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용(하와이 아이에아 은혜교회 목사)
어떤 젊은 목사님이 안수를 받고 처음으로 결혼식 주례를 맡게 되었습니다. 경험이 없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경험 많은 선배 목사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신랑 신부에게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하냐고. 그러자 선배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다 좋은 거니까, 성경을 딱 펴서 보이는 말씀을 그대로 전하면 됩니다. 다만 구약 말고 신약을 피세요.” 드디어 결혼식 날, 젊은 목사님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신약 성경을 탁 폈습니다. 눈에 들어온 말씀은 누가복음 23장 34절이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물론 우스개 소리지만, 뼈가 있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신랑 신부가 결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결혼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정말 멋도 모르고 결혼하고, 멋도 모르고 아이를 낳고, 그래서 아이가 아이를 키우지 않았습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남편 노릇, 아내 노릇, 부모 노릇을 했습니다. 그러니 가정생활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매일 실수하고, 매일 넘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존재했던 단체는 무엇이었을까요? 국가도 아니고, 학교도 아니고, 교회도 아닙니다. 바로 ‘가정’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가정이었습니다. 이 가정은 인간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두 사람을 중매하시고, 가정을 이루어 함께 살도록 하셨습니다. 가정은 인간의 설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설계였습니다. 가정은 인간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가정의 설립자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우신 이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부부 사이가, 그리고 자녀 사이가 갈라졌습니다. 원인은 죄(罪) 때문이었습니다. 죄가 가정에 들어오니까 가정에 금이 가고, 가정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죄를 짓기 전에는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얼마나 행복했냐 하면, 남편 아담이 아내 하와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로다.” 요즘 드라마 대사로 바꾸면 “내 속에 너 있다!” 아주 닭살 돋는 멘트였습니다. 그런데 죄를 지은 뒤에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저 여자 때문입니다. 저 여자가 저를 유혹해서 선악과를 먹게 했습니다.” 자기 아내를 하나님께 고발한 것입니다. 죄가 부부 사이를 완전히 갈라놓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 사이도 갈라놓았습니다. 큰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가정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무너진 가정을 다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힐까요? 가정을 파괴한 원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 원인은 죄였습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꼭 살인을 하고 도둑질을 해야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그것이 죄입니다. 기준은 세상의 풍습이 아닙니다. 세상의 풍습은 지역에 따라 변하고,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말씀이 기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네 가지 기준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부모에게, 자녀에게 각각 주셨습니다. 이 네 가지 말씀을 잘 지킬 때 우리 가정은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지키면, 말씀이 우리를 지켜 줍니다.
첫째, 남편에게 주신 말씀 — 아내를 사랑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 5:25). 이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방식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싫어하는 남편은 없습니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남편도 거의 없습니다. 사랑하니까 결혼을 했지, 사랑하지 않으면서 결혼을 했겠습니까.
그런데 아내들은 왜 남편의 사랑에 만족을 못 할까요? 성경은 왜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할까요? 그 이유는, 남편이 아내를 제대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까 유머에서 지적한 대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긴 하는데, 자기 마음대로, 자기 방식대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빨간색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자기가 좋아하는 파란 옷을 사 줍니다. 짜장면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짬뽕만 사 줍니다. 내 방식대로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성경은 내 방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방식대로 하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의 방식은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롬 5:8).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선하고 거룩해서 대신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허물이 많고 죄가 많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아내에게 문제가 많고 허물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자기를 내어주는 것, 이것이 성경이 요구하는 사랑의 방식입니다.
또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언약(Covenant)이었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을 100으로 볼 때, 감정은 30이요, 의지가 70이라 할 수 있습니다. 30퍼센트의 감정은 곧 사라집니다. 불만 붙여 놓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후에는 70퍼센트 의지의 힘으로 사랑을 유지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사랑의 감정은 3개월에서 길어야 3년 정도 지속된다고 합니다. 그 기간에는 눈에 콩깍지가 씌여서 다 좋아 보이고, 코고는 소리도 사랑스럽고, 발 냄새도 향기롭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그 감정은 곧 사라집니다. 감정이 사라지면 사랑도 끝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식에서 목사가 신랑 신부에게 묻습니다. “즐거우나 괴로우나, 가난할 때나 부할 때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어떤 환경에서라도 오늘의 이 서약을 지키기로 굳게 다짐합니까?” 이 질문은 감정을 묻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묻는 것입니다. 감정은 변할 수 있습니다. 변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감정이 아니라 약속입니다. 성실한 의지로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성실한 의지는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엡 5:23). 머리라 하니까 이 말씀을 근거로 아내를 지배하고 억압하는 남편이 있는데,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인데, 예수님은 교회를 결코 억압하지 않으셨습니다. 머리가 하는 일은 억압이 아니라 보호이고, 기도입니다. 겨울에 손이 시릴 때 장갑을 끼워 주는 일, 발바닥에 가시가 박혔을 때 빼 주는 일을 머리가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머리의 사명입니다.
