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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8/13/24
침묵
권혁인(산타클라라연합감리교회 목사)

 

엘리야가 죽음의 위협을 피해 광야에 들어섰을 때, 그는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됩니다. 문자적으로는 ‘약한 침묵의 소리’라고 번역할 수 있는 작고 여린 소리였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표현한 까닭은 아마도 광야의 침묵 속에서 귀를 기울일 때만 들을 수 있는 소리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세상의 분주함을 잠시 뒤로제쳐두고 침묵하며 경청하라는 권면인 셈이지요.

 

물론 침묵이 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 기자는 ‘침묵으로 내려간 사람은 어느 누구도 주님을 찬양하지 못한다‘(시115:17)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자식을 잃고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욥을 보며 친구들도 너무나 처참한 고통이라, 입을 열어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침묵을 부정적 의미로 사용한 예들은 성서의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때론 슬픔과 좌절이 가져 온 불가항력의 상태로 침묵을 바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행한 침묵은 찬양’(시 65:2)이라고 고백하듯이, 침묵은 위대하고 경이로운 하나님 앞에서 일종의 경외감과 벅차오름의 증거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기에 택한 침묵은 가장 깊은 존경과 우러름의 표시라는 겁니다.

 

놀라운 건 이렇게 말로 표현하지 않은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은 다 듣고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항상 귀를 기울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저 소리가 나서 ‘들음’이 아니라, 듣고자 ‘경청’하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마치 사랑은 ‘다가섬’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시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지요.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사귐이 가능한 건, 오롯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도 따라 행해야 할 거룩한 책임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침묵을 통해 타자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여백을 만드는 일입니다. 침묵은 내면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비움의 행위입니다. 비움을 통해 소리가 공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때때로 세상의 소음과 자신의 욕구로부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가슴 속에 광야의 침묵을 만드는 시간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그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여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적막해서 너무 쓸쓸할 것 같지만, 우리는 여전히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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