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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5/31/26
‘사이렌’의 미소와 자유시장의 숨결

 

난 죽으나 사나 ‘아메리카노’다. 그것도 뜨거운 것으로. 매일 아침 내가 직접 내려 마시는 커피를 두고 하는 말이다. 딸은 새벽 운동을 다녀오면서 가끔 내 몫까지 커피를 사 들고 들어온다. 스타벅스다. 딸에게 커피는 죽으나 사나 스타벅스다. 그 바람에 나도 조금씩 스타벅스의 달콤한 맛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내게는 가성비 좋은 홈메이드 아메리카노나 맥도날드의 ‘맥카페’가 최고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는 그 스타벅스를 둘러싸고 적잖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기업 하나가 정치적 논쟁의 한가운데 서게 된 것이다.


스타벅스는 전 세계 약 4만 개 매장을 운영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커피 체인이다. 80여 개국이 넘는 나라에 진출해 있으며, 그 시작은 1971년 미국 시애틀의 작은 커피 원두 가게였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해와 같은 해에 태어난 셈이니 새삼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오늘날의 스타벅스를 만든 인물은 하워드 슐츠다.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카페 문화에서 영감을 얻어 커피숍을 단순히 ‘커피를 파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머무르고 대화하는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른바 ‘제3의 공간(Third Place)’이다. 집도 아니고 직장도 아닌, 그러나 누구나 편안히 머물 수 있는 공간. 스타벅스는 그런 개념을 세계적인 문화로 만들어냈다.

 

‘스타벅스’라는 이름도 흥미롭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등장하는 포경선 피쿼드호의 일등 항해사 스타벅(Starbuck)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름 자체에 이미 바다와 항해, 모험의 이미지가 담겨 있는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유명한 것은 로고다. 많은 사람들이 인어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이렌(Siren)’이다. 선원들을 노랫소리로 유혹하던 신화 속 존재다. 슐츠가 회장으로 들어서면서 두 갈래 꼬리를 가진 사이렌은 단순화되었고, 초록색 얼굴을 크게 확대한 지금의 로고로 자리 잡았다. 얼핏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의 미소를 연상케 한다. 이제 사람들은 ‘Starbucks’라는 글자를 읽지 않아도 그 초록색 사이렌의 미소만 보면 곧바로 브랜드를 알아본다.


그렇게 스타벅스는 단순한 커피 회사를 넘어 세계화의 얼굴이 되었고, 현대 도시인의 쉼터가 되었다. 그리고 자본주의 시대를 상징하는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된 것이다.

 

10여 년 전 체코 프라하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나는 종교개혁 발상지를 둘러보는 여행단을 인솔하고 있었다. 구시가지 광장에는 종교개혁자 얀 후스의 동상이 서 있고, 그 도시의 유명한 천문시계탑 주변은 언제나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30여 명의 여행객들에게 몇 시간의 자유시간을 드린 뒤, 나는 광장 건너편에 보이는 스타벅스를 약속 장소로 정했다. 피곤했던 몇몇 분들은 일찍 돌아와 구석자리에 앉아 잠시 눈을 붙였다. 적지 않은 테이블을 차지하고 어떤 분들은 서너 시간 넘게 머물기도 했다. 그런데도 직원들은 눈치를 주거나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것이 스타벅스가 말하는 제3의 공간이구나.”


그곳은 단순한 커피 판매점이 아니라 쉼터였다. 적어도 그날 내가 경험한 스타벅스는 사람들의 자유롭게 머물러 있음을 존중하는 공간이었다.


물론 스타벅스도 비판받을 수 있다. 어느 기업도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기업에 대한 비판과 정치적 공격은 구별되어야 한다.


이라크 전쟁 당시 프랑스가 미국의 전쟁 정책을 비판하자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는 ‘French Fries’를 ‘Freedom Fries’로 바꿔 부르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정치적 감정이 소비를 움직이려 한 사례였다. 최근에는 디즈니 같은 거대 기업도 정치적 입장을 이유로 보수와 진보 양쪽의 압박을 받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시장을 정치적으로 통제하고 싶은 유혹은 늘 존재한다.


그러나 자유민주공화국이 경계해야 할 것은 권력과 군중이 손을 잡고 특정 기업이나 개인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분위기다. 그런 순간 시장은 자유로운 경쟁의 공간이 아니라 정치적 충성심을 시험하는 공간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시장경제는 자유민주주의와 함께 굴러가는 두 바퀴와 같다. 사람들이 국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창업할 수 있고, 정치 권력의 허락 없이 투자할 수 있고 소비자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선택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 역시 건강하게 작동한다.


자유에는 선거의 자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가 있고, 사상의 자유가 있으며, 시장의 자유도 있다. 자유시장경제를 외면하면서 자유민주주의만 지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위험한 착각이다. 역사는 시장의 자유가 위축될 때 민주주의 역시 함께 흔들렸음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민주주의의 진짜 힘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자유를 지켜주는 데 있지 않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의견과 내가 선호하지 않는 기업의 자유까지도 존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숙한 민주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프라하의 스타벅스에서 몇 시간씩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던 때를 기억해 본다. 누구도 눈치를 주지 않았고 누구도 쫓아내지 않았다. 어쩌면 자유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것도 그런 모습일지 모른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 안에 함께 머물 수 있는 것, 바로 그 자유의 숨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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