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Login    /   Logout
818.624.2190
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12/23/24
못을 빼고 … 새해를 맞이하자

 

얼마 전 캐나다 밴쿠버에서 40대 한인 골퍼가 술에 취한 채 골프를 치다가 상대방과 언쟁이 벌어져 골프채를 휘둘렀다고 한다. 골프채는 잘못 휘두르면 살인무기가 될 수도 있다. 그는 경찰에 연행되었고 기소되었다는 보도를 읽었다. 골프장 추태다.


“골프장에 한인들이 너무 많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올 정도로 골프장엔 한인들이 미여터진다. 어쩔 수 없다. 골프채 메고 꾸역꾸역 몰려드는데 무슨 방법으로 제한을 둘 수 있겠는가? 그럼 매너라도 좋아야 한다.


골프장에서 떠드는 건 모두 한인들이다. 요즘엔 필리핀 사람들도 그 모양이다. 골프 치러 나온게 권세라도 잡은 것처럼 으스대면서 떠들고 장난치고 한 홀이 끝나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고받고 난리를 친다. 돈내기를 하기 때문이다. 돈내기 골프는 뒤 따라 오는 골퍼들을 열 받게 한다. 그린에 올라가서는 하세월이다. 돈 잃지 않으려고 요리 갔다 조리 갔다 오줌 마려운 강아지 새끼처럼 오두방정을 떤다. 돈내기 골프에서는 유난스레 고성이 오간다. 골프장 추태다.


맥도날드 추태도 있다. 커피 한잔 시켜 놓고 그 종이컵으로 리필을 하고 또 하고. . 종이 컵이 문드러질 때까지 맥도날드에서 죽치고 사는 노인네들이 있다. 요즘엔 커피크림이나 설탕, 케찹을 한웅큼 씩 챙겨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절도수준이다. 그러자 카운터에서 원하는 사람에게만 주기로 하고 선반에서 다 치우는 데가 많다고 들었다.


한 수 더 뜨는 경우도 있다. 아예 김밥이나 떡을 맥도날드에 들고 들어가서 한나절 음식파티를 벌이는 경우다. 배려심도 없고 매너도 꽝이다. 이걸 영업방해 행위로 봐야지 결코 손님의 특권으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몇 개의 테이블을 붙여서 자리를 마련해 놓고 반상회나 동창회를 하듯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도 너무해 보인다. 모두 맥도날드 추태다.

교회당 추태도 있다. 요즘엔 한국의 계엄령 선포와 대통령 탄핵이 교회 친교실의 ‘단골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윤석열이를 당장 가둬야 한다”거나 “이재명이를 먼저 감옥에 보내햐 한다”는 두 패로 나뉜다. 어느 집사가 “국회란 곳에 용공좌파들만 몰아넣어 준 국민들이 원죄”라며 공격하고 나오면 “처음부터 자격 없는 검사 나부랭이 윤석열이가 대통령이 된 것 부터가 잘못 끼워진 단추”라고 맞선다. “우리는 싸운다, 고로 존재한다”는 한국의 정치판을 그대로 교회당에 옮겨놓은 듯하다. 그래서 예배 후 친교실 교제가 싸움터로 변하여 결국은 교회 나오네, 안나오네로 발전하여 막을 내리는 저질 펠로우십. 교회당 추태다.


그래서 담임목사는 교회에서는 한국이나 미국의 정치얘기 일체 금지시키는 ‘계엄령’을 발동시켜야 그나마 교회의 평화를 유지해 갈수 있지 않을까?


지난주 LA에서 발행되는 한국일보에서 기막힌 시를 한편 읽게 되었다. 권숙월이란 시인이 쓰신 것이다. 제목은 ‘못을 빼다.’


티브이 광고에/잘못 한다에서 못을 빼니 잘 한다가 되었다/잘못 먹었다에서 못을 빼면 잘 먹었다/잘못 살았다에서 못을 빼면 잘 살았다/잘못 가르쳤다에서 못을 빼면 잘 가르쳤다/잘못 배웠다에서 못을 빼면 잘 배웠다/자주 써먹어 녹슬지 않은/못, 빼면 이렇게 뜻이 달라진다/꾸중이 칭찬으로/부정적인 말이 긍정적인 말로 바뀐다/제자리 잘 박힌 못이/문장을 완전히 바꿔 놓는 것이다.


추태에서 못을 하나씩 빼며 살아보자. 반목과 미움의 못을 빼고 그 자리에 이해와 관용의 새 못을 박자.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 사실 겉으로 들어나는 추태뿐인가? 우리들 마음속의 추태는 또 어떤가?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봐주는 질투심, 좀 된다 싶으면 기고만장 기어오르는 거만, 내가 살만 하다 싶으면 이웃이고 뭐고 깔아뭉개는 무관심. . 그런 추태의 못도 빼어 버리자.


질투심이란 보이지 않는 추태에서 목사는 자유로운가? 교회가 갈라지고 교계가 분열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대개는 남이 잘 되는 꼴 못 봐주겠다는 저변에 깔린 질투심의 발로인 경우가 많다. 목회에 덜 바쁜 목사들은 끼리끼리 몰려다니기를 즐긴다. 과연 그 패당이 목회자의 덕목을 훈련하기 위함인가? 그게 아니고 상대라고 생각하는 어딘가와 싸워 이기겠다는 질투와 반목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도 추태다. 그런 추태가 하나님 나라와 공존할 수 있을까?


한 해가 저물고 있다. 365일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 앞에 정말 하루하루 부끄럼 없이 잘 살았다고 나는 고백할 수 있는가? 너무 녹이 슬어 빼어 낼 수 없는 못은 내 인생가운데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여전히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며 살고 있는가?


사랑하는 후배 여성훈 목사님의 페이스 북에 올린 짧은 글이 가슴에 꽂혀 왔다. “싸울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사랑해라.” 맞는 말이다. 추태와 질투의 못을 빼내고 그 자리를 사랑과 용서의 대못으로 채워보자. ‘어글리 코리안’이란 말은 너무 억울하다.

 

 

 

 

 

 

 

 

List   
크리스천 위클리
후원교회/기관
The Christian Weekly
9925 Bothwell Rd.
Northridge, CA 91324
TEL. 818.624.2190
Email. cweeklyusa@gmail.com
COPYRIGHT © 2015-2023 THE CHRISTIAN WEEKL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