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병욱(덴버임마누엘 연합감리교회 목사)
우리는 언제나 ''상황 속'' Situation, Circumstances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 자체가 상황이라는 틀 안에서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갈대로 표현합니다. 갈대가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 저리 흔들리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환경과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각자의 주어진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모두 평안하고, 좋은 상황과 환경 가운데 있기를 원하지만, 우리의 바램과 현실은 같지 않음을 언제나 발견합니다. 좋은 시간은 왜 그렇게 짧게만 느껴지고, 힘든 고난의 시간은 왜 길게만 느껴지는지... 아마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도 어려운 형편에 계실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 글을 통해 걱정과 근심의 마음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시편 108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이 시에서는 하나님께서 왜 다윗을 그렇게 사랑하시고 또 기뻐하셨는지 분명히 드러납니다. 어떤 분들은 다윗을 인정하지 않는 분들도 계십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지은 비윤리적인 죄들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다윗의 죄들을 그저 용서만 해주셨는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죄에 대한 분명한 대가를 치르게 하셨습니다. 다윗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뻐하시고 언제나 회복시키셨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향한 찬양 때문입니다. 찬양으로 죄를 씻음 받은 것이 아니라, 찬양으로 징계 받는 고난의 시간을 은혜로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심판 받지만, 그래도 하나님 찬양하는 믿음.
1절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아멘. 마음을 정하고 찬양한다. 찬양할 환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정하고 찬양한다. 우리는 흔히 기쁜 일이 있으면 찬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쁜 일이 있어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 하나님께 먼저 찬양하게 되면 우리 안에 기쁨이 일어남을 다윗은 알았습니다. 그에게 찬양의 이유는 상황과 형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 108편은 독특한 구조인데, 두개의 시편이 합쳐진 노래입니다. 먼저1-5절은 시편 57편입니다. 이 노래는 다윗이 사울 왕에게 10년 동안 도망 다닐 때의 심정을 표현한 노래입니다. 그때 다윗의 상황은 누가 봐도 찬양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오랜 도피 생활로 몸과 마음이 다 지친 상태에서 어두 컴컴한 동굴 속에 들어왔습니다. 마음도 지친 상황에서 동굴이라는 환경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경험하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입을 떼어 하는 고백이 "하나님 살려주세요"가 아니라 "하나님 내가 마음을 정했습니다. 저 살려 달라 하지 않고, 하나님 찬양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왜 다윗을 그렇게 기뻐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고백을 하는 다윗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못 본체 하실까요? 다윗은 하나님을 믿은 정도가 아니라 감동을 드리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질 못합니다. 왜 감당하지 못하는가? 그 믿음에 세상이 압도되기 때문입니다.
싸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주도권입니다. 내가 싸움을 이끌어 나가는 능력. 쉽게 말해 기싸움 입니다. 싸움에 승패는 능력 보다 ''기싸움'' 에서 이미 결정 납니다. 사단이 겁주고 어렵게 하는 이유는 바로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함 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세상의 겁박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때가 얼마나 많나요? 싸워보지도 못하게 이미 항복 하는 게 우리의 상황 아닌가요? 걱정 근심 염려하면서 우리 주도권을 알아서 사단에게 주고 있진 않습니까? 우리도 주도권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이 뭘 까요? 바로 찬양입니다. 찬양이 빼앗긴 우리 인생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확실하고 보증된 방법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찬양했는가? 2절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아멘. 잠들어 있는 자신의 영을 깨우는 고백입니다. 어렵고 힘들 때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려주는 구절입니다. 먼저 영이 깨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 부귀영화를 누려도 영이 잠자면 모든 것이 공허할 뿐입니다. 그러나 절망 가운데 있어도 영이 깨어나면 여전히 신실하게 나의 삶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 바로 영이 깨어나는 것입니다.
3-4절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 여전히 일하는 하나님을 분명하게 보는 구절.
이 구절에서 저는 두단어가 보입니다. ''감사''와 ''진실'' 다윗이 우리들에게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지 ''찬양의 길'' 을 알려줍니다. 먼저 감사입니다. 감사는 주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주신 은혜를 기억하면 감사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지금 상황이 너무 처절할 지라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은혜다." 이 고백이 언제나 우리들에게 있는데, 거기에서 찬양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주의 진실''입니다. faithfulness,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살아 계시고 이 땅을 주관하고 계시는 것이 궁창까지 이른다..
