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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1/20/26
노인과 운전
이계준(원로목사, 연세대 명예교수)

 

나는 90세가 넘었으나 지금도 차를 운전한다. 뿐만 아니라 즐기며 위험천만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파이롯이 활주로를 달리다 비상하는 기분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차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맛은 그렇게 유쾌하고 상쾌할 수 없다. 운전은 모든 스트레스를 힐링하고 이동의 자유까지 만끽하니 말이다. 나의 자유 분망한 탓도 있겠으나 평생 자유를 살기 위해 몸부림한 인생이니 운전은 곧 나의 대명사라고 해도 좋다.

 

나의 운전 경력은 1960년 부평 미군사령부(Ascom Area Command) 카투사부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유학 시절과 한국의 자가용 붐이 일기 전 기간을 빼면 운전 경력은 장장 50년을 훨씬 넘으니 이 정도면 고수에 속할 것이다. 지금까지 운전한 거리는 아마 백만 키로미터 이상일 것이고 자동차 수도 미국서 타던 올스모빌과 폭스바겐을 비롯하여 지금 타는 아반떼까지 합하면 열 대는 되는 것 같다.

 

운전 시작은 그야말로 우연한 것이었다. 가투사 근무 시절, 어느 날 용무차 서울에 다녀가는 길에 운전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운전 경험이 없는 나는 운전병에게 “내게 운전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하였으니 황당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경인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이라 국도가 유일하였고 차량 통행도 별로 없는 데다 저녁때라 한산하였다. 여하간 오류동에서 부평 부대까지 무사히 안착하였고 운전이 숙달되자 운전병 없이 홀로 서울을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1960년도 미국 유학 중에는 공부에 코가 석 자나 빠져 기숙사와 교실만 왕래하였고 가난뱅이가 장학금과 알바로 생존하는 신세이고 보니 차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금수저들은 주말이면 여친을 싣고 데이트를 즐기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복통 날 지경이었으나 주말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숙제를 마무리해야 하는 처량한 신세니 자동차는 있어도 무용지물이었으리라. 공부를 마치고 미국 중부 연합감리교회에서 목회할 때 중고 폭스바겐을 구입하여 군대에서 배운 운전실력을 과시하며 신혼여행으로 시카고, 보스턴, 뉴욕, 와싱턴 D.C, 등 3.000마일을 달리면서 쌓인 한을 풀었다. 중고를 800불에 사서 2년 쓰고 500불에 팔았으니 괜찮은 장사였다.

 

1960년대 말 미국서 귀국하니 자동차 산업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 현대차 포니가 있었으나 대학교수의 쥐꼬리만 한 급여로는 호구지책도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자가용은 엄두도 못 냈다. 미국서 호사하다 버스로 출퇴근하면서 지나가는 자가용을 볼 때마다 신세타령이 저절로 나왔다. 1970년대 초에 대학의 교무위원이 되고 나니 출근용 승용차가 배당되어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사실로 다가왔다.

 

90이 넘어 운전하는 것이 결코 자랑거리일 수 없다. 노인의 사고율이 높고 자타의 희생을 불러오니 말이다. 어떤 친구는 아들이 차 키를 가져가는가 하면 또 어떤 친구는 아들이 차를 팔아버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80세 전후에 나에게도 위기가 다가오기에 가족에게 폭탄선언을 날렸다. “집에 칩거하다 죽느니 운전하다 죽겠다”고. 간혹 범칙금도 내고 경미한 접촉사고도 나지만 자유의 대가치고는 그리 값비싼 것도 아니다.

 

수년 전부터 노인 운전을 기죽이는 기상천외한 풍조가 일어났다. 노인들은 ‘사고뭉치’라는 매스컴의 잦은 보도와 면허증을 반납하면 껌 값 준다는 등 21세기판 고려장으로 난리도 저리 가라다. 운전은 나이와 관계없이 건강과 직결된 것인데 노인의 자유와 행복을 박탈하려고 하니 인권침해가 아닐 수 없다. 노인 운전을 기죽이는 대신 노년의 기쁨을 증진하는 긍정적인 발상의 전환은 불가능한 것일까?

 

자동차 회사는 노인이 운전하기 편한 자동차를 개발하고 정부는 노인의 주차시설을 마련하면 좋겠다. 미안하지만 어디를 가나 장애인 주차시설은 널려 있는데 노인을 위한 것은 돋보기 끼고도 볼 수 없다. 노인의 운전을 만류하려면 지하철 이외의 모든 교통수단에도 경로우대를 고려하면 좋지 않겠나! 젊은이들에게는 금전과 아파트로 결혼과 출산을 유혹하면서 오늘의 사회발전을 이룩한 세대를 소외시켜도 되는 건가! 역사를 망각하는 사회의 발전이 지속 가능할까!

 

근자에 친구로부터 고무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100세의 장로님이 교회에 운전하고 오신다는 것이다. 놀랠루야! 이제 나는 건강이 유지되는 한 운전할 구실과 용기를 얻었다. 운전을 즐기며 볼거리와 먹을거리 및 친구들과 만남을 위해 신바람 나는 나날을 보낼 것이다. 바라기는, 한평생 가정과 사회를 위해 뼈 빠지게 수고하고 만년의 향연을 추구하는 노인의 운전을 위해 성원을 아끼지 말았으면 한다. 그것이 명실상부한 복지사회로 한 걸음 다가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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