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계준(감리교 원로목사, 연세대 명예교수)
어떤 목사가 은퇴 후 이런 말을 했다. “할 일도 없고 전화도 없고 갈 교회도 없고 주일마다 채워지던 냉장고는 비어 있고 ...” 또, 대학원장을 지낸 은퇴 교수는 “은퇴 전에는 점심, 저녁 하자는 이들이 줄을 섰는데 은퇴하니 전화 한 통 없네요”라고.
이것이 은퇴의 실상이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눈코 뜰 사이 없이 할 일, 갈 곳, 찾는 사람이 쌓이고 싸였었는데 은퇴하니 완전히 반대로 뒤집힌다. 절해고도라고 할까, 아니면 붐비는 도시에서 산간벽지로 간 귀양살이 같다고 할까! 하루나 이틀은 견딜지 모르나 그 이상 버텨낼 장사는 없을 것이다.
은퇴한 늙은이는 생존을 위해 발상의 전환과 혁신적 전략이 필수적이다. 여생을 보람차게 살려면. 그렇지 않으면 고관대작이건 저명인사이건 골동품이 순식간에 폐품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당할 것이다. 지금까지 축적한 생각, 경험, 능력, 관계 등을 거의 백지화하고 새 판을 짜야 한다.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카톡에 늙은이의 생존전략이 날마다 산더미처럼 쌓이나 개인차가 천태만상이라 참고할 뿐이다. 각자 나름대로 일상을 꾸미는 수밖에 없다. 은퇴 후의 일상은 출퇴근 빼고는 여전과 다름없어 보인다. 그러나 은퇴 전이 타율적이라면 은퇴 후는 자율적인 것으로 하늘과 땅 차이다.
전자는 습관화와 자동화로 신경이 덜 쓰이나 후자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하니 기력이 쇠잔한 늙은이에게는 낙낙한 일이 아니다. 그중 가장 힘겨운 것이 교제 곧 인간관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대인 관계없이 살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창조주는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 안쓰러워 하와를 짝지어 주셨다. 사람을 한 자로 人間 곧 사람 人 자와 사이 間 자를 쓴다. 철학자 M. 부버도 <Between Man and Man>란 명저에서 인간을 관계적 존재로 못 박았다. 평생 고독을 즐기는 철학자도 청중과 교감 없이 생존은 불가능하니 말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친구를 좋아해 학교와 취침 시간을 빼면 친구들과 노는데 미친 셈이다. 국내외 학창 시절에는 학업과 알바에 쫓기느라 인간관계가 뜸하였으나 그래도 학교와 교회에서 만난 몇몇 친구들과 한평생 절친하게 지냈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갈등과 괴리도 생기고 언쟁과 주먹다짐도 일삼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심약해서 논쟁은 물론 막장에 이른 적이 없다. ‘아더메치’(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다)라고 판단되면 절연한 적은 있다.
한번은 친구 교수가 “이 목사는 교인과 싸운 적이 없었다는데 비결이 무엇이야?”하고 묻기에 “자네는 학자여서 따지니까 그렇고 나는 성자니까 관용해서 그렇지”라고 답했다.
나의 대인관계는 두 어른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다. 목사이자 교육가인 선친은 목회와 맹아학교를 운영하셨는데 인간관계의 폭이 넓으셨다. 교계와 교육계 뿐 아니라 조만식 선생의 조선민주당 창당 위원이었고 그때로서는 희귀한 가톨릭 신부와도 교분을 나누셨다.
또 한 분은 나의 스승 박대선 박사이시다. 스승님은 목사, 학자, 대학 총장 등을 역임하신 명사로 교회와 사회에서 인간관계의 폭은 물론이고 개인적으로 매우 친밀하셨다. 사람을 평할 때는 언제나 긍정적인 면만을 앞세우시고 누구나 인격적으로 대하셨다. 더욱이 지인의 경사에 축하 전화는 물론 대접까지 하시는 자상한 어른으로 만인의 존경을 받으셨다.
