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순(윌셔연합감리교회 원로목사)
오래 전 나는 한국에서 기독교대한감리회 정회원 진급과정의 하나로 자격심사 위원회에서 인터뷰를 한 일이 있었다. 당시에는 군목을 위한 임시 목사 안수 제도가 있었는데, 나는 해병대에서 군목으로 복무하기 위해 연회에서 임시 목사 안수를 받고 복무 중이었다.
준회원 과정을 거쳐 정회원을 위한 인터뷰 장소에 긴장된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나의 개인 신상이나 배경, 그리고 군복무에 대해 나를 잘 아시는 분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인터뷰는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나는 최선을 다해 여러 가지 질문에 답하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느닷없이 심사위원 중 한 분이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창순 목사는 내가 잘 압니다. 지금 해병대 군목으로 우수하게 복무하고 있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창순 목사는 제가 절대 신임하며 그의 신상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을 집니다.”
나는 그 분이 차현회 목사님이라는 것을 겨우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려운 인터뷰는 거기서 끝이 났고 행정적인 질문 몇 가지만 더 있은 후 아무 문제없이 자격심사에 합격할 수 있었다.
사실 차 목사님은 저를 잘 아시는 바가 없었다. 나를 본 일도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안다. 다만 인터뷰 중에 내가 해병대 군목이라는 것을 아신 차 목사님은 무조건 나를 신임하신다며 신상에 대해 책임진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당신이 해병대 군목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후배를 감싸주시고 붙들어주시고 격려해 주신 것이다.
차 목사님은 누가 봐도 보스 기질이시다. 외모도 그렇고 심성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차 목사님을 ‘진정한 보스’라고 부르고 싶다. 적어도 나에게는 진정한 보스이시다. 진정한 보스는 부하를 진정으로 아끼고 돌봐주는 사람을 말한다.
고 차현회 목사
오래 전, 시카고 지역 목회자 수련회에 초청 받아 참석한 일이 있었다. 다른 것은 별로 기억에 없는데, 수양지로 목사들이 자동차로 각자 가면서 서로 CB Radio로 대화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나를 태워가는 목사가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내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는 것은 그들이 가면서 서로 대화하는 내용이었다.
“야, 아무개 나오라.” “아무개 나왔다, 오버.” “야, 두목님은 누가 모시고 가냐?” “아무개가 모시고 간다.” “숙소 같은 것들도 다 잘 준비했나?” 이런 식이었다. 그 두목님이 누군가 했더니 바로 시카고 제일연합감리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던 차현회 목사님이셨다.
시카고 지역에서 ‘두목님’으로 행세(?)하시던 그 분이 그 후 로스앤젤레스 지역으로 오셔서 우리들 가까이 지내시며 역시 보스 역할을 하시며 사셨다. 특히 해군 해병대 군목 출신들에게는 철저한 보스이셨다. 그래서 오라고 명령을 내리시면 아무 말 없이 찾아가 뵈어야 했고, 그 때마다 점심은 그 분이 꼭 사셨다.
그런데 그 후 언제인가부터는 잘 부르지 않으셨다. 집필하시기에 바빠서 그러신가? 선교 여행 다시기에 힘들어서 그러신가? 우리 보스님도 이젠 점점 체력이 약화되어 가는 것 같아서 아쉽기 한이 없었다.
외유내강이란 말이 있다. 그런데 차 목사님은 외강내유라고 말하고 싶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뚝뚝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체구도 크시고, 차 목사님을 모르는 분은 외모만을 보고 무섭게도 보는데, 속마음은 한 없이 약하시고 동정심이 많으신 분이셨다. 보스 기질이시면서도 한 번도 무엇이든 강요하는 법이 없으셨다. 그냥 제안만 하시고, 의견만 제시하시고는 그만이셨다. 그 다음에 독촉도 없으셨다.
2001년엔 차 목사님을 따라 남미 선교대회에 간 일이 있었다. 초청해 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따라갔다. 알고 보니, 남미지역에서 선교하는 한인 목사들, 감리교 목사들 뿐 아니라 타 교파 목사들까지 한 곳으로 초청해서 여비, 호텔 비, 식비까지 다 대 주시며 3박 4일 동안 세미나를 열어주시는 것이었다. 외지에서 몇 년씩 고생하며 사역하던 선교사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수양지에 와서 잘 대접 받고 세미나도 하고 갈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 참여하는 목사 가족들이 얼마나 기뻐하고 감사해 하는지, 참 보람된 일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차 목사님은 은퇴 후 웨슬리 선교단체를 만드시고, 세계 각지로 쉴 사이 없이 다니시며 남미에서 내가 본 것과 같은 일을 계속하셨다. 그러면서 늘 하시는 말씀은, “젊은 목사들이 선교지에서 고생들을 너무 많이 해,” 그런 마음을 가지시고는 가만히 앉아 계실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역시 마음이 약하셔서 그러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마음이 온유하시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그 보스님도 가신지 1년이 되었다. 많은 분들이 그 분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특별히 내 생애에 큰 힘이 되어주시고 선배 목사로 본을 보여주신 차현회 목사님을 가끔 생각하며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