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 대통령의 피습사건은 지난 주말 전 세계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유세장 연설 중 잠깐 고개를 옆으로 돌린 순간 암살 총격범의 총알이 트럼프의 귀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이 0.1초 사이였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러니 죽음의 악몽에서 벗어난 트럼프의 말이 백번 공감이 간다. 사건 직후 트럼프는 SNS에 올린 글에서 "상상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으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었다“고 고백했다. 순간적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그의 불안했던 심경이 이해가 간다.
내가 보기엔 금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이미 종 친 거나 다름없다. 펜실바니아의 20세 총격범의 총탄에 미국 대선의 풍향계는 이미 트럼프 쪽으로 기울어진 셈이다.
물론 아이러니가 있기는 하다. 그렇게 총기 규제를 반대하면서 미국총기협회와 손잡고 살던 트럼프가 결국 총탄에 맞아 죽을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라고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이번 사건 때문에 총기 규제 좀 빡세게 해달라는 백성들의 한 맺힌 절규에 귀를 기울여 줄까? 내 생각엔 천만의 말씀. 오히려 이번 암살미수사건 때문에 확실하게 대권을 다시 거머쥐게 되었다고 할배수준의 나이 많은 공화당 상원의원들이나 트럼프 측근들은 오히려 ‘총기 은혜론’을 펼치고 나올지도 모르겠다.
퓰리처상 수상자가 포착했다는 트럼프의 피 흘리는 사진은 비밀경호원들의 인간방패를 뚫고 번쩍 손을 흔드는 순간 파란하늘에는 성조기가 펄럭이는 사진이다. 이미 대선 승리의 예고편처럼 보이는 사진이다. 그의 아들 도날드 트럼프 주니어가 아버지의 이 사진과 함께 SNS에 올린 He’ll never stop fighting to Save America란 게시물은 13일 오후 6시 46분(동부시간) 사건발생 약 30분 만에 조회수 863만회를 기록했다.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조회수다.
나 같은 미국의 중도층도 마음이 움직였을 것이다. 바이든이나 트럼프나 다 똑같은 늙은 노인네들이라고, 이 노인네들 노욕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는 판에 일찌감치 금년 대통령선거는 ‘개점휴업’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선거고 뭐고 관심 없다는 눈치다.
그러나 총 맞는 트럼프를 보고는 생각이 달라지는 이가 많아질 것이다. 우선은 동정론이다. 죽을뻔 하면서까지 저렇게 대통령되겠다고 안달이라면 한 표 줘야 되지 않느냐는 동정론. 경호원들의 부축으로 현장을 빠져나가면서도 불끈 쥔 손을 흔들어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투혼이나 그 혼비백산 중에도 ”내 신발“을 챙기는 기죽지 않는 모습이 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저게 바로 ‘아메리카 스트롱’의 모습이라고. .
이번 총격에서 살아난 트럼프를 두고 구사일생이라고들 말한다. 9번 죽을 뻔 했다가 한번 살았다는 말로 쉽게 ”죽었다 살아났다“는 의미다. 그럼 그런 비극적 순간이 오히려 복이 되게하는 전화위복은 개과천선이 뒤따라야 한다. 개과천선이란 나쁜 잘못을 바르게 고쳐서 착하게 된다는 뜻이다.
트럼프의 개과천선은 이 나라의 정치판에서 제발 증오를 몰아내는 일이다. 정치하는 자들은 민주당이던 공화당이던 민주주의 탈을 쓴 채 나라를 쪼개면서까지 ”너는 죽고 내가 살자“는 식으로 치열하게 싸움만 벌인다. 이런 정치판에 국민들이 무슨 희망을 보고 무슨 위로를 얻겠는가? 트럼프가 ‘의회난동’을 뒤에서 지휘한 혐의를 대법원 판결로 부분 사면을 받기는 했어도 그런 폭력적인 마인드로 어떻게 상생의 리더십을 생산해 낼 수 있을까? 피를 부르는 극단의 증오정치를 잠재우고 관용과 포용의 개과천선이 참으로 필요하다.
구사일생은 우리에게도 있다. 오랜 이민광야를 헤쳐 오면서 우리는 비즈니스에서 구사일생, 코로나를 거치면서 구사일생, 자식농사 흉작이라 구사일생, 이상한 병 걸려서 구사일생, 가정이 깨지기 직전 구사일생. . . . 수많은 구사일생을 경험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구사일생의 충격적인 아픔과 비극의 순간도 지나가면 다 잊어버린다. 하나님의 은혜? 지나고 나면 ”그 분의 은혜였다고?“ 대부분 그런 식의 오리발이다.
구사일생을 거치면서 그런대로 인생의 주름살이 펴지고 가난과 싸우며 살아왔던 고단했던 과거와 달리 살만한 시대가 열리다면 그건 전화위복 아닌가? 그런 전화위복을 경험하려면 우선 내 인생의 개과천선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트럼프는 분명 하나님이 자신을 지켜주셨다고 말했다. 만약 대통령이 될 경우 지난주의 피격사건을 정치철학의 터닝포인트로 삼아서 날카롭게 비판하는 민주당도 껴안고 반대파들도 백악관으로 불러들여 밥이라도 먹이고 ‘입막음 돈’ 재판에서 자신에게 칼을 들이댔던 증인들에게도 용서의 손을 내미는 너그러운 대통령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그야말로 성공한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
트럼프의 개과천선만 기대하지 말고 우리의 개과천선도 시급하기는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에 달고 살면서 ‘성령충만파’인척 행동하지만 여전히 미워하고 질투하고 반목하면서 허접하게 살아가는 개과천선 낙제인생. 트럼프의 구사일생을 바라보며 내 인생의 개과천선을 도모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