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호 민 병 열(원로목사)
“우리는 부활절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죽음의 철장을 산산히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께서 이 나라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과 자유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이 짙었을 때 1885년 4월 5일(부활주일) 오후 제물포에 도착한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1858-1902) 내외는 갑신정변 여파로 한양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불여관에 머물며 드린 기도문의 일부 입니다.
동시에 같은 날 함께 발을 디딘 미 북장로교 파송 선교사 언더우드(1859-1916)는 단신으로 한양의 정세 불안에도 입경하였습니다.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지 못하고 있는 이 땅에 저희를 옮겨와 앉히셨습니다. (…) 무엇을 해야 할지요. 그러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분명히 있을 줄 믿나이다”(소설가 정연희의 ‘양화진’에서).
이 두 선교사 (‘아.언’의 약칭으로 사용합니다)의 복음 전파의 사명으로 희생과 헌신의 열매로 오늘날 한국에는 천여만명의 신자로 매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서양의 의료와 교육 같은 근대문물과 문화의 전파, 복음에 입각한 남여평등, 노동 가치관 확립, 근대 민주정치 제도 도입 등 근대적 가치관 및 확산, 더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는 국내 지식인들의 애국 계몽운동 등을 전개하여 주권을 잃어버린 암흑의 땅에 ‘빛과 자유’ 를 찾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배재학당, 이화학당, 경신학교, 연세대학, 국립제중원, 세브란스병원, 부인병원 등, 뿐만 아니라 조선인의 리더쉽으로 초대 대통령 이승만, 조선인 1호 목사 김기범, 훈민정음을 한글로 해석한 주시경, 류관순 열사, 최용신 농촌 지도자 등 수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음).
역사를 기억하고 그 역사의 의미를 오늘과 미래의 주춧돌로 삼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아니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들이 전파한 복음에 빚진 자 입니다. 그리스도인인 뿐만 아니라 현대교육과 문화에 영향을 받은 모두가 “곧 한국에 있든지 고국을 떠나 이민의 삶을 사는 그 누구나 이 두 분에게 어느 정도의 빚을 졌다”는 생각에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해 봅니다.
아펜젤러 언더우드 역사 문화기념관 조감도
이 두 선교사를 기념하는 기념관이나 조형물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들이 민족의 역사에 남긴 업적에 대한 기림이 부족함을 각성한 지도자들이 뜻을 모아 ‘아펜젤러, 언더우드 역사문화 기념사업회’를 결성하고 최초로 발을 디딘 인천에 교파를 초월해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그리고 광범위하게 ‘역사 문화기념관’을 건립하기에 이르렀습니다(최초의 발의자이며 대표회장은 이종복 감독; 한국 감리교 중부연회 24대 감독 역임).
이 일에 모든 성도들, 관계 관공서, 지역 정치인들 모두가 뜻을 모아 추진하고 있으며,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27년에 완공될 예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 여호수아 4장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요단강 가운데에 있는 돌을 지파 수대로 취하여 ‘기념비’를 세운 기사가 나옵니다. “이 돌무더기로 된 기념비가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는 말씀과 같이 ’아.언 역사 문화기념관‘ 건립은 아주 뜻깊은 사업이기에 비록 해외에 있지만 십시일반 동참을 호소하는 바입니다.
우선 기도로, 가능하면 후원금으로 동참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 두 선교사가 펼친 복음과 문화, 의료 등에 빚진 마음이 어느 정도 느껴진다면, 다소의 빚을 갚을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 역사 문화관은 140여 년 간 복음으로, 나라와 백성을 사랑한 정신을 담아 체험하고 또 오고 오는 후대에게 계승될 것입니다.
“옛적 일을 기억하라”(이사야 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