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의 글] 정상에서 내려온 친구. . . 고 정대선 목사
신상만(연합감리교 목사)
정상에 오르는 것이 끝이 아니라 내려오는 것이 끝이라고 가르쳐준 친구가 있었다. 불과 7개월 전, 27개월을 투병하다가 하늘나라로 가버린 오랜 친구의 삶이 아직도 나의 기억 속에 생생하다. 가버린 친구의 삶은 참으로 짧은 인생이었다. 폐암 4기로 판정된 후 투병생활을 했지만 암을 이기지는 못했다. 아직도 암은 치료가 어려운 영역인가 보다. 일찍 발견하면 완치 가능성도 높아지겠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몇 년에 한번 종합검사로 발견되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가 버리기 일쑤다. 조기발견만이 살길이라는 얘기다.
친구가 모르는 사이 그렇게 암은 서서히 친구의 생명을 위협해 가고 있었다. 친구는 어느 날 어깨의 통증을 느껴 병원에 가서 검사해본 결과 폐암 4기로 판정되었고 이미 암이 온몸에 퍼져버린 상태였다.
친구는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전혀 통증도 없었고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고 했다. 그 친구는 담배는 물론 술도 마시지 않는 친구였다 그런데 폐암이라니 그것도 4기가 될 때까지 몰랐다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친구는 곧바로 투병생활에 들어갔다. 암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식이요법을 하며 의사가 먹으라는 비싼 약을 먹고 키모를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도 보험으로 그비싼 치료약을 복용 할수가 있었다.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몸은 점점 지쳐갔고 눈에 띄게 야위어져 갔다.
얼굴색은 검게 변해가고 눈동자는 빛을 잃어갔다. 나중에는 병원에 가는 것도 힘들어 집에서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이어갔다. 몸에서 암덩어리를 만질 수 있을 정도로 악화되어 희망은 점점 사라져 갔다.
그 친구의 아내는 물질적 희생을 각오하고 일년 일찍 조기 은퇴하여 남편의 치료를 위해 헌신했고 나 또한 자주 방문하면서 용기를 주었다. 좀더 공기 좋고 딸이 살고있는 곳 가까이에서 도움을 받기위해 옥스나드로 이사를 갔다.
매일 바닷가를 바라보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가끔 바닷가를 산책도 하면서 투병생활을 이어갔다. 나도 매주 그 친구를 위해 옥스나드에 가서 그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용기를 주었다. 갈 때는 항상 맛있는 한국음식 을 사다가 함께 먹었고 조금이라도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 옥스나드를 순례하기도 하였다. 때때로 휠체어에 그 친구를 싣고 바닷가를 산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명은 창조주에게 달려 있는 법. 인간은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임을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오지 말기를 그토록 고대했던 그 순간이 결국 눈앞에 펼쳐지고 말았다.
어느 날 새벽 2시반, 친구의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친구가 아무래도 숨 질것 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아내와 함께 출발하여 1시간 반 만에 친구집에 도착했다. 이미 아들 내외와 딸 내외가 와 있었다. 모두들 마지막 순간이 왔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친구는 침대에서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 친구를 내려다보며 이제 작별해야 할 순간이 오고 있음을 알수가 있었다. 그저 친구의 손을 잡고 옆에 있는 것 외에는 해 줄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결국 그날 오후 친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세상과 이별을 했다. 이미 의식이 없는 그 친구의 손을 잡고 등을 쓰다듬어 주고 있는데 친구는 몸을 스르르 바로 누이며 숨을 멈추었다. 잠시 잠깐 사이에 친구는 더 이상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들을 보고 싶었는지 눈을 뜨고 운명했다. 입도 벌린 채였다. 나는 그 친구의 눈을 감겨주었고 입이 벌린 채 시신이 굳어지면 안 되므로 거즈로 입과 목을 고정시켜 입을 다물게 해주었다.
그 친구는 그렇게 사랑하는 이들을 옆에 두고 더 좋은 곳으로 언제 만날지 모르는 긴 여행을 떠나갔다. 3년 전 그 친구와 40번 도로를 따라 모하비 사막에 있는 Kelso Dunes에 갔다.
바스토우에서 40번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 보면 Kelso Dunes 싸인이 나오는데 이 싸인을 따라서 가다 보면 사막 한복판에 거대한 모래 언덕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계속가면 15번 고속도로의 베이커에 이른다. 친구 내외와 함께 넷이서 모래언덕을 보러 간 것이다.
차를 세워놓고 친구의 아내와 내 아내는 차안에 있고 나와 친구는 그 모래언덕을 정복하러 올라갔다. 무더운 날씨에 땀은 온몸을 적셨고 물을 쉴새 없이 마시며 힘든 싸움을 해야만 했다. 발은 모래 속에 푹푹 빠지기 때문에 걷기도 힘들었다. 정상으로 오를수록 눈 밑으로 사람들이 작게 보이고 하늘은 점점 가까와 지고 모래바람은 세지더니 결국 모래언덕 정상에 오를 수가 있었다. 정상에는 거센 모래바람이 쉴새없이 불어와서 눈을 뜨기도 어려웠다.
투병생활 중 옥스나드 바닷가를 걷고 있던 고 정대선 목사
거센 바람에 날리는 모래 알갱이들은 얼굴을 날카롭게 때렸지만 정상에서 바라본 파노라마는 장관이었다. 360도 사방이 눈에 보이며 탁 트인 모하비 사막이 한눈에 들어왔다. 친구와 나는 얼싸안고 정상에 오른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드디어 우리가 함께 해낸 것이다!
그 친구는 나와 함께 Kelso Dunes 정상에는 올랐는데 삶에서는 일찍 내려와 버렸다. 무엇이 그리 급해서 일찍 내려올 수밖에 없었을까? 사람들은 저마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 앞을 보지 않고 전력으로 질주한다. 마치 정상에 오르는 것이 삶의 목표 인 것처럼.
그렇게 정상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려와야 한다! 내려오기 위해서 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그 친구는 그렇게 힘들게 Kelso Dunes의 정상에는 올라가 놓고 미련없이 인생에서 내려와 버렸다.
사람들은 “정상에서 만납시다”하고 약속이나 한 듯 정상을 오르기 시작하지만 “내려가서 만납시다”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눈을 정상으로 고정시키면 주위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나만 보일 뿐이다. 오로지 앞만 보고 정상을 향해 오르고 또 올라야 한다. 그렇게 한평생을 살고 이제 내려갈 때가 되면 다른 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위환경이 보이고 살아온 과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내려와야 할 거라면 정상에 오를 때 좀 더 여유 있게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이들의 손을 잡고 천천히 오르면 좋지 않을까? 정상에 오르기보다 어떻게 내려오는 것이 더 중요한가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치 있는 인생임을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친구는 정상이 끝이 아니고 내려와야 끝이라고, 올라가는 것이 끝이 아니라 내려오는 것이 끝이라고 나에게 말해주고는 먼 길로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