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정래(위스컨신 UMC 목사)
안지매 권사님을 통해 이승자 권사님의 자서전을 받아 놓고 바쁘다는 핑계로 읽기를 미루고 있다가 몇 주전 목회자 세미나가 열리는 캔자스 씨티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읽기 시작해서 그 날 저녁 호텔방에 도착하여 다 읽었다.
이승자 권사님은 자신의 팔십 평생을 회고하며 생각을 다듬고 책을 쓰기까지 7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나는 하 루만에 책을 통해 흥미진진한 이승자 권사님의 인생 이야기를 읽는 은혜를 입은 것이다.
권사님은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마도로스로 일하던 아버지의 외동딸로 귀하게 자랐지만, 딸에게는 다정했던 아버지가 아내인 권사님의 어머니에게는 술과 외도와 가정폭력으로 가정의 평화를 깨어버린 슬픈 가족사를 목격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아버지의 반복되는 외도와 폭력에 견디지 못하고 어머니가 눈 내리는 추운 겨울에 가출을 하고 결국 이혼을 했을 때, 어린 딸이 겪어야 했던 마음의 고통과 상처는 평생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6.25 전쟁으로 피난민이 된 권사님의 가족들은 작은 배의 선장으로 있던 아버지의 결정으로 해군 함정에 배를 묶고 진해군항을 항해 가다가 연결된 밧줄이 끊어지며 아버지의 배가 파선된 일이 있었다. 이 사고로 배에 타고 있던 친할머니와 새 엄마가 바다에 빠져 죽었지만, 어린 소녀였던 권사님의 기지와 노력으로 젖먹이 이복동생 “후”를 살리게 된다.
이혼을 한 후, 혼자가 된 어머니는 생활력이 강해서 부산에서 장사를 하여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어 딸이 서울에서 이화여고와 이화여대를 다니도록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는 새 장가를 들어 목포에서 살면서 딸이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는데 아무런 도움을 베풀지 않았던 것 같다. 어머니의 재정지원으로 유복하게 이화여대에 다니던 권사님은 좋다고 따라다니던 몇몇 남자들을 뿌리치고, 대학 졸업 후 다니던 직장상사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여 세 자녀를 낳았다.
착실한 공무원이던 남편에게 자녀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가자고 졸랐던 권사님은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남편’과 이혼을 하더라도 미국이민을 갈 결심도 했다고 한다.
가정폭력을 피해 이혼을 하고 자립경제를 이룩한 어머니처럼,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 이혼을 불사하더라도 미국에 건너와 자식들의 장래의 길을 열어 준 권사님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권사님의 뜻을 따라, 한국에서의 공무원 생활을 접고 중년의 나이에 함께 미국이민 길에 올랐던 남편은 미국에서 일을 해서 가정을 이끌어야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샌드위치 가게를 인수하여 하루에 30 파운드 분량의 칠면조를 구워 살을 발라내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파는 일에 온 가족이 달라붙어 일해야 했다.
일이 힘들 때면, 남편은 권사님에게, “이럴 려고 미국에 오자고 했냐?”는 식의 푸념을 했지만, 부부가 열심히 일을 해서 자녀들을 번듯한 대학교육을 시키고 결혼도 시켰다.
권사님 부부는 딸이 있는 남가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고,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혼자 살기 외로 와 샌프란시스코에서 30년을 사시던 친정어머니를 남가주로 오시라고 종용하여 함께 사시게 되었다.
어머니가 96세를 일기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났고, 딸은 이혼하여 새 인생을 개척하고 있고, 이권 사님은 남가주에 있는 노인 아파트에서 홀로 지내며, ‘예수동행 한인 연감리교회’에 나가신다고 한다. 작년 성탄절 때인가 안지매 권사님을 통해 이승자 권사님이 나를 위해 손수 짜신 목도리를 보내어 주신 일이 있었는데, 감사의 인사가 늦어졌다.
이승자 권사님이 친구들에게 “자서전을 쓰고 싶다”고 했을 때, 다들 “뭐 대단하다고 자서전을 쓰냐?”하며 말렸으나, 이승자 권사님은 솔직담백하고 인간미 있는 필치로 인생 살아 나온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독자들에게 마음의 감동을 선사해 주셨다.
6.25전쟁과 부모님의 이혼, 미국 땅에서 강도를 당하는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책의 제목을 “내 영혼이 행복했던 날의 축복”이라고 정할만큼,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영혼을 가지신 권사님의 책을 읽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가을에는 꽃이 지지만, 풍성한 열매를 남기는 것”이란 말처럼, 배꽃 같이 화사했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이제 자녀들과 손주들이 미국사회에서 번창해 가는 열매를 남기신 이승자 권사님의 인생 행진곡에 감사와 축복의 박수를 보내어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