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만 해도 많은 아버지들은 “제발 빌 게이츠만 같아라”가 아들에게 거는 희망이었다. 돈 많이 벌어서 세계 1등 백만장자가 되라는 아버지들의 졸부근성에서 비롯된 헛된 꿈이었다. 그런데 그 빌 게이츠가 세계 부자서열에서 밀려나고 지금 선두를 다투는 게 제프 베이조스와 일론 머스크다.
일론 머스크는 전기자동차 테슬라로 돈 번 사람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달라붙어 지난 대선의 일등공신이 되었고 그 공로로 대뜸 급조된 정부효율부 장관으로 등극한 인물이다. 이름만 걸어놓고 월급만 챙겨가는 나태한 연방 공무원들 대상으로 해고의 칼바람을 일으킨 장본인. 그런데 6개월도 못 가서 트럼프와 머스크의 브로맨스는 산산조각이 났다. 트럼프의 One Big Beautiful Bill이란 세금감축안에 머스크가 강하게 반대의 칼을 들이 대면서부터다.
머스크에 밀리지 않겠다고 부자 경쟁을 벌이고 있는 ‘아마존’ 창립자 베이조스는 뉴멕시코주 알버커키 출신이다. 첫번째 부인 메켄지 스콧은 그와 이혼 후 엄청난 아마존 주식을 받아 미국 사회 곳곳에 천문학적 기부금을 쾌척하는 기부천사로 유명했다.
그 베이조스의 2번째 결혼식이 지난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렸다. 무려 3일동안 진행된 수퍼리치 결혼식. 성 마르코 성당이 거룩하게 도시를 떠받들고 있는 베니스 전체를 통째로 빌려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거만을 떨고 나왔지만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반대시위를 벌였다. 결국 베니스 북부지역 일부를 빌려서 결혼식을 치룬 모양이다. 신부는 폭스 뉴스 앵커 출신이라는데 그녀가 누구네 여식인지는 관심도 없다.
다만 250여명 하객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부부, 오프라 윈프리 등 세계적인 명사들에다 레이디 가가나 엘튼 존이 축가를 부를 정도의 결혼식이었다니 그 화려함의 정도를 짐작케 한다. 결혼식에 동원된 전용기만 90대. 결혼식 비용은 유럽돈으로 약 4천만 유로였다고 한다. 그래봐야 그의 전 재산의 5천분의 1 수준이라니 ‘새 발에 피’에 불과하다. 어쨌거나 그의 결혼식으로 이 도시가 얻게 된 경제효과는 11억달러라고 하니 베니스가 손해본 건 하나도 없다.
전 세계 언론이 이처럼 베이조스의 결혼식에 열중하는 동안 내가 살고 있는 남가주에서는 불법체류자를 체포하는 이민세관국(ICE) 요원들의 살벌한 작전이 연일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홈디포 주변의 히스패닉 일일 노동자들을 추적하거나 가정집, 사업장을 가리지 않고 체포작전이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두 아들을 미 해병대에 보냈던 아버지까지도 불법체류자란 이유로 추방 명령을 받았다. 딸의 졸업식을 하루 앞둔 아버지가 붙잡혀 가는 바람에 TV뉴스를 통해 엉엉 울고 있는 여고 졸업생의 통곡소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붙잡히면 가족들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비극의 현장이 매일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베니스에서는 불꽃이 터지고, 남가주에선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누구는 5천만 달러짜리 결혼식을 치렀고, 누구는 문 두드리는 ICE 요원 앞에서 자녀를 품에 안은 채 울어야 했다. 두 장면은 전혀 다른 무대에서 동시에 펼쳐졌지만, 동일한 시대, 동일한 인간 세상의 이야기다. 부자는 존재를 축하 받고, 가난한 이는 존재를 검문당하는 부조리. . .
우리는 왜 이토록 다른 풍경을 동시에 마주하게 되었는가. 부를 누리는 자들을 비난하자는 게 아니다. 나는 베이조스에게 억하심정이 있을 만한 자격도 없다. 다만 묻고 싶은 것이다. 인간의 존엄이 과연 샴페인의 가격이나 국적 증명서로 결정될 수 있는가?
기독교는 단지 ''자선을 베풀라''는 윤리체계만이 아니다. 기독교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 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세상이 보여주는 무관심, 무례함, 비인간화는 과연 복음에 합당한가라고 묻고 싶은 것이다.
교회가 오늘의 불평등을 향해 침묵한다면, 그러고도 여전히 우리는 예수의 길을 따르는 공동체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기독교적 형제애는 국경과 재산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오늘 예수님의 시선은 어쩌면 이민세관국 추적을 피해 숨 죽이며 문 뒤에서 떨고 있는 불법체류자들의 불안과 절망가운데 멈춰 있을 것만 같다.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세리와 창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도 하셨다. 그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그분은 묻고 계신다. “네 형제가 굶주릴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