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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3/17/26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권혁인(산타클라라 연합감리교회 목사)

 

슬픔은 늘 조용히 찾아옵니다.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예고도 없이 마음 안으로 들어옵니다. 어떤 슬픔은 말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유를 묻지만, 슬픔은 이유로 풀리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곁에 가만히 머물 뿐입니다.

 

우리는 슬퍼하는 사람 앞에서 종종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립니다. 위로의 말을 찾다가 결국 익숙한 문장 몇 개를 건네고 돌아섭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사람을 붙드는 것은 말의 정교함이 아니라, 곁에 있어 주는 마음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영성가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절망과 혼란, 고통의 순간에 우리와 함께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친구, 상처와 슬픔의 시간을 참을성 있게 견뎌 줄 수 있는 친구, 치유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우리 곁에 머물러 줄 수 있는 친구— 바로 그런 친구가 진정 우리를 돌보는 사람이다."

 

슬픔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슬픔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때로 거창한 설명이 아니라, 한 사람의 곁을 조용히 지켜주는 일로 나타납니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슬픔에 빠진 이를 바라보며, 우리는 종종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기도도 조심스럽고, 말도 쉽게 꺼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한지도 모릅니다. 함께 앉아 있는 것, 함께 침묵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가장 인간적인 돌봄의 방식일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말씀을 길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짧게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더라." 그분은 슬픔 앞에서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함께 우셨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슬픔 앞에서 말을 잃을 때, 그 침묵이 오히려 가장 진실한 언어가 되는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슬픔을 나누는 일은 위로의 기술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 머무르는 용기입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슬픔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슬픔이 쉽게 걷히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큰 말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드릴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압니다. 그럼에도 곁에 머물러 있으려 합니다. 그저, 조용히.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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