둘째, 아내에게 주신 말씀 — 남편에게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 5:22). 하나님은 왜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셨을까요? 남녀가 평등한데, 왜 복종하라고 하셨을까요?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남녀노소, 부자와 가난한 사람, 인종을 절대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에게 복종하라 하셨을 때는,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마치 교통 법규와 같습니다. 남편 자동차와 아내 자동차가 정면에서 달려올 때, 그냥 두면 정면충돌, 대형사고가 발생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고를 피하기 위해 직진 차량, 즉 남편 자동차에 우선권을 주라는 것입니다. 아내 자동차가 양보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옳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를 피하기 위해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이러한 원칙을 정해 주신 것입니다. 남편이 위대하고 아내가 열등해서 복종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고 방지를 위해서, 가정의 평화를 위해 양보하는 것입니다. 양보하는 사람이 사실은 더욱 성숙한 사람입니다.
남편이 머리라면 아내는 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리와 심장, 둘 중에 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똑같이 중요합니다. 다만 기능이 다를 뿐입니다. 머리가 심장을 질투할 필요 없고, 심장이 머리를 질투할 필요 없습니다. 각자 자기 역할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모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모님은 남편 목사님이 결정하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일단 순종하고 즉시 기도를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제 생각에는 남편의 결정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남편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변화시킬 수 있으시니, 남편의 생각을 바꾸어 주세요.” 남편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순종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셋째, 부모에게 주신 말씀 — 말씀으로 양육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신 6:7).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부지런히! 모든 부모가 가지고 있는 한 가지 질문은 “어떻게 해야 자식을 바르게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부모들이 모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식 문제를 놓고 토론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토론을 해도 사실 정답이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해결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정답을 찾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성경으로 돌아가십시오.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치십시오”(신 6:6–7).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부모의 의무입니다. 교회에 맡기지 마십시오. 교회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 배우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딛 2:7). 자녀들은 부모의 입이 아니라 부모의 등을 보고 배웁니다. 말로만 가르치면 아이들이 어려서는 듣는 척합니다. 엄마 아빠가 무서우니까요. 그러나 머리가 좀 커지면 듣지 않습니다. 반항합니다. “자기는 안 하면서 왜 나만 가지고 그래?”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한 가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여인이 햄을 후라이팬에 구울 때마다 꼭 양쪽 끝을 잘라 냈습니다. 남편이 보기에 너무 아까워서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아내의 대답은 “우리 엄마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장모님을 만나서 물어보니 장모님도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우리 엄마가 그렇게 했으니까요.” 사위가 양로원에 계신 할머니를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할머니가 연세가 많아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는데, 간신히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때 우리 집 후라이팬이 너무 작아서 그랬지.” 후라이팬이 작아서 햄 양쪽 끝을 잘라 냈는데, 그것도 모르고 무슨 비법인 줄 알고 대대로 따라 한 것입니다. 보고 배우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성경 읽는 모습, 기도하는 모습, 봉사하는 모습, 사랑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 주십시오. 보여 주면 따라오게 됩니다.
넷째, 자녀에게 주신 말씀 — 부모를 공경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부모 공경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허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물 많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 공경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결정하신 것입니다. 부모가 잘나서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의로워서 공경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부모이기 때문에 무조건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복을 받는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이 네 가지 말씀을 다시 새깁니다.
남편은 아내를 예수님의 방식으로 사랑하십시오. 내 방식대로가 아니라, 아내에게 허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신 죽는 마음으로 사랑하십시오. 감정으로만 하지 말고 성실한 의지로 사랑의 약속을 지키십시오.
아내는 남편을 복종함으로 사랑하십시오. 아내가 부족해서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양보하는 것입니다. 양보하는 사람이 사실은 더욱 성숙한 사람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하십시오. 내 경험과 내 이론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하십시오. 그리고 말로만 하지 말고 부모가 먼저 말씀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보여 주면 따라오게 됩니다.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가정 매뉴얼입니다. 내 생각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매뉴얼대로 하십시오. 우리가 말씀을 지키면, 말씀이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