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원기(연합감리교 은퇴 목사)
나는 1973년에 김포공항에서 일본 하네다 공항을 경유해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외환은행에서 바꾼 돈 100불을 갖고 가려고 했는데 김포공항에서 아내에게 20불을 주었다. 미국에는 이발료가 비싸다고 하길래 하네다 공항에서 헤어드라이어(Hair Dryer)를 25불을 주고 샀다. 그리고 나니 55불을 가지고 미국땅을 밟은 셈이다.
텍사스 달라스에 있는 남감리교대학(Southern Methodist University)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생활비를 돕기 위해 대학식당에서 그리고 부유한 사람들이 회원으로 가입하는 동네 컨트리 클럽 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유학 생활을 보낸 1년 후에 한국에 있는 가족을 초청하였다. 국민학교 1학년에 입학한지 얼마되지 않던 큰딸, 유치원에 가야 할 나이 5살의 둘째 딸, 남 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 노래를 이제 막 따라 부르기 시작한 철부지 3살배기 아들과 아내 4식구가 아내의 할머니가 정성껏 만든 깻잎 한통을 큰 가방에 담아 달라스-포트워스(Dallas-Fortworth)공항에 도착했다. 이렇게 하여 우리 가족의 제1차 이민생활이 시작되었다.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온 식구들이 총 동원이 되어 사무실 청소를 하였다. 아내는 남편 뒷바라지를 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육체적인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나는 학업을 마치고 개척교회를 하면서 보람 있는 일도 많았지만 식구들과 함께 겪어야 했던 이민 광야의 삶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재 2차 이민의 삶은 캘리포니아에서 시작이 되었다. 연합감리교회 서부지역 한인교회 개척과 전체 한인교회 육성을 위한 ‘서부지역 선교감리사’로 파송을 받았을 때 가장 어려웠던 것은 이민 초기에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과의 이별이었다. 개밥의 도톨이처럼 미국의 허허벌판에 떨어진 이민 초년생이 달라스, 택사스, 그리고 광활한 미국 중남부지역의 연합감리교회의 지도자들과 맺은 관계를 뒤로 하고 새로운 지역으로 떠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미국 서부지역의 한인연합감리교회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 좋은 지도자들 그리고 자원봉사 평신도들과 더불어 함께 선교사역을 보람 있게 감당할 수 있었다.
은퇴후에는 라구나우즈로 이주하여 제2차 이민의 후반기를 보내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탈북자장학금 선교사역을 함께하는 좋은 선교사역의 동역자들을 만나서 보람이 있었고, 더욱이 마음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하고 여행을 함께 했던 이웃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달란트를 이웃을 위하여 이름도 내지 않고 봉사하는 좋은 이웃들에게서 마음의 감동을 받고 살았는데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되어 마음은 몹시 아쉬웠다.
자녀들의 권고로 제 3차 이민의 삶을 시작한 곳은 조지아주 아틀란타(Atlanta)였다. 이곳에 도착하여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의미 있는 선교사역을 함께 할 수 있는 이웃들을 만나 수 있을까? 허심탄회하게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함께 즐겁게 여행을 할 수 있는 이웃들을 사귈 수 있을까? 건강한 삶은 어느 정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새로운 지역에서 마음 편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을까? 수많은 미지수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과 수필집을 탐독하고 지미 카터 대통령 부부의 삶의 흔적들을 찾아보면서 시간을 아껴 써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틀란타에서 제 3차 이민생활을 시작하면서 절박해지는 생각은 “어떻게 제 4차 이민을 준비할 수 있을까?” 이다.
제4차 이민은 차원이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것이다. 눈으로 볼 수 있고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믿을 수 밖에 없는 새로운 세상으로 옮겨가는 것이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지금 여기는 비록 고난의 길을 갈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지만, 그때 그 길에서는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어렴풋이 상상만 따름이기에 더욱 불안하다.
내 주변의 상당한 친구들이 이미 제4차 이민을 떠났다. 그리고 심심찮게 친구들이 떠난다는 소식이 가끔 들려오고 있다. “어떻게 아름다운 삶을 마무리를 하고 떠날수있을까?” “빗자루를 들고 이 세상의 한 모퉁이를 쓸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하였다고 스스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하고 있는 일들,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을 미련 없이 접고 떠날 수 있을까?” “의미 있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감사의 고백을 하면서 떠날 수 있을까?” “사람들에게 준 상처들을 용서받고 마음의 평안을 누리며 떠날 수 있을까?” “나의 삶의 흔적을 바라봐 온 사람들은 과연 나에게서 무엇을 느낄까?”
1차부터 3차에 이르는 오랜 이민 역사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했으니 4차 이민 여행도 여전히 은혜가운데 주님께서 붙잡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며 나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 중이다. “주님, 부족한 저를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까지 변함없이 사랑하여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