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희수(UMC 오하이오 감독구 감독)
최근 미네소타에서 두 사람이 비극적으로 생명을 잃은 사건을 목도하며, 저는 무거운 마음으로 기도 가운데 이 글을 씁니다.
이 죽음들은 결코 고립된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무차별적인 이민 단속이 도덕적·영적 경계를 넘어 확산되고 있는 더 넓은 흐름의 일부입니다. 어떠한 이유도 인간의 생명에 가해지는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저 역시 이민자로 살아오며, 불확실성과 취약함, 그리고 낙인이 일부가 된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늘 몸으로 체감해 왔습니다. 다시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서류미비자(undocumented)” 는 형사 범죄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일터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이며, 가정을 지키는 부모이고,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경제 구조의 압박과 정치적 폭력, 더불어 가족의 생존이라는 절박한 현실이 그들로 하여금 조국을 떠나 국경을 넘을 수밖에 없게 만든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의 가정과 산업, 나아가 이 사회 전체가 그들의 노동과 삶에 깊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의와 자비를 반영하는 포괄적인 이민 개혁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나그네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레위기 19:33–34).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위기는 단지 법적·정치적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도덕적이며 영적인 위기입니다.
미국은 지금 그 영혼의 차원에서 시험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배제로 형성된 나라가 될 것입니까, 아니면 환대와 정의에 뿌리내린 사회가 될 것입니까?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쫓겨난 이들, 취약한 이들, 환영받지 못하는 이들과 함께하시는 분이심을 상기시켜 줍니다.
예수님 자신도 난민이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족이 폭력 앞에서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어야 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마태복음 2:13–15).
그리고 우리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마태복음 25:35, 공동번역 개정판 ).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 우리 교회는 결코 침묵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신앙인들과 교회는 다시금 참된 인간 공동체를 세우는 백성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이 보호받고, 낯선 이가 이웃으로 받아들여지며, 사랑이 두려움보다 더 강한 공동체를 세우라는 부르심입니다.
법은 중요합니다. 정책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먼저, 환대의 영(spirit of hospitality)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내며, 우리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를 빚어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정의의 얼굴과 자비의 손을 지닌 성소공동체(communities of sanctuary)가 될 것을 다짐하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생명을 잃은 이들의 이름과 얼굴,
그리고 지금 슬픔 가운데 있는 가족들을
주님의 치유의 빛 가운데 올려드립니다.
우리의 교회들이 환대의 장소가 되어
낯선 이를 보잘것없다고 하찮게 여김받는 존재가 되지 않게 하시고,
상처 입은 이들이 안전을 누리게 하소서.
정의가 우리 거리에 풍성하게 흐르게 하시고,
자비가 이 나라의 언어가 되게 하소서.
공포의 권세를 꺾으시고,
우리 모두를 이웃으로 만드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 땅의 영혼을 회복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