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민(LA연합감리교회 목사)
저는 지난 주말에 버지니아주에 있는 ‘와싱톤한인교회’ 전교인 수양회를 인도하고 왔습니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 인근에 있는 이 교회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워싱턴 지역에 세워진 최초의 한인 교회입니다. 대한민국은 1948년에 새 정부를 출범시켰고, 그 이듬해인 1949년에는 미국 워싱턴 DC에 주미 한국 대사관을 개관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워싱턴 DC 인근에 있던 한국대사관 직원과 유학생들이 전쟁 중인 조국을 위해 정기적으로 모이던 기도 모임이 교회가 되었고, 지금은 버지니아 연회에서도 가장 큰 교회, 한인연합감리교회 중에서도 큰 교회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교회를 방문했을 때, 예배당 앞에 전시된 교회 역사 속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와싱톤한인교회’의 제2대 목사로 사역하셨던 오창희 목사님이셨습니다.
오창희 목사님은 저희 교회에서 1949년부터 1952년까지 사역하셨고, 얼마 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오삼열 장로님의 아버님이시기도 합니다. 오창희 목사님은 저희 교회에서 사역하시던 중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미 감리교회 캘리포니아-애리조나 연회에서 수집한 4천 파운드의 구제품을 가지고 전쟁 피난민을 돕기 위해 한국으로 떠나셨습니다.
그 후 워싱턴 DC를 통해 미국으로 들어오신 오창희 목사님은 ‘와싱톤한인교회’의 제2대 담임목사로 1954년부터 1956년까지 사역하셨습니다. ‘와싱톤한인교회’는 교회의 기초를 놓은 오창희 목사님의 사역을 ‘믿음의 작은 불꽃 하나가’라는 말로 정리했습니다. LA에서 피어오른 ‘믿음의 작은 불꽃 하나가’ 워싱턴 DC에까지 전해져서 복음의 큰불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습니다.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된 집회는 주일 예배와 함께 끝을 맺었습니다. 주일 점심과 저녁 식사를 교우들과 함께 하면서 받은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월요일은 메모리얼 데이로 휴일이었지만, 그 지역에서 사역하시는 목회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메모리얼 데이를 맞아 미국 대통령이 교회 근처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뉴스로만 흘려들었을 뿐이었습니다.
화요일은 LA로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오후 늦게 출발하는 비행기였기에 오전에 시간이 조금 남았습니다. 용기를 내어 지하철을 타고 워싱턴 DC 시내와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했습니다. 후덥지근한 날씨가 여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메모리얼 데이도 지났기에 국립묘지를 찾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마음으로 지하철역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입구에 도착하자 자동차로 온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단체로 방문한 학생들도 군데군데 모여 있었습니다.
알링턴 국립묘지 안에는 미국은 물론, 한국과 베트남 등 세계 곳곳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희생을 기리고,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와 컬럼비아호 사고로 목숨을 잃은 우주인들을 추모하는 자리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알링턴 국립묘지에는 40만 기의 무덤이 있다고 하는데 메모리얼 데이를 맞아 무덤 하나하나에 성조기가 꽂혀 있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의 희생을 기억하는 것이 미국의 저력임을 느꼈습니다.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의 무덤입니다. 미국인의 마음속에 젊고 강한 대통령으로 영원히 남아 있는 케네디 대통령이기에 그의 무덤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지만, 케네디 대통령의 무덤을 찾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무덤에 있는 ‘꺼지지 않는 불꽃(The Eternal Flame)’ 때문일 것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춤을 추듯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한낮이었기에 불꽃이 잘 보이지도 않았고, 또, 뙤약볕 아래에 있었기에 불꽃이 내뿜는 열기도 반갑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을 쳐다보다 보니 일종의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모세가 떨기나무 아래에서 만난 사라지지 않는 불꽃이 이런 불꽃이었을 것입니다.
꺼지지 않는 불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복음을 증거하는 열정이 영원히 타올라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먼저 믿음의 작은 불꽃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하고 돌아왔습니다. 외부 집회를 잘 인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