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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12/16/25
‘찬불가’ 작곡가 나운영이 남긴 과제
문성모(한국찬송가개발원 원장, 전 서울장신대학교 총장)

 

나운영은 시 대를 잘못 타고 난 불행한 기인이었다. 그는 그림의 이중섭, 문학의 이상에 견줄 만한 음악 분야의 천재였지만,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유랑생활을 이어갔다. 중앙대, 서울대, 숙명여대, 덕성여대, 이화여대, 연세대, 세종대, 전남대, 목원대 등 수많은 대학을 떠돌며 후학을 길렀고, 교계에서는 그의 회개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아 ‘찬불가 작곡가’라는 주홍글씨를달고 살아야 했다 .


기인으로서의 성품은 인간관계에서도 오해와 손해를 불러왔다. 1966년, 나운영은 기독교에서 원불교로 개종한 황온순의 요청으로 찬불가 11곡을 작곡해 원불교에 넘겼고, 이는 1968년 『원불교 성가』에 수록되었다.


이 일로 인해 그는 ‘찬불가 작곡가’로 낙인을 찍혀 평생 기독교계에서 배척당했고, 1983년 『통일 찬송가』에서는 그의 곡들이 제외되거나 이니셜로 표기되었다. 다행히 2007년『21세기 찬송가』에는 <가시 면류관>과 <부활 승천하신 주께서> 두 곡이 수록되었지만, 여전히 일부에서는 그를 향한 비난이 남아 있다.


나운영은 두 차례 공식 석상에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용서를 구했 다 . 1 9 7 4 년 찬송가통일위원회 총회와 1990년 아시아 찬송가 국제 세미나에서 그는 눈물로 참회의 뜻을 전했다. 그는 말로 변명하기보다 하나님 앞에 서원하며 찬송가 1,000곡 이상을 작곡하겠다고 결심했고, 실제로 1,105곡을 작곡하며 그 약속을 지켰다.


이는 단순한 창작 활동을 넘어 신앙적 회개의 표현이자 헌신이었다. 2005년 예장 통합 총회에서는 서울교회 이종윤 목사의 주도로 그의 회개를 받아들이고 찬송가 수록을 결정했다. 이는 회개한 자에 대한 용서라는 복음의 정신을 실천한 것이며, 교회 음악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인정한 전환점이었다.



현행 찬송가에는 경건한 신앙인 뿐 아니라 과거에 죄를 지었거나 이단에 속했던 작가들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노예 상인이 회개하고 쓴 찬송시, 무신론자의 대중 가요를 패러디 한 곡 , 유니테리언이나 안식교 소속 작가의 곡, 민요나 흑인 영가 기반의 곡 등 다양한 배경의 작품들이 공존한다.

 

이런 기준이라면 나운영의 작품도 충분히 수용될 수 있다. 한국교회는 서양 작가들의 허물은 용납하면서 한국 작곡가의 과거는 끝까지 문제 삼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범죄하고 회개한 다윗의 시편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도, 찬불가를 작곡했다가 회개한 나운영은 여전히 죄인으로 본다. 우상 숭배를 하고도 회개한 흔적이 없는 솔로몬의 글은 인정하면서 눈물로 회개하고 찬송가 1 천곡을 작곡한 나운영의 작품은 인정하지 않는다. 서양 민요 기반 찬송가는 받아들이면서 한국 민요를 찬송가 멜로디로 수용하지 못하는 태도도 존재한다. 이는 극복해야 할 한국교회의 근본주의적 이중 논리다.


나운영은 경건한 신앙인이자 자유로운 예술가였다. 그는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불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구세군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고, 천주교에 입문하여 1944년 영세를 받았다. 그리고 1946년에는 장로교로 개종하여 한양교회와 성남 교회( 기 장 ) 의 성 가 대를 지휘하였다. 그리고 장로 임직을 받았다.



그는 1980년에 돌연 그 교회를 나와 운경교회를 창립하였고 나중에 호산나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이 교회의 장로로 지내다가 1993년 71세의 나이로 소천 하였다. 그의 신앙 행로는 이렇게 자유분방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누구보다도 경건한 신앙인으로 살았다 . 나운영의 가족들에 따르면, 그는 천주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한 이후 눈을 감을 때까지 주일 낮 예배, 수요예배, 새벽기도까지 예배를 거른 적이 없었고, 성가대를 통해, 또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한순간도 하나님 찬양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며, 항상 자기 전에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속죄의 기도를 드리는 정말 착실한 신자였다고 한다.


왜 원불교는 기독교의 작곡가들에게 그들이 부를 성가를 작곡해달라고 요청했을까? 기독교라면 어느 분야에 사람이 궁색할 때 타종교 사람에게 요청할 자신이 있을까? 아마도 기독교는 안 하고 말지 절대로 불교 사람들의 곡을 찬송가에 싣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불교는 기독교의 부흥회, 설교, 찬송가 등을 모방하여 포교에 활용했고, 천주교도 개신교의 설교 형식을 받아들이고 있다. 원불교는 기독교 작곡가의 곡을 성가로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다. 그러나 기독교는 여전히 타종교와의 문화 교류를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한국교회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나운영의 찬불가 작곡을 옹호하거나 정당화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복음의 경건성을 유지하면서 문화적 소통에 자유로움을 누리는 것은 한국교회 예배와 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실제로 한국의 기독교는 초기부터 다른 종교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이면서 성장하였다.

 

길선주 목사가 시작한 새벽기도회의 풍습도 토속 종교의 문화요, ‘엘로힘’이라는 단어를 토속 종교의 신의 명칭인 하늘님에서 차용하여 ‘하나님’으로 번역한 것도 그렇다. 그 밖에도 예배, 묵도, 기도, 헌금, 축복, 천당, 지옥 등 대부분의 예배 용어가 모두 타종교의 것을 빌려와 함께 쓰고 있는 문화적 교류의 산물이다.


예배와 음악의 한국화 문제도 여기에 속한다. 불교나 유교, 그리고 천주교의 문화 중 좋은 점은 기독교가 배우고 활용할 수만 있다면 목회나 선교에도 큰 유익이 있을 것이고, 민족 복음화도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사출처=성서와 문화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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