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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10/07/24
“나 하나 쯤이야?” “나 하나 만이라도!”
민병열(원로목사)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책의 제목도, 저자도 기억나지 않지만, 머리속에 오래 남아 있는 이야기 한 토막. 일본의 저명한 학자 한 분이 회갑 잔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유명해서 제자들 또한 수를 헤아리기 조차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풍습 하나가 집에 큰 술독을 묻어 놓고, 축하의 뜻으로 최상의 술 한병씩 가져와 술독에 붓고 순서에 따라 그 술독의 술을 선생이 먼저 시음하고 참여한 손님과 함께 건배 하면서 즐거움을 나누게 된다고 합니다.

 

예정된 시간이 되어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축하객 앞에서 주인공인 선생이 기대와 기쁨이 넘치는 모습으로 술독의 술을 떠서 잔을 높이 들고 감사의 뜻이 담긴 한마디를 하고는 입에 술잔을 갔다 댔는데 갑자기 그의 모습이 일그러 졌던 것입니다.

 

이유는 술맛이 안나고 맹물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선생의 시음하던 모습을 주시하던 제자들은 놀래어 그들도 술맛을 보니 선생의 일그러진 모습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잔치에 참여하는 제자들 각자가 수많은 제자들이 좋은 술을 가져 올텐데 ’나 하나 쯤이야 맹물을 가져간들 표시가 나겠어?’ 하는 얄팍한 생각이 거의 수많은 제자들의 생각이었으니 큰 술독의 맛은 맹물에 가까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가장 맛있는 술잔을 기울이며 흥겨워야할 잔치는 가장 흥이 떨어지는 파장이 되고 말았습니다(설마하니 그럴리가? 하지만 가능한 얘기 입니다).

 

“나 하나쯤이야 빠져도 괜찮겠지.”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갈 거라고, 그렇게 스스로 작게 여길 때.

 

하지만 생각해보면, 한 송이 꽃이 피지 않으면, 그 한 송이를 기다리던 벌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밤하늘에 뜨는 별이 하나 사라지면, 그 별을 바라보던 이의 마음은 어디에 머물까요?

 

어린 시절, 70~ 80년 전 중소도시는 논밭이 대부분이었고 또 놀이터였습니다. 논에는 군데군데 웅덩이가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조그만 물바가지로 물을 퍼내고는 미꾸라지를 잡아 검정고무신에 넣곤 합니다.

 

잠시 후면 바닥이 보이던 그 웅덩이는 다시 물로 채워지곤 합니다. 몇 차례의 경험으로 본바 가득 채워지는 그 많은 물은 아주 작은 샘 줄기 하나에서 계속 물이 나와 웅덩이를 가득 채워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인 조동화는 ‘나 하나 꽃 피어’를 노래합니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

 

나 하나 물들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냐

 

나 하나라도, 내 작은 손길과 마음이 모여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작은 물방울이 모여, 결국 큰 바다를 이루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나 하나쯤” 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나 하나라도” 빛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은 그 자체로도 소중하고, 그 하나가 세상에 필요한 존재 입니다.

 

나 하나는 “천하를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마태복음 16 :26)” 이기에 할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하여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매일의 삶을 살아감이 좋지 않을까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마태복음 5 :1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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