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위대한 어머니하면 우선 링컨 대통령의 어머니 낸시가 있다. 낸시가 죽자 새어머니가 생겼다. 이름은 사라(Sarah). 이들은 모두 온 세상의 어머니 표상처럼 존경받는 인물들이다. 낸시는 링컨이 9살 때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성경을 아들에게 물려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말이 명언이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값진 가보이다. 백 에이커의 땅을 물려주는 것 보다 이 한 권의 성경책을 물려주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네가 책 속의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네가 백만 에이커의 대주주가 되는 것보다 기쁘겠다." 대단한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계모였던 사라 역시 믿음의 어머니였다고 한다. 링컨이 사는 집에는 항상 불을 켜고 밤을 밝히는 두 명이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 사라와 링컨이었다. 그처럼 사라는 링컨이 열심히 공부하도록 보살펴준 어머니였다.
어디 링컨의 어머니 낸시와 사라 뿐인가? 이 세상을 움직였던 위인들에겐 언제나 위대한 어머니가 뒤에 있었다. 석유왕 록펠러의 어머니 엘리자 데이빗슨은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십일조 생활을 가르친 어머니였다. 록펠러는 6살 때부터 십일조를 하였고, 그것이 자신을 세계 제1의 부자로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성경이나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도 위대한 어머니들은 많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에서부터 슈바이처, 선다 싱, 로버트 모펫, 존 뉴튼 등 역사의 한 모퉁이를 크게 장식한 사람들에겐 위대한 어머니가 뒤에 있었다.
오는 12일은 금년 ‘어머니 날’이다. 한국처럼 아버지와 어머니를 ‘어버이 날’에 몰아서 도매금으로 떨이 취급하지 않고 미국은 확실하게 분리 정착시켜 놓고 있다.
우리 집도 어머니 날을 앞두고 아이들이 쇼핑계획이나 식당예약을 잡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머니 날, 아버지 날 식당은 절대사절. 복작대는 식당에서 어머니 날이고 나발이고 돈주고 생고생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쇼핑몰? 수십년 어머니 날에 받아 먹을 거 다 받았으니 쇼핑몰도 사절. 그냥 집에서 손자손녀와 함께 행복한 식사 한끼면 어머니날 행사 완료! 그게 아내의 어머니날 매스터플랜이다.
그러다 문득 내 서재 책꽂이 사진 속에서 늘 나를 내려다보시는 어머니 얼굴을 쳐다보게 되었다. 시골 농부의 아내로 시집와서 40대에 과부가 되고 평생 뼈 빠지게 고생만 하시다가 LA구경은 고사하고 한국에선 동네마실처럼 흔해졌다는 동남아 관광도 못하시고 돌아가신 어머니. 밭에 엎드려 농사를 짓다가 새벽예배, 수요예배, 주일예배 드리는 것을 세계일주처럼 기뻐하시며 가난하게 살다 돌아가신 어머니.
청량리 대왕코너 연회장에서 열린 내 약혼식 때 서울에 오셔서 지금 내가 쳐다보고 있는 사진 한 장 찍으시고 교회당 새벽종을 쳐야 하신다며 그 이튿날 쏜살같이 시골로 내려가신 어머니였다. 그때 가슴에 꽃을 달고 찍은 명함 2개 사이즈의 어머니 사진은 내 이민생활 내내 끼고 다니는 가문의 유물행세를 하고 있지만 내가 죽으면 저 사진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겠거니 생각 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진 앞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링컨이었다면 나의 어머니도 낸시여사처럼 역사를 움직인 여인 축에 끼어 있을 것 아닌가? 그래서 어머니가 나를 키워준 서산의 초가집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고 내게 물려준 성경은 지금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만일 카네기였다면 나의 어머니도 위대한 어머니 반열에서 칭송받는 세계사의 인물이 되었을 것 아닌가? 그래, 내가 문제였다.
내 어머니도 위대한 어머니였지만 내가 시답지 못해 빛을 보지 못한 것 뿐이다. 링컨과 카네기, 웨슬리와 어거스틴의 어머니만 위대한 어머니인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는 위대했고 위대하다.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의 반사체로 태어났건만 그 빛의 발사체가 되지 못한 채 어머니의 위대함에 민폐만 끼치고 살아왔다. 그게 불효다.
어머니 날 앞두고 아내는 마냥 기분이 좋아 보이건만 나는 40여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사진 앞 서재에 숨어 흐르는 눈물 훔치며 속으로 이 말 밖엔 할 말이 없다. “어머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