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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3/09/26
마틴 루터와 교회음악의 대중화
이경호(미주 양곡교회 음악목사)

 

흔히 마틴 루터(Martin Luther)하면 ‘종교개혁신학자’로만 이해를 합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가 남겨놓은 교회음악가로서 업적은 종종 간과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는 실로 ‘개신교 회중찬송의 창시자’였다고 할 만큼 위대한 ‘교회 음악가’였습니다.

 

마틴 루터가 그의 친구 요한 발터 (Johann Walter)에게 “내가 신학자가 아니라면 음악가가 되고 싶다!” 라고 쓴 편지를 보낸 것만 보더라도 음악에 대한 그의 사랑과 관심이 그의 신학 못지 않게 지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루터가 이해한 교회음악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둘째는 기독교인들의 경건성 회복과 복음 전파였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회음악의 대중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미 일반 평신도들에게 잘 알려진 익숙한 곡조(melody)와 친근한 음악형태(style)을 응용하여 ‘교회음악의 대중화’를 시도하였습니다.

 

루터가 이해하고 있는 ‘교회음악의 대중화’란 16세기 당시 타락한 교황 권력의 전유물이었던 찬양을 일반 대중들과 평신도들에게 되돌려준다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16세기 카톨릭 교회의 음악전통을 완전히 뒤집는 일이었지요.  왜냐하면, 그 당시 예배음악이란 일부 성직자들이나 소수 종교 특권자들에게만 허락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마틴 루터는 찬양함에 있어 가사(歌詞)는 카톨릭 교회에서 사용해오던 기존의 어려운 라틴어를 가사를 쓰지 않고 모국어(母國語)인 독일어를 사용하였고, 음악형태에 있어서는 모든 평신도들이 쉽게 이해하고 따라 부를 수 있는 대중음악과 민요형식을 택하였던 것입니다. 또 찬양방법에 있어서는 예배시간에 회중들이 다함께 찬양하는 ‘회중찬송’의 방법을 채택하였습니다.

 

결국 이러한 루터의 음악적 노력은 그에게 또 다른 별명(nickname)을 얻게 하였는데 바로  ‘개신교 회중찬송의 창시자’란 별명이었습니다. 루터가 이러한 음악적 개혁을 시도할 수 있었던 신학적 배경에는  만인제사장설(priesthood of all believers) 과 ‘아디아포라(adiapora)’라는 독특한 신학개념에 대한 이해 때문이었습니다.

 

만인이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면 찬양 또한 어느 특정한 종교특권층만을 위한 것이 아닌 만인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만인제사장설에 이은 만인찬양자설까지 소급된 것입니다. 특별히 ‘아디아포라’라는 신학용어는 ‘기독교인이 성서에서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그 문제를 그 개인이나 공동체의 문화적 양심과 상황적 특성에 근거하여 해결을 시도한다’는 뜻이 담긴 신학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지 않아서, 나름대로의 융통성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도록 남겨진 신학적 영역을 ‘아디아포라’라고 말합니다.  루터는 이 아디아포라의 원리가 교리적인 문제에서 만이 아니라 교회음악의 문제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루터는 성경이 명백하게 금하지 않는 범위에 있어서 다양한 음악스타일과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스스로 곡(曲)과 가사를 만들어 불렀고, 그의 후예들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물론 이것은 쯔빙글리나 칼빈과 같은 16세기 동시대 종교개혁자들의 교회음악적 이해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습니다. 쯔빙글리는 종교개혁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형식에 치우친 카톨릭의 예배음악을 완전히 교회에서 철폐시켰으며, 칼빈의 경우 쯔빙글리 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시편가’를 제작한 것 이외에 특별히 교회음악적 업적을 남긴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달랐습니다.  결국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음악을 종교개혁의  한 일부분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이것은 16세기 종교개혁자가운데 는 마틴 루터가 유일했습니다.

 

그렇다면 16세기에 남겨놓은 마틴 루터의 이러한 음악활동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떠한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두 말 할 것 없이, 16세기 마틴 루터가 음악을 통하여 보여준 파격적 노력과 시도는 오늘날 여러 CCM 사역자들이 추구하고 있는 그것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갈보리 교회의 척 스미스 (Chuck Smith)목사는 1960-70년 사이 교회에 염증을 느끼고 신앙을 잃어가는 미국의 젊은이들을 위해 새로운 복음의 접촉점을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음악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에 특별히 위배(violate)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을 도입한 찬양을 예배시간에 불렀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예수운동’(Jesus Movement)로 이어졌으며 결국 현대 CCM사역에 대한 좋은 역사적 본보기로 남게 되었습니다. CCM 역사에 있어 중요한 인물인 척 스미스 목사의 음악신학이 16세기 마틴 루터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마틴 루터가 16세기 예배음악의 개혁자라면, 척 스미스 목사는 20세기 예배음악의 개혁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목회자였으며 동시에 두 사람 다 특별히 성경에 위배 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다양한 예배음악을 시도한 것입니다.  


16세기 마틴 루터의 음악신학이 20세기 척 스미스 목사의 그것과 동일하고, 20세기 척 스미스 목사의 기독교음악정신이 21세기를 달리고 있는 오늘날 CCM 사역자들의 그것과 동일하다면, 결과적으로 우리는 “마틴 루터도 CCM 사역자였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결론적으로 우리가 “마틴 루터도 CCM 사역자였는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찾는다면, 그 대답의 결과는 긍정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혹시 이 질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할지라도 한가지는 분명히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마틴 루터는 우리가 오늘날 CCM을 사용함에 있어 어느 정도의 역사적 선례(a historical example)와 신학적 원리(a theological principle)를 제공해 주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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