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정래(밀워키 베이뷰 UMC 목사)
나는 사교성이 별로 없고, 성격도 명랑하지 못해서 친구가 별로 없다. 내가 좋아하고 친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내가 연락하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여서 나도 멀리하게 되니 점점 외로운 외톨이가 되어가나 싶어 겁이 나기도 한다.
그런데, 아직 내 말을 들어 주고, 나한테 친절하게 대해 주는 친구가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 살고 있는데, 내가 자주 전화를 해도 잘 받아 주니 참 고맙다.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우울한 성격의 내가 목원대학에 입학하여 긴장해 있을 때 재미있고 우스운 얘기로 나를 포함한 동기들을 많이 웃게 해 준 참 좋은 친구이며 인간성 좋은 박용삼 목사이다.
미국에 같이 살아도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나지 못하는데, 얼마 전에 캘리포니아에 와서 같이 캠핑을 가자고 해서, 이번에 교회에서 일주일 휴가를 얻어 몇 년 만에 캘리포니아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 중 그간 만나지 못했던 분들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내가 클레어몬트 대학원 기숙사에 살 때 쌀부대를 짊어지고 내 방에 내려놓고 웃으며 가시던 박우성 선배 목사님과 사모님, 늘 웃으며 다정하게 대해 주시던 장근성 목사님과 사모님, 위스컨신에서 목회하시고 캘리포니아에서 은퇴생활을 즐기시는 권혁순 목사님을 뵙고 ‘모란각’에서 점심 식사를 대접해 드리며 인사를 드릴 기회가 있었다.
친구 박용삼 목사는 작은 한인 이민 교회를 섬기며 연로하신 어머니와 장모님을 잘 보살펴 드리고, 하늘나라로 보내신 후, 십여년 전 부터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하여 그간 마라톤 풀코스를 열 번이상 달린 건강하고 튼튼한 몸이 되어 있었다. 30년 전 부터 캘리포니아, 네바다를 비롯한 유명관광지를 몸소 섭렵하여, 캘리포니아 관광에 거의 ‘박사수준’이 되어 있었다. 이번에 Seal Beach에 있는 아담한 은퇴 집을 구입하여 멋지게 꾸며 놓았는데, 아쉬운 것 하나 없이 풍요롭게 잘 사는 것 같았다.

LA방문 환영 골프에 참가해 주신 선배 목사님들. 왼쪽부터 조건갑 목사님, 필자, 그리고 황기호 목사님, 조명환 목사님. 그리피스 팍에 있는 하딩골프장에서의 만남이었다
박 목사랑 한국식당 먹자 코너에서 짬뽕을 먹고, 한국식품점에서 삼겹살과 고구마를 산 후, St. Clemente의 바닷가에 있던 주립 캠프장에서 텐트를 치고 모닥불에 가마솥 뚜껑을 얹어 놓고 두꺼운 삼겹살과 김치를 올려 익힌 후, 먹어 보니 예상외로 맛이 있었다. 박 목사의 말로는 집에서는 불이 약해 이런 맛이 나지 않고, 모닥불의 강한 불 때문에 삼겹살이 맛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모닥불을 보며, 예전 청소년 때 교회 수양회에서 짝 사랑하던 여학생을 떠 올리며 불렀던, 가수 박인희 씨의 철학적인 노래, ‘모닥불’을 불러 보았다; “인생은 모닥불 같은 것…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그 다음날은 ‘크리스챤 위클리’란 한인 교계신문을 발행하시는 조명환 목사님이 “LA오면 골프를 같이 치자”고 해서 갔더니, 감리교 원로이신 조건갑 목사님과 황기호 목사님이 같이 나오셔서 골프를 쳤는데, 내가 제일 못 쳐서 원로 목사님들의 기분을 즐겁게 해 드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조 목사님이 “위스칸신에서 조 목사가 와서 환영하는 의미로 저녁은 내가 내겠다”고 하셔서, 중국식당에 가서 팔보채 등 요리를 먹었는데, 이름 없는 시골 목사인 나를 대접해 주시는 조 목사님의 따뜻한 마음에 깊은 감사를 느꼈다.
내가 낙서처럼 두서없이 쓰는 글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는 이대 기독교 학과 출신의 팔순의 안지매 권사님이 “LA 오면 연락하세요. 내가 불고기와 냉면 살게요”라고 하셔서, 제가 “권사님은 평생 목사들 식사 대접해 주셨는데, 이번에는 목사인 제가 권사님에게 점심을 사고 싶습니다. 그래야 공평하지요”라고 했더니, 호랑이 같으신 권사님은, “그럴 려면, 오지 마세요!”하시며 쎄게 나오시길래, 나는 깨갱하며 꼬리를 내렸다. 권사님은 “오실 때 조 목사님 친구 목사님도 모시고 오세요” 하시길래 박 목사도 함께 가자고 했다.
LA 한인타운에 있는 ‘강남회관’에서 다정 다감하신 안 권사님과 조명환 목사님, 박용삼 목사랑 점심을 먹으니 고향에 온 것 같은 푸근한 느낌을 받았다. 안 권사님은 50년전에 미국에 이민을 오셔서 미국인 보험회사에서 타이피스트로 입사하여 그 회사에서 50년을 근무한 후 80이 넘은 작년에 은퇴하시고 지금은 편하게 사신다고 했다.
권사님은 지금은 예수동행교회로 이름을 바꾼 교회 (옛 밸리연합감리교회)에서 40년 이상 권사로 봉사하고 계신데 한인 이민교회의 산 증인이시자 인자한 할머니이시다.
안 권사님의 아버님은 학교 선생님이셨는데, 6.25때 공산군에 납북된 후 생사조차 확인할 길이 없었다고 했다. 권사님의 어머니는 유성으로 피난을 간 후, 거기에 있는 감리교회에서 풍금을 치며 주일학교 교사를 하다가 목원동산에서 새로 생긴 대전 감리교 신학교의 일회 졸업생이 되었다고 했다.
안지매 권사님의 초청으로 LA한인타운 강남회관에서 식사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친구 박용삼 목사, 안지매 권사님, 필자, 그리고 조명환 목사님.
안 권사님의 어머니인, 노춘풍 여자 전도사님은 남자 목사들에게 무시와 설움을 받으며, 서울에서 목회를 하다가, 따님을 도와주려 미국에 이민을 와서 60세에 운전면허를 따서, 할머니 교인들을 싣고 LA한인타운을 누비시며, 80이 되도록 한인 교회에서 여전도사님으로 봉사하신 여장부이셨는데, 90을 넘기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한다.
주일에는 27년 전에 내가 잠시 교육목사로 있던 영화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님과 목사님의 남편인 장로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서울대학 수의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수의사로 계신 장로님은 이화여대 국문과 출신의 강현철 목사님을 도와 한인이민 교회를 이끌어 가고 계시다.
나한테 친절하게 대해 주신 기억이 있어 옛날 생각이 나서 인사드리러 갔는데, 예배를 마친 후, 교인들이 정성스레 만들어 주신 콩나물 비빔밥에 미역냉국과 김치를 먹고 작별 인사를 드리고 렌트카를 공항에 반납한 후, 비행기를 타고 덴버를 거쳐 밀워키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의 차로 집에 왔다.
위스컨신 촌 동네에서 외롭게 사는 나그네가 천사의 도시 LA에 갔을 때 시간을 내어 만나 주시고, 함께 운동하고, 밥 먹고, 웃으며 정담을 나누어 주신 분들이 모두 하늘에서 보내어 주신 고마운 천사님들이었음을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