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열(원로목사)
영국의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 (Arnold Toynbee, 1889-1975) 는 그의 저서 ‘역사의 연구’ 에서,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를 언급했습니다. 곧 문명의 흥망성쇠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창조적 소수‘라고 보았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결책을 제시하며 ‘도전과 응전‘ 으로 발전을 이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부패하거나 더 이상 효과적으로 응전하지 못하면 문명은 쇠퇴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역사(history), 이를 소홀이 여기는 개인이나 민족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할 위험이 높습니다. 역사는 인류의 경험과 지혜를 담고 있어, 이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무시하면 안됩니다. 현재와 미래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역사를 존중하고 배우는 자세가 필요 합니다.
특히 한국에서의 초기 기독교 선교역사는 매우 다양하고 깊고 또 넓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기독교 선교는 암울했던 한국사회에 서광을 비췄고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그 예로, 1. 교육의 발전(선교사들이 학교를 세워 근대 교육 체계를 확립하였고, 여성 교육, 이를 토대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도움을 주었음), 2. 병원을 세워 현대적 의료 체계를 도입함으로 의료 서비스의 개선에 크게 공헌함으로 국민들의 건강 수준도 향상시켰고, 3. 사회 개혁과 문화적 변화에 주도적 역할을 했으니, 곧 전통 사회의 일부 관습에 도전하며, 인권과 평등의 가치를 전파했습니다. 4. 민족주의와 독립운동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관심을 가져 일제 강점기 동안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곧 기독교 선교는 단순히 종교의 전파에 그치지않고, 한국의 사회, 문화, 정치 등 다방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가주감리교원로목사회‘는 미국에서 감리교회 (KUMC, KMC)를 목회하다가 은퇴한 목회자
들의 친목 모임으로 1990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이 회의 40명이 지난 2024년 10월 7일 – 15일까지 ‘한국초기선교지여행‘을 했습니다. 이에 간략한 여행기를 기록하여 알림으로, 알지 못했던 초기선교의 역사와 그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의 마음과 뜻을 알리고져 함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꼭 방문을 권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들이 펼쳐서 세운 현대교육분야와 의료의 혜택을 입은 자들이 아닐까요?
- 한국 감리교의 발상지인 인천 내리교회: 선교사 아펜셀러가 1885년 4월 5일 첫 발을 디뎠고 1885년 6월 20일부터 7월 29일까지 머물면서 선교를 준비했습니다. 1890년 안골(내리)에 초가집을 마련하고 집회를 시작했다는 기록입니다. 1902년 12월 첫 번째 하와이 이민선(이 교회 교인 50명 포함해서 121명)이 떠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인천 내리교회에 있는 이 교회 개척자들의 흉상. 왼쪽부터 1대 아펜젤러, 2대 조원시(존스), 3대 김기범 목사.
-강화도 교산교회: 강화도 시루미 마을에 사는 이승환은 인천에서 술집을 하다가 내리교회에 등록 후, 전도의 일종으로 ‘계모임’에 동참했고, 술집을 청산한 후 고향에 내려와 자신의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 교회가 시작됐습니다. 존스 목사가 배를 타고 왔으나 마을 유지의 반대로 육지를 밟지 못해 이승환은 한 밤중에 어머니를 업고 선상세례를 받은 것으로 유명합니다.(후에 마을유지 김상임이 회심한 후 교회 부흥에 한몫을 했다고 합니다).
-성공회 강화읍성당: 1893년 7월 코프 주교가 강화도의 큰 포구 갑곶 나루에 성당을 세웠습니다. 조선의 전통 한옥과 서양의 기독교 건축양식인 바실리카양식을 절충하여 성당을 건축했습니다.

강화읍 성당
-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 서울 마포의 양화진(버들꽃마루)은 천주교 절두산성지에 이웃하며, 조선왕조에서는 교통과 국방의 요충지였습니다. 여기에 묻힌 분들 가운데는 일제암흑기 한민족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헌신했던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전도 양양한 젊은이로 모국에서 누릴 수 있었던 수많은 권리를 포기하고 복음의 빛을 나누기 의해서 헌신했습니다. 특히 유아의 무덤들 앞에 섰을 때에 필자의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엄마의 뱃속에서, 혹은 태어나자마자, 열악한 환경으로 의료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숨을 거둔 영아의 무덤들이었습니다.
이 여행동안 수고하신 임원진들, 도움을 주신 교회와 목회자들, 그리고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신 두 분(이종만 목사, 딸기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감동받은 실화는 다음에 계속되겠습니다.
“만일 내게 천의 생명을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리라”(루비 라첼 켄드릭, 1883-1908).
“내가 조선에서 헌신하였으니 죽어도 조선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죠세핀 이튼 필 캠벨, 1853-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