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구(하와이 호놀룰루 한인교회 목사)
남가주 클레어몬트(Claremont)는 유학시절 내가 30대 청춘을 통째로 불사르며 주경야독으로 모교의 교수를 꿈꾸던 곳이다. 최종학위를 얻기까지 나는 공부에 지칠 때마다 습관처럼 학교와 인접한 이웃 식물원(Botanic Garden)으로 발걸음을 향하곤 했었다.
당시 모교(Claremont Graduate University)의 식물학도들에게는 땀방울을 쏟아 부어야 하는 무척이나 힘겨운 곳이기도 했지만, 종교학도인 나에겐 나름의 위로를 찾을 수 있는 한적한 피정의 장소가 되곤 했었다.
특히 동산 중앙에서 우뚝 치솟아 있던 낙락장송(落落長松)은 볼 때마다 무척이나 장관이었다. 마치 내가 학위를 취득하면 이루고자 꿈꾸던 그 목표와 비전을 대변이라도 하듯 말이다. “그래! 나도 저 낙락장송처럼 언젠가는 우뚝 솟아오르리라!”
목표했던 최종학위를 취득한 후 나는 뜻밖의 목회 현장으로부터 목회자로 부름을 받았다. 잠시만 거(居)하리라 생각했던 태평양 한 복판, 고립된 섬 안에서의 목회를 나는 아직도 24년이나 훌쩍 넘기며 임하고 있다. 어쩌면 내 안에 차고 넘치던 교만이 특별히 나를 이곳에 이토록 오래 붙들어 놓은 가장 큰 이유일 게다.
지역에선 남달리 공부를 많이 한 목회자가 본토로부터 멀리 섬에까지 와서 목회를 한다니, 나름 센세이션(Sensation)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었던 게다. 더구나 교회는 어찌나 그렇게 부흥을 했던지? 부임 당시보다 거의 10배씩이나 성장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태평양 한 복판 목회 현장을 통해서는, 적어도 섬 동네 안에서는 낙락장송의 꿈을 이루었다고나 할까? 결국 교만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그러나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12) 말씀하지 않았던가? 결국 크게 넘어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나를 돌아보는 우(愚)를 범하게 되었다. 교회 희년을 맞아서 지난 해 나는 다시 클레어몬트를 찾아서 안식을 취했다. 무엇보다 나는 섬에서 그간 체득하고 달라붙은 소인배의 심장을, 대륙의 큰 호흡을 통해 대인배의 심장으로 갈아 끼울 수 있어서 좋았다.
특별히 달라진 건 내 시선이었다. 더 이상 하늘로 치솟은 낙락장송이 아니라, 바닥에 달라붙은 야생화들에게 나의 시선은 가고 있었던 게다. 낙락장송이 하늘을 향해 교만을 뽐내고 있을 때, 바짝 엎드린 야생화들은 서로를 섬겨주고 있었다. 흐리면 흐린 대로, 개면 갠 대로 서로를 기대며 위로하며 군락(群落)하는 그들의 모습은 감동이었다.
주님께서는 과연 하나님과 동등 된 분이셨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자기를 비우시고 이 땅에 내려오셨다(빌 2:5). 그리고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벧전 5:5) 주신다고도 말씀하셨다. 주님은 동산 한 복판의 우뚝 치솟은 그 교만으로 가득한 낙락장송처럼 존재하지도 않으셨고, 오히려 바짝 엎드린 야생화들처럼 지극히 낮아진 어우러짐으로 섬김의 모범을 보이셨다.
주님의 존재방식은 하늘을 향해 치솟은 낙락장송의 모습이 아니라, 낮은 밑바닥에서 함께 공존(共存)하며 군집(群集)을 이룬 야생화들처럼 어우러져 섬기며 사셨다는 게다. 혼탁(混濁)한 이 난세(亂世)의 때에 우리들 역시 동산 중앙의 치솟은 낙락장송처럼 되려곤 하진 말자. 명예와 감투는 없을지라도, 낮은 곳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야생화들처럼 서로 섬김으로 상생(相生)하면 어떨까? 야생화가 좋다. 야생화처럼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