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정래(밀워키 베이뷰 UMC 목사)
교회 목회를 하면서 파트타임 병원 채플린으로 일한 지 이년 째가 되었다. 나 외에도 파트타임 채플린들이 대여섯 명이 있어서 한 달에 한번씩 스탭 미팅이 있다. 이번 모임에는 ‘여호와의 증인교회’에서 환자들을 케어해 주는 사람들이 와서 발표를 한다고 했다.
스탭모임이 열리는 회의실에 들어가니 단정한 머리모양과 말쑥한 정장차림의 중년남자들이 환하게 웃으며 먼저 인사를 해 와서, 마지못해 인사에 응했다. 여호와의 증인 교회에서 나온 사람들인 것 같아 은근히 반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채플린들의 매니저인 멕시칸인 사울이 여호와의 증인 손님들을 환영한다는 인사를 하고, 마이크를 넘겨주자, 첫번째 연사로 멋진 양복과 단정한 머리를 한, 젊은 흑인이 여화와의 증인교회가 전 세계 200여 국가에서 선교와 구제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으며, 홍수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구호물자를 전달해 주는 사진을 보여 주며, “우리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자선활동을 많이 하는 좋은 사람들”이라는 뜻을 전달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본론 부분에서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피를 피하라’하는 말씀에 따라 수혈을 통하지 않고도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길이 많이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나는 참을성을 잃고, “아직도 수혈을 거부한다는 겁니까?”라며 따지듯이 물었더니, 그 발표자는 당황해 하며 “아, 예, 그러긴 합니다”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봇물이 터진 것처럼, 유명인사들의 인용구를 들먹이며, 일장훈시를 해 버렸다.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인 달라이라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종교와 과학이 충돌하면, 종교가 언제나 진다. 아인슈타인도 비슷한 말을 했다: 종교가 없는 과학이 절름발이라면, 과학이 없는 종교는 장님이라 말했다”고 했다.
성경에 “피를 먹지 마라. 피를 멀리 하라”고 해서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죽어가는 환자에게 수혈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어리석은) 문자적인 성서해석방법이 아닌가 라며 시비를 걸었다.
마크 트웨인이 “성경이란 참 요상한 책이다. 당신이 어떤 주장을 하던지,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성경구절은 항상 있다”(The Bible is a wonderful book. You can prove anything you want with it)고 했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이버는 “성경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고, 문자 뒤에 있는 뜻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You don’t have to take the sacred stories of the Bible literally. But you have to take them seriously).
나는 계속 흥분해서 “우리 동네 미국 이웃 사람이 있는데, 청소년 때 과학을 공부하며 여호와의 증인교회의 수혈거부 교리에 반론을 제기했다가 여호와의 증인 교회에서 쫓겨나고, 여호와 의 증인 교인이던 가족과 친척들에게 절연 당하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지금은 아무 교회에 나가지도 않는, 무신론자로 살고 있다고 들었다”고 하니, 내 매니저의 상급자인 제니퍼가 나를 저지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5분밖에 안 남았으니, 정리합시다. 이 자리는 종교교리를 논하는 자리가 아니고, 환자 케어를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를 서로 존중하며 대화하는 자리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며
나를 젊잖게 질책했다.
나의 무례하고 공격적인 언사에 불쾌했던지 여호와의 증인 대표로 온 백인 중년신사는 내게 와서, “성경에 대해 논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우리를 찾아 주시오”하며 정중하나 도전적으로 말했다. 다른 여호와의 증인 대표 한 사람은 내 매니저에게 “초청해 주어 고마웠어요”하고 인사하고 나한테는 말도 없이 나가 버렸다.
그들이 가고 난 후 나는 내 경솔한 말 때문에 야단을 맞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공식석상에서 함부로 말한 것 같다. 사과드린다”고 하니, 내 매니저인 사울은, “뭐. 그럴 수 도 있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예전에 유태교 채플린 둘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정통파 유태교인이고 한 사람은 개혁파 유태교인이었는데 같은 유태인이면서도 의견이 달라 싸웁디다”라고 했다.
옆에 있는 카톨릭 평신도 성찬 사역자는 “채플린 사무실에 성찬 포도주와 빵이 남은 것을 함부로 대하지 마시길 부탁 드립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포도주와 빵이 예수님의 살과 피의 실재 임재임을 믿으니, 우리 신앙을 존중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하면서 “카톨릭 환자가 카톨릭 사제에게 고해성사나 종부성사를 하기 원하면, 꼭 카톨릭 신부님에게 연락해 주세요. 카톨릭 사제만이 죄를 용서할 권한이 있다고 우리는 믿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배알이 틀리기 시작했지만, 또 헛소리를 했다가 병원에서 잘릴 것 같아 아무 소리하지 않았다.
내가 속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마틴 루터 만세! 마틴 루터 덕분에 우리는 개신교인(Protestant)이 되어 만인사제직(Priesthood of all people)을 믿는다. 카톨릭 신부만 하나님과 면죄부 독점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누구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신부만 찾을 게 아니라, 우리도 임종환자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으니, 많이 애용해 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마크 트웨인이 현대인을 위한 예언자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마크 트웨인이 이런 말을 했다: “종교란 사기꾼이 바보를 만났을 때 만들어 진 것”(Religion was invented when the first con man met the first fool).
나도 종교인으로 밥 먹고 산지 삼십년이 넘었지만, 종교인은 알게 모르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왜 종교직에서 떠나지 않고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칼릴 지브란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답하겠어요: “내 말의 반은 거짓말입니다. 그래도 말하는 이유는 내 말의 다른 반이 참말이 되어 당신 마음에 와 닿길 바라기 때문입니다”(Half of what I say is meaningless, but I say it so that the other half may reach you – Kahlil Gib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