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남가주 곳곳에서 음악회를 비롯한 다채로운 공연이 열립니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의 긴 공백을 넘어 다시 무대에 서게 된 단체들의 열정은 관객들에게 더욱 깊은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들의 땀과 노력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나며, 잃어버렸던 시간을 넘어선 기쁨과 감격으로 다가옵니다.
지난 주일 저녁, 깊어가는 겨울밤에 특별한 무대를 만났습니다. 그 무대는 저희 교회에서 열린 ‘나성 서울 코랄 50주년 기념 연주회’였습니다. 비록 저희 교회의 예배당이 전문 공연장처럼 음향적으로 완벽하지 않았고, 마이크 또한 전문 연주용은 아니었지만, 합창단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단정한 드레스와 정장을 차려입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1974년 창단되어 LA뿐 아니라 미주 한인 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한인 합창단으로 알려진 ‘나성 서울 코랄’은 한국 교회 음악의 선구자라 불리는 고(故) 박재훈 목사의 유산이 고스란히 깃든 합창단입니다. 박재훈 목사는 ‘어서 돌아오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지금까지 지내 온 것’ 등의 찬송가와 ‘어머님 은혜’, ‘산골짝의 다람쥐’, ‘송이송이 눈꽃 송이’ 같은 동요를 작곡하며 한국 음악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분입니다.
박 목사의 뒤를 이어 여러 지휘자가 ‘나성 서울 코랄’을 이끌었지만, 1990년대 중반이 되면서 한인 사회가 커짐과 동시에 여러 합창단이 생겨났고, ‘나성 서울 코랄’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 후 진정우 박사가 1997년에 제8대 지휘자로 ‘나성 서울 코랄’을 맡아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열리는 연주회에 갈 때마다 이런저런 순서를 맡았는데, 이번에는 맡은 순서 없이 그저 순수하게 객석에 앉아 편안하게 공연을 감상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이 귀한 연주회가 우리 교회에서 열리기도 했지만, 저희 교회 찬양대 지휘자로 오랜 세월 섬기셨던 진정우 권사님이 지휘하시고, 반주는 저희 교회 찬양대 반주자이신 박정미 집사님께서 맡으셨고, 또 저희 교회 교우 중에서 몇 분이 합창단원으로 활동하시기에 더욱 기쁜 마음으로 연주회에 참석했습니다.
12월 1일 저녁 7시, 쌀쌀한 겨울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사람들이 하나둘씩 교회로 모여들었습니다. 합창단은 마지막 리허설에 분주했고, 회중석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이들끼리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합창단이 무대로 입장하자 모든 어수선함은 사라졌고, 회중석의 조명이 꺼지면서 긴장감마저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경쾌한 플루트 연주와 함께 연주회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사랑의 열매’라는 제목의 첫 곡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가 되시며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시네”라는 가사로 지난 50년간 ‘나성 서울 코랄’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듯 울려 퍼졌습니다. 합창단원들은 진정우 박사의 지휘에 맞춰 ‘원해’ ‘주님’ ‘참 좋으신 주님’ ‘은혜 아니면’ 등 주옥같은 찬양곡을 계속해서 불렀습니다.
순서지를 받아 든 순간, 한 면을 가득 채운 17곡의 목록을 보고 시간이 길어지지 않을까 살짝 염려했지만, 바리톤과 소프라노의 품격 있는 솔로와 플루트, 트럼펫이 어우러진 합창은 오히려 시간의 흐름을 잊게 했습니다. 합창단은 한국 가곡과 서양 찬양곡이 절묘하게 배치된 레퍼토리를 아름다운 화음으로 소화하면서 깊은 감동을 선사했고, 어느새 연주회는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노래 후에 앙코르가 나왔고, ‘이 믿음 더욱 굳세라’를 청중과 함께 부르면서 ‘나성 서울 코랄 50주년 기념 연주회’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합창의 감동 때문인지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친교실에 다과가 준비되어 있다는 광고가 나왔음에도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깊은 감동은 긴 여운으로 남아, 모두가 그 순간을 조금 더 붙들고 싶어 하는 듯했습니다.
50년의 역사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더구나 합창단과 같이 여러 사람이 한마음으로 역사를 이어간다는 것은 더욱 특별한 일입니다. ‘나성 서울 코랄’이 한인 사회의 문화 발전과 화합을 위해 걸어온 지난 반세기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앞으로도 아름다운 하모니로 한인 이민자들을 위로하고 한인 문화의 우수성을 미 주류 사회에 알리는 가교 역할을 잘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나성 서울 코랄’의 새로운 도약을 응원하며 다음 연주회를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