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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 Posted by 크리스천 위클리 06/12/26
[초대시단] 베라크루즈의 팜트리 앞에서
김종완(감리교 은퇴 목사)

 

2026 년 삼월,

멕시코 Veracruz의 한 호텔 창가에서

나는 바람 속에 서 있는 팜트리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아주 키 크고 날씬한 야자수들은 거센 바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몸이 꺾일 만큼 흔들리면서도 끝내 부러지지 않고,

마치 음악을 들은 사람처럼 흥겹게 춤을 추고 있었다.


바람은 세차게 불었지만 그 나무들은 바람과 싸우지 않았다.

밀리면 밀리는 대로, 휘어지면 휘어지는 대로, 유연한 몸으로 강풍의 길을 비켜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오래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삶의 비밀 하나를 배웠다.

인생도 그렇구나. 억지로 맞서기보다 때로는 흔들리며 지나가고,

휘어지며 견디고, 춤추듯 아픔을 통과하는 것.

나는 창가에 앉아 그 춤을 오래 바라보았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잎들은 초록 손바닥처럼

하늘을 향해 박수를 치고,

바람은 보이지 않는 음악이 되어

그들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때 문득 내 마음도 따라 흔들렸다.

굳어 있던 생각들이 풀어지고,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내 안의 오래된 슬픔들마저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베라크루즈의 팜트리는 강풍 속에서도

우아하게 춤추는 나무, 엿가락처럼 휘어져도 부러지지 않는 나무,

삶이 흔들릴 때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몸으로 가르쳐주는 나무.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서서 바람을 미워하지 않기로 한다.

 

삶이 흔들리는 날에도 팜 트리처럼 유연하게, 가볍게,

그리고 끝내 아름답게 춤추며 지나가기로 한다.


주님,

내 인생에도 바람이 불 때 나를 단단하게만 만들지 마시고

유연하게 하소서.


꺾이지 않기 위해 사랑으로 휘어질 줄 알게 하시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겸손히 낮아질 줄 알게 하소서.


삶이 흔들리는 날에도 베라크루즈의 팜트리처럼

은혜 안에서 춤추게 하소서.


그리고 마침내 모든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서

내 영혼도 조용히 고백하게 하소서.

“주님,

당신 안에서

나는 아직도 살아 있고,

아직도 자라고 있으며,

아직도 아름답게

춤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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