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이 되면 오픈도어 선교회가 월드와치리스트(World Watch List)를 발표한다. 기독교 신앙을 공언하고 실천하기 가장 힘든 국가들의 순위를 평가해서 발표하는 연간 보고서, 흔히 ‘기독교박해지수’라고 한다.
그러니까 기독교인들에 대한 폭력의 정도, 정부규제, 그리고 기독교인들을 향한 사회의 적대감에 근거해서 조사되는 이 박해지수는 전 세계 기독교인이 겪는 박해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해 시작된 인권보고서인 셈이다.
금년에도 발표되었다. 전 세계 기독교인 7명 가운데 1명이 박해를 받고 있다고 한다. 지난 한해 기독교인이란 이유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4,998명이었다. 우리 지구촌에는 기독교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고, 그런 일도 있다니!” 그냥 체면치레 감탄사 정도로 지나쳐버린다. ‘오픈도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그냥 구경만 하지 말고 고통 중에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을 도와주고 기도해 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이다.
더 중요한 통계가 있다. 이 세계와치리스트의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북한이란 것이다. 그것도 한 두 해가 아니다. 지금까지 무려 22년째. 세계에서 가장 모질게 기독교를 박해하는 챔피온 국가, 그것도 22년째. 이쯤에선 확 가슴이 막혀 온다.
이것도 그냥 지나치곤 한다. “자기 삼촌도 대포로 쏴 죽이는 잔인하고 철없는 독재자가 사실 무슨 짓은 못하겠어?” 그 철의장막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난들 분노할 생각마저 접는다. 분노해도 별수 없다는 체념 속에 양심이나 정의 같은 건 적당히 묻어두고 넘어간다.
오픈도어는 이렇게 말한다. “북한에서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존재한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22년 연속 기독교 박해 1위 국가, 그것보다 더 가슴을 울리는 건 그런 박해 국가에서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숨어있는 기독교인들이 40만 명에 이른다는 점, 정체가 탄로 나면 단박에 죽음이란 걸 알면서도 지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간직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40만 명에 이른다? 이 사실조차 무관심으로 흘려버린다면 정말 우리는 그들의 동족이라 말할 수 있는가? 무슨 통일 어쩌구를 말할 자격이나 있는가?
우리는 ‘탈북자의 대모’, ‘인권천사’로 알려진 디펜스포럼 대표 수잔 숄티를 기억하고 있다. 그녀의 나이 금년 66세다. 그녀가 북한인권운동에 투신한지 30주년을 맞아 ‘월간조선’과 인터뷰한 기사가 지난 주 온라인에 떴다.
그는 미국인으로 북한인권운동을 하는 것이 녹록치 않았을 것 같다는 기자 질문에 “북한의 끔찍한 상황을 믿지 않으려는 불신과 싸우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또 한국에서 북한인권 운동을 막는 친북성향 단체들이 있는 것도 힘들었다고 했다. 수많은 증언과 책, 그리고 다큐멘다리가 제작되어 미국인은 이제 북한을 이해하고 있다면서 “미국인에게 한국은 K팝이고 북한은 요덕수용소”라고 말했다.
“인권 없는 평화 없다”며 2004년 미 의회의 북한인권법 제정의 산파역할을 했고 고 황장엽 씨를 불러다 의회증언대에 세우면서 전 세계에 북한의 참상을 폭로하는 중간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런 노력으로 2008년엔 ‘서울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수잔 숄티는 이번 인터뷰에서 “DJ와 노무현이 김정일을 살렸고, 문재인이 김정은을 살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3명이나 22년간 기독교 박해 1등인 북한의 인권현실은 못 본척 외면하고 세습독재자들하고만 놀아났다는 말이 된다. 기막힌 노릇 아닌가?
북한의 인권문제가 심각한 것은 세계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유엔에서도 매년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된다. 결의안은 북한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침해와 반인도적 범죄를 규탄하는 게 골자다. 이 결의안이 20년 동안 유엔총회에서 채택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한국은 2019년 문재인 정부 때 공동제안국에서 슬그머니 빠졌다가 2023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5년 만에 복귀했다는 점이다.
이런 한국의 어이없는 사정 때문에 숄티 여사가 북한 인권운동을 하면서 속이 타고 울화가 치밀었을 것이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북한 인권을 위해 30대 부터 청춘을 바쳐 온갖 방해와 위협을 무릎 쓰고 일해 온 수잔 숄티의 30년 여정에 존경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수년전 세상을 떠난 고 손인식 목사님은 참혹한 북한인권이야말로 통곡하며 울부짖어야 할 우리들의 기도제목이라 외치며 ‘통곡기도회’를 조직하는데 앞장선 분이다. 때로는 수잔 숄티를 초청하여 집회를 열기도 했다. 미 전역과 한국까지 퍼져 나간 운동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신음하는 북한 동포들을 살려야 된다는 절박한 심정이 느껴졌건만 그분이 돌아가시자 북한 인권을 위한 통곡의 기도소리는 이제 어디에도 들리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