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이란이 미사일 폭격을 주고받으며 중동에 또 전쟁의 먹구름이 덮쳐가고 있다.
이란하면 우리는 페르시아(바사) 제국이 번성했던 땅으로 기억하고 있다. 페르시아 제국은 기독교인들에게도 너무 유명한 고레스 대왕(Cyrus the Great)이 기원전 550년경에 세운 제국이다. 다리우스 1세를 거쳐 찬란한 전성기를 누리다가 330년경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패망했다. 이란 사람들은 지금도 그 고레스를 ‘이란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고레스 원년을 이란 창건기념일로 지키기도 한다. 그러니까 지금의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의 직접적인 후손들이다. 그래서 다른 아랍 국가들에게는 “우리는 잡다한 너희들과는 뿌리와 태생이 달라!” 그러면서 뻐기고 있는 나라다. 아랍 국가들과 언어도 다르고 문화, 역사적 우월감이 대단하다.
고레스 대왕 때문에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고레스가 바벨론을 점령하자 거기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측은지심이 생겨 “니네 나라로 귀환하라”는 칙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민족의 은인인 셈이다. 이사야서에서 고레스는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로까지 묘사하고 있지 않은가? 굴욕적이고 불쌍했던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차원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2성전을 건축했다.
그런 고레스 대왕은 인권, 관용, 다문화 통치의 상징으로 존경을 받았고 그의 통치철학을 담은 ‘고레스의 인권헌장(Cyrus Cylinder)’은 유네스코에서도 아주 중요한 고대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였는가? 이스라엘과 이란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프렌드십을 유지하는 사이였다. 1979년 호메이니란 이슬람 근본주의 노인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물론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비공식 외교관계를 유지하면서 심지어 그 이름도 유명한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기관)와 이란 비밀경찰 사바크는 긴밀한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지난주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으로 이란의 군수뇌부들이 몰살당한 배후에는 모사드의 치밀한 계략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한때는 친구였는데 지금은 철천지 원수로 변한 셈이다. 더구나 이란이 이스라엘에 석유를 공급하기도 했고 이스라엘은 이란에 군사기술 지원까지 했다니 이런 ‘찐프렌드십’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 두 나라의 우정의 다리를 파괴한 건 호메이니가 이끈 1979년 ‘이슬람 혁명’이다. 이란은 1979년 이후 완전히 다른 나라로 천지개벽이 된 나라다. 친미주의자 팔레비 왕조를 무너트린 호메이니는 이슬람 신정체제를 수립하고 입법, 사법, 행정 모두를 이슬람 율법(샤리아)으로 재편해 버렸다.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는 이슬람 율법학자가 통치하는 시아파 이슬람 신정국가로 변신한 것이다. 테헤란에서 미니스커트를 입고 디스코 춤을 추던 여대생들은 혁명이 일어난 그날부터 얼굴과 몸을 감추는 히잡이나 부르카를 의무적으로 착용하는 어처구니 없는 복장혁명을 감수해야 했다.
그 혁명 이후 이스라엘은 노골적으로 이란의 적이 되었다. ‘이란을 해치는 사탄의 앞잡이’, ‘미국은 위대한 사탄’이라고 험상궂은 말을 서슴치 않았다.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겠다며 ‘이슬람 세계의 적’으로 규정해 버렸다. 테헤란의 이스라엘 대사관도 폐쇄해 버렸다.
이스라엘 주변에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창설시켰고 가자 지구의 무장단체 하마스의 뒷배역할도 했다. 이스라엘 주변에 무장단체를 설립해서 대리전 파트너로 활용하고 나섰으니 이스라엘의 인내심도 바닥날 수 밖에 없었다. 헤즈볼라와 하마스는 현재 이스라엘 공격으로 거의 멸종위기를 맞고 있는 중이다.
더구나 이란은 은밀하게 핵개발을 추진해 왔다. 핵무기를 만들려면 90% 순도의 고농축 우라늄이 필요한데 현재 이란은 60% 순도까지 개발했으니 머지않아 90%에 도달하면 핵무기 제조는 코앞이라는 위기감 때문에 이스라엘은 지난주 나탄즈란 핵개발 심장부를 공격했다. 만약 이란이 핵을 손에 쥘 경우 이스라엘에겐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종교를 국가 건립의 근간으로 삼은 대표적인 국가 중에 이슬람 쪽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이란 등이 있지만 이스라엘은 시온주의에 기반한 유대 국가란 정체성을 가졌다. 국가 뼈대로 보면 유대교와 이슬람교와의 대립인 듯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적대는 종교 차이를 넘어선, 체제의 대립, 혁명의 기억, 그리고 이념의 충돌이 빚어낸 복합적 결과다.
호메이니가 권력을 잡은 이래 이란은 단지 정권만이 아니라 세계를 보는 눈을 바꾼 것이다. 그 시선 속에서 이스라엘은 적이 되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이 갈등의 끝은 어디일까? 이사야서에서 하나님께서는 고레스 대왕을 ‘나의 종’이라고 하셨다. 유대 민족의 귀환을 허락한 이 페르시아 왕의 명령은, 정복이 아닌 회복의 이야기로 성경에 남아 있다. 그 기억이 이란과 이스라엘을 오늘의 전쟁에서 내일의 대화로 이끄는 다리가 되어줄 수는 없을까? 역사는 우리에게 이미 한 번 길을 보여준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