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1센트 동전 ‘페니(Penny)’를 더 이상 주조하지 않는 행정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요즘엔 들이미는 게 모두 크레딧 카드이다 보니 어디서 현금내고 거스름돈으로 페니를 받으면 호주머니에서부터 귀찮다고 아우성이다. 그래서 쓰다 버린 유리 김치 병에 던져버리기 일쑤다. 사실 천덕꾸러기다.
미국에서 페니는 1793년에 처음 주조되어 유통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초기 페니는 크기가 커서 휴대하기가 불편했지만 1857년까지 사용되다가 1909년부터는 링컨 대통령의 초상화가 새겨진 디자인이 도입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00년이 넘었다.
지금 미국에서 유통되는 페니는 약 1,140억 개. 총액으로 따지면 약 11억4천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시비를 걸만도 하다. 이 페니 하나를 생산하고 유통하는데드는 돈은 평균 3.7센트. 그러니까 매년 약 1억9,200만 달러의 손해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이 페니가 사라질 경우 상품 가격의 반올림이 불가피해진다고 한다. 모든 가격이 5센트 단위로 조정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현금 거래가 많은 저소득층에겐 경제적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에서는 한 해에 약 6,800만 달러 상당의 동전이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카드결제가 증가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이 때문에 페니의 실질적 사용 가치에 대한 의문이 꾸준하게 제기되어 왔다는 것이다. 기업들도 페니를 다루는 데 추가적인 시간과 인력이 소모되기 때문에 효율성을 고려하면 없애는 것이 합리적이란 주장도 있었다. 우리 집에도 페니와 함께 동전들이 유리 김치병을 채우고는 있지만 그걸 콩알처럼 하나, 둘 세어가지고 은행에 들고 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버리기 곤란한 골동품 수준이다.
페니를 없애는 걸 반대하는 사람들은 저소득층에게 1~2센트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는 문제이고 4센트는 5센트로, 3센트는 0센트로 계산하는 반올림 정책이 도입되면 결과적으로 소비자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있다. 문화적 가치를 따지자는 것이다. 링컨의 초상이 새겨진 페니는 미국 역사와 문화의 상징인데 ‘페니 없애기는 역사 지우기’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자선단체들이 거스름돈 기부를 통해 기금을 모금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페니가 사라지면 이같은 소액 기부 문화가 사라질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다.
또 페니가 사라지면 그에 따른 5센트 동전, 즉 니켈을 더 많이 생산해야 하는데 니켈의 주조 비용도 11센트라서 배보다 배꼽이 큰 건 마찬가지다. 결국 재정적 부담은 더 심해질 수 있다.
단순히 효율성만 따져서 폐지를 결정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정부 지출을 줄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적·사회적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 같다.
내가 페니 홍보대사도 아니고 페니 폐기론자도 아닌 마당에 찬반논쟁에 끼어들 일은 아니다. 그렇긴 해도 그냥 오래 거기 있어줄 것 같았던 그 무엇이 우리 주변에서 홀연히 사라진다면 그때 막연하게 찾아드는 허전함?
아날로그 시대에 잘 길들여진 것들이 시대가 변하면서 쓰잘머리 없는 폐품으로 취급받아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1970~80년대 이민 왔을 때 보통 사람이라면 응접실에 피아노와 전축은 꼭 있어야 되는 필수품목이었다. 그때 사들인 월리처 피아노는 아직도 우리 집 응접실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일제 켄우드 전축은 오래전에 사라져 버렸다. 거기다 유성기판을 올려놓고 그래도 ‘G선상의 아리아’나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듣던 고상함이 괄시받던 이민자의 프라이드이기도 했다. 비닐 봉타리 가득 담아 한국 드라마 비디오를 빌려다 보던 시절도 있었다. 한때는 비디오 대여점으로 부자 되는 사람도 많았다. 그 비디오도 세월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이동원 목사님 설교라고 이리저리 돌려 듣던 카세트 테입 전성시대도 있었다. 새벽예배 길에 이동원 목사님 설교 테입은 단연 인기 1위였다. 그것도 추억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듣고 싶은 노래도 듣지 못하고 돌리고 돌려 듣던 카세트 테입도 없어져 버린 후 우리는 지금 ‘디지털 고아시대’를 지나 머지않아 ‘AI고아시대’를 살아가야 할 위기와 마주치고 있다.
태엽을 돌려 매일 밥을 주던 내 손목의 세이코 태엽시계는 오래 전에 사라지고 지금은 밥 달라고 말도 걸지 않는 애플와치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코닥이나 후지필름을 갈아 끼워가며 사진을 찍던 필름 카메라는 또 어디로 살아졌을까?
1센트 짜리 페니가 용도 폐기된다는 말에 문득 내 인생의 저무는 시계를 보는 것 같아서 구구절절 꼬리를 물고 옛날 일들이 생각이 난다. 나는 확실히 늙어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