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기독교감리회 전 감독회장)
우리 인간은 이 거친 세상에 태어나 온갖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그 어려움을 무릅쓰고 살아가는 용기와 의지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나는 목사로서 크고 작은 교회를 섬기는 동안 나 자신의 고난은 각오한 것이지만 교우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장장 43년이란 세월을 지냈다.
그러한 고난의 순례를 계속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종종 묻게 된다. 물론 직업이 목사이니까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이 당연지사일 것이다. 그러나 직업의식을 떠나서 인간적인 차원에서 볼 때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서 오는 보람이 그 힘의 원천이 아니었던가 싶다.
교회를 섬기는 동안 무수한 감동의 순간이 있었지만 근자에 경험한 바를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저는 은퇴 후에 교회와 관련된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 서울 종로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그 근방에 지난 10여 년간 거래하는 은행에는 보안을 담당하는 박 계장이란 분이 있다. 그는 나를 만날 때마다 밝은 미소와 한결같은 친절에 더하여 따뜻한 커피까지 대접하곤 하는 것이다.
어떤 때는 내가 극구 사양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성스럽게 친절을 베푸니 황송할 따름이다. 그리고 내가 업무를 마치고 나오면 반드시 문 앞까지 따라 나와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현대사회 특히 대도시는 황막한 사막 같아서 따뜻한 인간미를 기대하기란 엄두도 못 내는 곳이다. 그런데 박 계장은 주 업무가 보안인데 그는 사무적인 차원을 넘어 진심 어린 친절과 보너스까지 더해주니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난가을 초 차를 운전하다가 차선을 바꾸는 순간 나의 실수로 뒤 차와 작은 접촉사고를 낸 적이 있었다. 놀라고 상기된 나는 차를 길가에 세워놓고 내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므로 먼저 상대방 차주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나서 보험회사 담당자와 보험처리를 위해 잠시 통화하였다.
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상대방 차주는 보험처리보다는 약간의 수리비만을 요청하는 것 아닌가.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10만 원을 그에게 건네면서 비용이 더 필요하면 연락하라면서 일단 헤어졌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상대방 차주에게서 뜻밖에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그는 내가 목사인 줄 알았는지 모르겠으나 아주 정중한 억양으로 대하는 것이었다. 자기 차는 많이 상하지 않았으니 상한 곳에 페인트칠만 하면 되겠고 내 차에 사용할 자료도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약속대로 그 다음 날 페인트 재료를 보내면서 그것을 사고 남은 금액을 나에게 송금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극구 사양하였으나 그의 고집을 꺾을 재간이 없어 불가불 은행 구좌 번호를 알려주었다.
나는 이 일을 겪으면서 그의 정직과 친절에 잔잔한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날 ‘눈 감으면 코 베 가는 세상’이라는데 그렇게 선량한 사람이 있다니 살맛이 저절로 솟아나는 것 이었다.
나는 은퇴하고 나서 여생을 보람있게 보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바람직할까 기도하며 궁리하던 끝에 평소에 관심을 두었던 일 두 가지를 하기로 작정하였다. 하나는 비젼교회(작은교회) 목회자들을 돕는 일로써 이를 위해 뜻있는 목회자들과 규합하여 운동본부를 설립하고 비젼교회 목회자들을 위한 ‘신바람 목회자자 세미나’를 해마다 두 차례 진행하고 있다.
어느 해인가. 세미나를 마치고 돌아가는 도중에 내 핸드폰에 카톡이 왔기에 그것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감독님, 저는 목회가 너무 힘겨워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이번 세미나를 통해 큰 격려와 도전을 받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결심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 가운데 약60% 이상이 작은 교회인데 세미나를 통해 역경에 처해 있는 교역자들에게 격려와 재기의 용기를 줄 수 있다니 보람찬 일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하나는 비록 항간에 100세 시대란 말이 자자하나 목회자들 가운데는 4-50대에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많이 있다. 홀로 남은 사모들과 자녀들이 생계에 어려움도 없지 않으나 특히 자녀들의 교육문제가 그들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 이므로 매우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부족한 제가 장학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해마다 평균 1억 1천 내지 2천을 모금하여 봄과 가을 두 학기에 걸쳐 40여 명의 유가족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이 귀한 사업을 위해 여러 교회와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16년간 계속하고 있다. 미래의 큰 일꾼들이 될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으니 실로 큰 보람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현직에 있거나 은퇴했거나 관계없이 일상생활에서 보람을 찾지 못하므로 답답한 나날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 세상이 점점 거칠어 지고 인정이 사라져가니 살맛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이나 시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보람이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관계의 존재이므로 이웃과 동료 간의 순수한 친절과 배려를 나누는 넉넉한 마음과 실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보람이란 개인적인 차원에 그치지 아니하고 하늘의 뜻이 이 세상에 실현되는 영원한 가치이므로 더욱 값진 것이 아닌가 싶다.
[이 글은 계간 ‘성서와 문화’(발행인 이계준 목사) 금년 겨울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