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철(연세대 명예교수, 종교철학)
<성서와 문화> 100호 특집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서와 문화>를 창간하시고 15년 동안 헌신하신 박영배 박사님과 지난 10년간 속간을 맡아오신 이계준 박사님의 노고에 깊이 경의를 표합니다.
20세기 초반 유럽 기독교 신학을 주도했던 칼 바르트(Karl Barth)는, 신학자는 "한 손에는 성서를,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 들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신학자는 한편으로는 성서를 잘 알고 있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시대의 문화적인 상황 또한 잘 파악해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이해에 기초하여, 성서가 오늘의 문화적인 상황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서와 문화>는 지난 25년간 정확히 바로 이러한 신학을 추구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성서와 문화>는 성서연구에만 몰두하지도 않았고, 우리 시대의 문화적 상황을 파악하는 일에만 전념하지도 않았습니다.
<성서와 문화>는 문자 그대로 성서와 문화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오늘의 한국이라는 문화적 상황 속에서 성서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탐구해왔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서와 문화>라는 제호는 신학의 과제와 잘 어울리는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성서와 문화> 100호 출판에 즈음하여, 성서와 문화의 만남이 어떻게 21세기 크리스천의 지성적 신앙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지를 잠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성서란 무엇인가? 성서는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특정한 문제와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들에게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역사적 문헌입니다.
그러면 성서를 연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성서를 연구한다는 것은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특정한 문제와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들에게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를 연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때문에 성서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영원한 진리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정한 시공간 속에서 특수한 문제와 관련하여 특정인들에게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적어도 그 특정인들에게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지만, 다른 시공간 속에서 다른 문제를 갖고 사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 성·서·와·문·화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성서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이 역사적 문헌으로서 성서가 갖는 실체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서는 과거에 특정한 문제로 고민하던 신앙의 선배들에게 내리셨던 하나님의 처방전이라고 할 수도 있고, 동시에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할 때 참고하라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참고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성서연구는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성서연구를 하는 것이 곧 신학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서연구가 신학이 되려면 오늘의 문화적 상황과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성서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처방전을 참고로 하여, 우리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말씀, 즉 우리의 문화적 상황에 가장 적합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읽어내야 합니다.
이처럼 신학을 하기위해서는 우리 또한 우리 시대의 문화적 상황에 대한 충분한 때로는 전문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예언의 시대에는 예언의 말씀이 필요했던 특수한 문화적 상황이 있었고, 율법의 시대에는 율법의 말씀이 필요했던 특수한 문화적 상황이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의 시대에도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가 필요했던 특수한 문화적 상황이 있었습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에 따르면, 예수의 시대에는 기아의 문제, 질병의 문제, 폭력의 문제가 그 어떤 문제보다 시급한 시대적 과제였다고 합니다. 무엇일까? 국내적으로는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 좌우갈등과 남북갈등의 문제, 다문화와 성소수자의 문제, 그리고 세계적으로는 인공지능과 기후 위기 등 수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성서에는 언급조차 없던 문제들인데, 이것들이 과연 신학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들일까? <성서와 문화>에서 이러한 주제들도 다루어야 할 문제들일까? 낯설고 불편한 이슈들일 수는 있지만, 이것들을 배제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들 한가운데에서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하나님의 뜻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것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성서와 문화>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이고, 또 앞으로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21세기 크리스천의 지성적 신앙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성서와 문화에 대한 냉철한 연구에 기초하여, 우리 시대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고,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 뜻을 따라 올바르게 사는 것, 그것이 아닐까? 성서와 문화를 연구하고 이 두 축을 연결하여 21세기 한국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이 지성의 영역이라면, 그 뜻을 따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의 영역이 아닐까? 머리는 차갑게, 그러나 가슴은 뜨겁게. <성서와 문화>는 지난 25년간 이 일에 앞장서 왔고, 이러한 점에서 시대를 앞서 가는 선구자였다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서와 문화> 100호를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성서와 문화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