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 아버지는 뭐하시냐?”
국민학교 새 학년이 시작되면 담임선생님이 꼭 묻던 질문이었다. 나에게는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다. 내가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데, 대체 뭐하시는 분이냐고 묻는 게 얼마나 서러운 일인가.
‘가정환경 조사’라는 것도 있었다. “집에 시계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나는 손을 들 수 없었다. 우리 집에는 시계가 없었다. 오직 금성 트랜지스터 라디오 한 대가 유일한 문명의 도구였다. 남의 집 벽시계를 부러워하며 우리는 시간 개념조차 내려놓고 살았다.
내 옆에 앉은 친구의 아버지는 도의원이었다. 선생님은 그 친구만 유독 칭찬했고, 때로는 “아버님 잘 계시지?”라며 다정히 말을 건넸다. 그 말이 내 귀에는 더욱 서럽게 들렸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초가집 뒷산의 감나무에게 달려가곤 했다. 내 키의 열 배는 족히 되었을 그 거대한 감나무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서 있었을 것이다. 초가을이면 주렁주렁 달린 감들이 서서히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그 나무 아래 서서 어린 마음에 쏟아지는 서러움을 달랬다. 파란 하늘에 솜사탕처럼 퍼져 있는 뭉게구름을 올려다보면, 어디선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려라, 머지않아 감이 익을 그때까지 기다려라.”
감나무는 내 외로움과 가난을 달래 준 힐링트리였다. 늦가을, 빨갛게 익은 감을 따 먹을 때의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다. 아마 조상 누군가 심어둔 그 나무 덕에, 가난한 집안의 어린 소년은 삶 속에서 작은 희망을 맛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감이다. 아내는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감을 사 들고 온다. 노스리지의 우리 집 뒤뜰에도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올해는 열매가 많이 열렸다. 지난해에는 모조리 다람쥐에게 빼앗겼지만, 올해는 ‘아마존’에서 주문한 망을 씌워 놓아 아직은 무사하다.
뒷마당 감나무를 바라보면 고향의 기억이 따라온다. 고향의 국민학교는 교실이 몇 개 되지 않았지만, 내 삶의 요람이었다. 운동회 때 어머니와 함께 운동장을 달렸고, 미술, 웅변, 글짓기, 서예로 받은 상장만도 50장이 넘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그 상장들을 안방 다락에 소중히 간직하셨다. 어머니의 눈물과 헌신으로 세워진 시골 교회는 내 신앙의 못자리가 되었다. 나는 쪽복음을 들고 다니며 성경 암송을 배우고, 주일학교에서 요셉과 모세, 다윗과 골리앗을 배웠다.
그러나 50년 전 시골 풍경은 이제 흑백사진처럼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다. 국민학교는 학생이 없어 문을 닫고 흉물이 되었고, 내가 위로 받던 감나무는 오래전에 사라졌다. 초가집 역시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흑벽돌로 지은 예배당도 철거된 지 오래다.
지난 10월 6일은 추석이었다. 추석 전날이 되면 서울에서 내려가는 나를 기다리며 어머니는 하루 종일 집 앞 신작로를 오가는 완행버스만 바라보셨다. 그러나 이제 신작로도, 완행버스도 사라졌다.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고향은 추억 속에만 존재한다.
미국 이민 생활하면서 요즘처럼 불안한 적은 처음이다. 수십 년 전 LA컨벤션센터에서 선서를 하고 귀화 시민권자가 되었지만, 불법체류자들이 단체로 수갑에 채워져 추방되는 뉴스들을 접할 때면, 내가 뼈를 묻으려고 찾아온 이 나라가 정말 맞아? 라는 좌절감이 밀려온다.
“에라, 이 참에 정떨어지는 미국 생활 접고 역이민?”
그러나 고향도 사라진 마당에 어디로 돌아 간다는 말인가. 서울사는 내 친구들은 이제 운전면허증까지 반납하며 지하철에 의지해 산다. 공항에 도착해 “픽업 좀 해달라” 부탁할 수도 없는 형편이 되었다. 어머니도 없는 고향, 감나무도 사라진 고향, 국민학교 건물조차 흉가가 되어버린 고향…. 사실 돌아갈 곳은 없다.
성경에 나오는 ‘이민자 오리지날’은 아브라함이다. 그는 우르를 떠나 하란과 세겜을 거쳐 애굽까지 갔다가 헤브론에 정착해 생을 마감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 고향을 떠났고, 그로 인해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그는 대가족을 이루고 민족의 시조가 되었지만, 결코 고향으로 역이민을 생각한 적은 없다. 아브라함을 보더라도 한번 왔으면 그만이지 무슨 역 이민? 그러고 보면 이민자의 길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섭리에 순종하며 머무는 곳에서 인생의 꿈을 묻는 길이다.
맞다. 나는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이 땅이 내게 복된 땅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뒷마당의 감이 익어가며 또 한 번 속삭이는 듯하다. “기다려라, 다 익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