구십 고개를 넘으니 스승님, 선배는 물론 친구들까지 모두 유명을 달리했다. 신학교 동기생 사십 명 중 살아서 움직이는 인간은 둘 뿐이다. 지난해 5월 Y 대학의 은퇴 교수 오찬회에 가보니 선배 두 분이 유고 결석이었고 약 삼사 백 명 참석자들 가운데 소인이 최고령자가 되는 영예(?)를 안은 것이다. 이 엄청난 사건을 대하니 외롭다고 할까, 허전하다고 할까, 여하간 묘한 감정을 혼자 씹었다.
대머리 신사가 모자 벗은 것처럼, 위가 없어 허전하였던 것 일까! 나는 두 번 은퇴한 행운아다. 대학에서 은퇴하고 나서 개척한 교회에서 설교 목사와 담임자로 17년 동안 섬긴 것이다. 전공이 선교학이라 새로운 유형의 교회를 갈망하는 교우들과 함께 21세기형 신앙 공동체를 지향하며 성도의 교제를 만끽했다.
가장 특이한 것은 공동식사가 곧 성만찬과 친교로 돌변한 것이다. 교회마저 은퇴하면 완전 고립무원이리라 예상했는데 뜻밖의 호박이 굴러왔다. 저널리즘 무지렁이가 계간지 <성서와 문화>의 편집 및 간행을 맡은 것이다. 지난 10년간 국내외에 1.000여 부를 우송하고 이메일을 전송하면서 필자 및 독자들과 직간접의 교제를 즐겼다. “이게 웬 떡이지?” 미세한 음성: “야, 멍청이, 그것도 몰라. 하늘의 떡이야!”
자족하면서도 만남의 욕망은 끝을 모른다. 선배와 동기들이 나를 남기고 갔으니 후배들과 향연을 즐기려는 심상(心狀)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그리 낙낙한 작업일 수 없다. 만나자고 하면 부담을 느낄 것이고 혹 구걸한다는 오해로 체면을 구길 수 있으니. 고민하다 노크할만한 친구에게 부부 동반을 제안했다. 응해주는 걸 보니 내가 평소에 떫은 인간은 아니었나 보다. 오찬과 담소를 나누며 옛말이나 사례를 들으면 기억은 희미하나 정을 나누고 관계를 돈독히 하는 마중물이 되는 것 같다. 만남이 더할수록 마음이 흐뭇하고 삶이 풍성해지니, 교제를 구상하고 주선하는 거액(?)의 투자가 아까울 리 만무하다.
지난해 봄부터는 온라인 교제를 시작했는데 무엇보다 돈이 들지 않아 좋다. 매일 아침 카톡으로 약 200명에게 성경 구절을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K 교수가 생성형 AI Coplexity(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의 성경해석을 요약하여 첨부하는 수고를 해주는지라 독자들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를 통해 친구들을 기억하고 함께 묵상하며 시공을 뚫고 영적 소통을 도모함은 물론 치매 방지까지 1석 4조의 효험을 걷으니 놀랠루야, 말씀의 위력을 찬탄해 마지않는다.
기술 문명의 발달로 인간이 기계화되는 살풍경한 세태에 차가운 전자 매체가 늙은이의 마음을 따뜻한 생명수로 촉촉이 적셔주니 과학과 종교가 한통속이 된 모양새다. 과욕이라도 좋으니 늙은이의 생존전략이 백수까지 이어졌으면 얼마나 좋으랴! 세 번째 은퇴 곧 인생을 은퇴할 때는 교제를 위해 염려할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하느님 나라(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에 먼저 가신 스승님, 선배님, 친구들 그리고 우리 부모 형제들까지 날라리(스승 한승호 목사님이 나를 그렇게 불렀음)가 드디어 온다면서 대연회를 차리고 학수고대할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