있다. 민주주의가 죽느냐 사느냐 이다. 운동권 정치인들이 민주주의를 외쳐 댔다. 그들이 민주주의를 외치길래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할 걸로 믿었다. 그러나 그들이 한 정치 행태를 보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거리에서 외치던 민주주의는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가 아닌 북한 공산당을 위한 인민민주주의 였다. 슬로건만 민주주의고 실제 내막은 북한을 신봉하고 따라갔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2018년 대한민국 평창동계올림픽 대회 개막식에서 한다는 소리가 “나는 위대한 사상가 신영복을 존경한다”고 우방국가 사절들이 다 앉아 있는 자리에서 개회사를 하였다. 공산주의자이고 미전향자인 신영복을 존경한다고 하면 6.25 참전국가인 미국이나 각 참전국가는 무엇을 위하여 젊은이들이 피를 이 땅에 뿌리고 목숨을 바쳐야 했던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공산주의자 대통령을 세웠던 것이다.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국민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번영과 발전이 계속되고 자손만대 위대한 대한민국을 후세에 물려주려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자유경제 체제와 번영을 지킬 수 있는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내가 안도감을 갖고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은 작금의 국민의 힘 당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한 전 법무부장관이었던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감사를 드린다. 젊음과 패기 넘친 애국심과 정의감 그리고 법을 원칙으로 사심 없이 자신을 바치겠다는 그의 비장한 각오와 결의에 감사한다. 우리나라에 케네디와 같은 기수가 등장하였다. 한마디 한마디 거침없이 순수하고 참신하고 지혜롭고 국가의 미래에 대한 계시적 지혜와 기지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탁월함이 있다. 그에게서 개인의 욕심을 찾을 수가 없다. 단지 신비하고, 감동적이고 감격과 박수가 절로 나온다. 그의 언어는 어디서도 들어 보지 못하던 신선하고 눈이 번쩍 뜨이게 하고 기쁨이 솟구치게 한다. 국민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희망의 기쁜 소식들만 외치고 있다. 이러한 언어가 있었던 것을 왜 우리는 미처 몰랐을까? 그동안 여의도의 욕설과 고함과 고집과 우격다짐만을 보아 오던 국민들에게 새 언어 새 정치문화를 배우게 하고 있다. 국민들의 언어가 바뀌고 있다. 무엇 때문인지 신이 난다. 모두가 기뻐하고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맞이 하고 있다.
우리의 눈높이에 맞는 언어와 정치와 나라의 도약이 달려오고 있다. 4.10 총선은 내가 국가 운명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새 정치를 위하여 투표해야 한다. 위대한 대한민국을 세우자!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사람을 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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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목사
-하와이-세계성령사역자국제대회장
-주하나치유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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