즉 하늘에 가득 차 있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지금 동굴 속에 있습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어둠 가운데 있지만, 영의 눈으로 하늘에 가득 찬 하나님의 영광을 생생하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5절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아멘. 여기서 다윗은 ''원하나이다..'' 하는데, 여기서 원한다는 것은 앞으로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라는 소망의 표현이 아니라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선포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있으니까 당연히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셔야 합니다." 우리의 찬양도 이런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해야 하는데... 같은 걱정 섞인 찬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이미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지금 내 삶 가운데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신 만만한 찬양. 이 자신감은 찬양 가운데 누리는 은혜입니다. 그러니까 혹시 지금 동굴 속에 있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 계신 분들은 찬양을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신감이 일어날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다?! 가 아닌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다음으로 6-13절은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 큰 위기 때 다윗을 통해 쓰여진 노래입니다. 다윗은 북쪽에서 아람 연합군을 상대로 크고 긴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북쪽에서 큰 전쟁이 길어지니까 남쪽 군대가 북쪽으로 지원을 가야했습니다. 그런데 그 틈을 타 에돔이 남쪽으로 전쟁을 해왔을 때 다윗이 부른 노래입니다. 그래서 그 심정이 6-7절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 하소서 하나님이 그의 성소에서 말씀 하시되" 그런데 이런 위기 가운데에서도 다윗이 끊임없이 지켰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전쟁 중에도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의 명언이 있습니다. "나는 너무 할 일이 많아서 아침에 기도로 3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마틴 루터처럼 할 일이 많아지고 바쁘면 보통 어떤 시간을 줄일까요? 기도 시간을 줄입니다. 왜? 기도는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 이렇게 신앙 무너지신 분들 많습니다.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시간은 여유 있을 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좀 더 벌고, 좀 더 여유가 있으면 예배도 하고 기도도 하겠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오나요? 은퇴하면 시간이 남아도나요? 은퇴하신 분들이 과로로 쓰러진다고 하십니다. 예배와 기도하는 시간은 킬링 타임이 아닙니다. 힐링/워킹 타임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귀한 시간입니다.
다윗도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전쟁에서 더욱 예배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그 예배 가운데 주신 하나님의 응답이 바로 7-9절. 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지금 동서남북에 있는 모든 곳이 하나님의 아래 있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분명하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기도로 끝까지 붙어있으면 그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 속해 있다 그러니 두려워 말라 너희는 보라!" 지금 다윗에게도 이 약속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사람이 그 모든 일들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고백합니다. 12절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 이니이다" 그리고 아직 승리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이미 승리를 확신함으로 고백하면서 오늘 본문이 마무리 됩니다. 13절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 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들을 밟으실 자이심이로다."
이 든든한 응답을 가지고 다윗이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하고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다윗에게 지혜와 능력이 있어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싸우시고 이기신 전쟁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을 통해서 드러난 분명한 하나님께 다시 영광과 찬양을 돌리게 됩니다.
저는 오늘 108편의 구성을 보면서 생각해 봅니다. 왜 두개의 시편을 합했을까? 57편은 다윗의 개인적인 고난과 고통 가운데 드렸던 찬양이고, 60편은 민족과 나라의 중대한 위험 가운데 드렸던 찬양입니다. 개인과 나라, 극과 극의 상황 가운데 보여진 다윗의 찬양을 통해서 분명한 메세지를 봅니다.
개인적인 고난 속에서도 찬양해야 하고, 민족과 나라의 위중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찬양이다. 그러면 지금 이 사이에 있는 우리의 모든 상황들... 친구들과 가정의 어려움, 공동체의 어려움과 시련들 가운데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려주십니다. 바로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을 찬양하자! 왜냐하면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이 우리의 모든 상황을 담기에 충분하시기 때문입니다. 상황을 덮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라.
혹시 지금의 상황과 환경에게 삶과 가정과 사업체의 믿음의 주도권을 빼앗기셨나요?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다시 그 주도권을 되찾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과 나라가 걱정되십니까?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사람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고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